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5월. 독일군은 중부유럽을 석권하고 프랑스-벨기에 국경지대의 프랑스 방어선마저 뚫는다.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는 독일군에게 밀려 영국군과 연합군 45만 명은 퇴로를 차단당한 채 프랑스 서부의 됭케르크 해안에 고립된다. 독일군의 공세에 큰 혼란에 빠진 영국 정부는 윈스턴 처칠을 새로운 총리로 세운다. 처칠은 자신을 총리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여당과 야당의 견제 속에서 영국의 운명을 결정지어야 한다. 정권 내부의 강압에 따라 히틀러와 평화협정을 맺을 것인지, 자기의 소신대로 싸울 것인지를 두고 긴 고뇌에 빠진 처칠은 생전 처음 지하철을 타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처칠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됭케르크 해안을 지키고, 나아가 영국을 보호하기 위한 연설을 시작한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는 됭케르크 철수작전(다이나모 작전)을 배경으로, 처칠의 고뇌와 결단을 다룬 영화다. 이 작전을 앞두고 처칠은 ‘우린 절대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에는 민간선박 등 870여 척의 배가 동원되어 독일군에게 전멸당할 위기에 놓여있던 영·불 연합군 338,226명을 구출했다.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는 뜻의 이 말은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The darkest hour is before the dawn)’이라는 영어속담에서 비롯된 말이다. 영화 「Darkest Hour」에서는 처칠이 1940년 6월 18일 프랑스 됭케르크 공방전이 끝난 후의 처참한 상황과 총리로서 고독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영화는 처칠이라는 한 정치인이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모두의 신념’으로 바꾸는 과정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됭케르크의 군인들이 전쟁터의 적과 싸웠다면, 「다키스트 아워」는 내부의 적과 싸우며 위대한 선택을 끌어낸 정치인과 민중의 전쟁을 보여준다. 이런 처칠을 완벽하게 연기한 게리 올드만은 2018년 아카데미시상식, 영국 아카데미시상식, 골든글로브 시상식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임진왜란 때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 앞에 지리멸렬하게 무너진 관군을 대신하여 승리를 거두고, 나라를 지킨 의병들. 왜병들은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착취만 하는 조정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의병’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처칠은 ‘노예로 사느니 피범벅이 되도록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라며 국민을 설득했는데 그보다 더한 민족적 자부심이 있는 우리에겐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국가의 미래가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는 국내외 전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런 시기에 과연 우리는 처칠처럼 ‘자신의 신념’을 ‘모두의 신념’으로 바꾸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도자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는커녕 대통령이 되면 패배한 경쟁자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후보자들이 있다. 특정인이 대통령이 되면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후보자도 있다. 암담하다. 이래서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이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니, 아닐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저력이 살아 있는 한, 처칠이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류성룡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Darkest Hour를 지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