회춘

by 아마도난

“아줌마, 주전자에 소주 두 병만 부어서 주세요.” 일행이 모두 모이자 한 명이 큰 소리로 주문했다. 주문하는 방법이 이상했는지 아줌마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직도 주전자에 소주를 따라서 마시는 사람이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예전에는 순하게 하려고 주전자에 오이를 채 썰어 넣고 소주를 부어 마시던 시절도 있었다. 오이의 상큼한 맛으로 인해 목 넘김이 좋아 많은 사람이 애호하던 음주법이었다. 잠시 주춤하던 아줌마가 시렁에서 주전자를 꺼내 깨끗이 닦은 다음 소주 두 병을 부어서 들고 왔다.


그녀는 주전자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오이도 썰어서 넣어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처음에 주문했던 사람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품속에서 소주병 하나를 조심스레 꺼냈다. 그는 “이게 뭔지 알아? 산삼을 갈아서 소주에 타가지고 온 거야. 이게 바로 산삼주라고!” 하며 의기양양하게 병을 들어 보였다. 믿기지 않아 그간 주워들은 풍월로 “혹시 되뽀미(장뇌삼) 아냐?”라고 반문했다. 그 말에 그의 기분이 살짝 상했는지 “애기 산삼이기는 하지만 진짜 산삼이야!” 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어찌 되었든 ‘산삼’이라는 소리에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몰려왔다.



산삼주를 들고 온 사람은 중년이 되었을 때 난치병을 앓기 시작했다. 병명은 확인했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많은 돈을 들이고도 차도를 보지 못했다. 결국 그는 아픈 몸을 치유할 목적으로 틈만 나면 산삼과 약초 등을 캐러 전국의 산하를 돌아다녔다. 정성 탓이었는지 좋은 공기를 마셔서 그랬는지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고 약초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를 듣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그는 산삼 전도사가 되어 만날 때마다 장뇌삼이니 산양산삼이니 지종 산삼이니 하며 산삼에 관한 얘기를 하곤 했다.


소주 두 병이 들어 있는 주전자에 산삼을 갈아 넣은 소주 반병이 부어졌다. 그는 주전자를 흔들어 잘 섞은 다음 한 잔 한 잔 모두의 잔을 채웠다. 잔이 채워질 때마다 일행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입가에는 침이 고였다. 잔이 다 채워지자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건배를 외치며 잔을 비웠다. 혀끝을 감도는 산삼의 향기를 느끼며 다시 잔을 채우려는데 우리를 바라보며 서 있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아줌마도 한 잔 하실라우?”하고 물으니 “귀한 술인데…. 주실 거면 두 잔 주세요.” 하며 반색했다. 아줌마는 산삼주 두 잔을 들고 신이 나서 “산삼주랴. 한 잔씩 해요.” 하며 주방으로 갔다. 의리 있는 아줌마였다. 주방에 있는 남정네들에게 주려고 두 잔을 받아 간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뜨거운 날씨에 보신도 하고 산삼주의 격에 맞추려고 안주는 해신탕을 시켰다. 낙지, 전복에 닭도 반 마리가 들어간 해신탕은 ‘용왕의 보양식’이라고 불린다. 그런 보양식에 산삼까지 곁들였으니 어찌 원기가 솟지 않겠는가? 안주가 좋고 산삼이 곁들여져서 그랬는지 평소보다 술을 더 마셨다. 게다가 음식점 안에 있던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눈총이 흥을 더 돋운 모양이다. 공연히 목소리가 커지고, 과시하듯 잔을 들고 주변을 훑어보며 건배를 외쳐대니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미워했을까? 미움받은 만큼 더 산다고 했으니 산삼주 마신 효과는 본 셈이다. 소주 두 병을 추가하고 남은 산삼주 반병을 마저 부었다. 이번에도 아줌마가 다가와 두 잔을 챙겨갔다. 여자의 마음 씀씀이가 착해서 그랬을까? 갑자기 아줌마의 뒷모습이 선녀처럼 보였다.



기분이 좋았다. 용왕님의 보양식을 먹어서 좋았고, 진시황이 불로초라며 애타게 찾던 산삼을 먹어서 좋았고 선녀 같은 여자를 보아서 좋았다. 좋아서 ‘흥흥’거리는데 “야, 주전자 주둥이 붙잡고 뭐 하는 거야!” 하고 냅다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전자 주둥이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술에 취하면 잠이 드는 버릇이 있는데 그새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그 짧은 시간에 기분 좋은 꿈이라도 꿨냐? 왜 그렇게 실실 웃어! 그리고 주전자 주둥이는 왜 붙잡고 난리냐?” 하는 지청구에 “청양에 장승공원이 있는데 거기 가면….” 대답하려다 민망한 생각이 들어 말꼬리를 흐렸다.


술이 몇 순배 더 돌고 나서 자리가 파했다. 다들 집에 가자고 일어서는데 선뜻 일어설 수가 없었다. “가자는데 왜 그러고 있어?” 하는 친구들의 채근에 일어서는 대신 “조금만 더 있다 가세.”라며 친구들을 주저앉혔다. 장승 생각하다 아랫도리가 주전자 주둥이를 닮은 청양의 장승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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