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아 캘러 도버(휴 잭맨 粉) 가족은 프랭클린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식사한다. 식사가 끝나고 밖에 나갔던 두 부부의 딸들이 사라진다. 납치 용의자로 숙모 홀리 존스(멀리사 리오 粉)와 같이 살고 있던 알렉스 존스(폴 다노 粉)가 체포됐지만 아무 증거도 없어 풀려나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캘러는 경찰에 대한 불신이 생겨 알렉스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그를 쫓기 시작하고, 형사 로키(제이크 질렌할 粉)는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면 일급 성범죄자들을 조사한다. 캘러와 로키는 서로 다른 용의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딸을 잃은 캘러는 부성과 분노가 넘쳐 격정적으로, 형사 로키는 냉철하게 범인을 추적한다. 결국 거칠고 투박하기는 했어도 캘러로 인해 로키도 범인을 알아차리게 된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죄수(Prisoner)는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에 집착하며 언제쯤, 어떤 형식으로 죄수가 등장할까 싶어 눈여겨보아도 죄수복을 입은 인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거리, 암울하고 절망적인 대화, 화면 전반에 가득 찬 분노와 냉철함의 이중구조, 앞으로 전개될 줄거리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함 등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면서도 끝내 죄수는 보여 주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제목에서 보이는 「Prisoners」는 누구일까?
홀리는 형사 로키에게 남편은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남편이 술중독에 빠진 신부(神父)의 집 지하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며 16명의 어린아이를 죽였고, 앞으로 더 죽일 것이라고 얘기했다가 신부의 과실치사로 사망하게 된 것. 신부의 술중독이 이 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는지…. 그렇다면 신부도 죄책감이라는 감옥에 자신을 가둔 셈이다. 안타깝게도 로키는 술중독자인 신부의 진술에 신빙성을 두지 않는다. 홀리와 그녀의 남편은 외아들을 암으로 잃자 신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아이들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입양했다는 알렉스도 사실은 그들 부부가 최초로 납치한 아이였다. 그들은 신과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납치라는 강박에 자신을 가둬둔 셈이다.
캘러는 알렉스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그를 납치하여 감금한 다음 자백을 강요한다. 딸의 소재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가혹행위도 서슴없이 행하면서 죄책감 때문에 주 기도문을 외기도 한다. 과연 그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딸을 찾기 위해 그랬다고는 하지만 그의 행위를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니 결국 그도 죄수(Prisoner)다. ‘최선을 다한 끝에 결국 최악만 남는다.’라는 말이 실감 나는 장면이다. 캘러는 홀리가 범인임을 알고 찾아갔다가 그녀가 만든 지하 공간에 갇히고 만다. 어쩌면 알렉스를 불법 고문한 죗값일지도 모른다.
형사 로키는 아이들의 무사 귀환을 비는 추모식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밥을 체포한다. 밥이 범인이라고 확신한 로키는 그를 몰아세우다 자살에 이르게 한다. 사실 밥도 어린 시절에 홀리 부부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한 피해자였다. 밥은 납치된 후 홀리 부부가 주입한 약물로 인해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홀리의 남편은 뱀을 키우고 미로(迷路)를 좋아했다. 성인이 된 밥도 뱀을 키우고 미로를 좋아했다. 아이들의 옷도 수집했다.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을 흉내 낸 것이다. 로키는 자기 확신이라는 덫에 자신을 옭아매고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세운 셈이다. 로키는 밥이 그린 그림이 신부의 집에 있던 시체의 목걸이와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뒤늦게 진범을 찾아 나선 것이다. 실종된 아이들은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캘러는 지하에 갇힌 채 영화는 끝이 난다.
한적한 외곽지역의 혹독한 겨울 배경과 을씨년스러운 마을 이미지, 차가운 먹구름과 휑한 거리 등은 감독이 감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 공간에서 ‘최선을 다한 끝에 결국 최악만 남는다.’라며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사람에게 경고를 날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거장 드니 빌뇌브가 감독했다. 그는 아무리 절박해서 그랬더라도 죄는 죄라며 주변을 돌아보라고 외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