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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Dec 17. 2021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영화리뷰

로버트 레드포드가 몇 살 인지 기억하는가? 그리고 제인 폰더는? 한때 세계 영화팬들의 연인이었고 우상이었던 두 사람. 레드포드는 1936년생, 제인 폰더는 1937년생이니 어느덧 80대 노인이다. 이 두 사람이 남녀 주인공이 되어 로맨스 영화를 찍었다. 36세와 37세가 아닌 36년생과 37년생이 말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70대 노인 역으로 나왔으니 연기하기가 좀 수월했을까?



홀아비 루이스 워터스(레드포드 扮)의 집에 역시 홀몸이 된 애디 무어(폰더 扮)가 찾아온다. 애디와 루이스는 같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웃이지만 서로를 잘 알지는 못했다. 애디는 루이스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언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잘래요? 섹스를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섹스는 이미 흥미를 잃은 지 오래고, 잠들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밤을 견뎌보려고 그래요.”라는 말을 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다음 날, 루이스가 “그쪽이 제안한 걸 생각해 봤는데, 해 보고 싶어 졌어요. 그런데 왜 나죠?”라며 반문하자 애디는 “좋은 사람 같았거든요.”라고 대답한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은 이렇게 시작된다.

애디와 루이스는 매일 밤, 침대에 같이 누워 지난 삶을 얘기한다. 애디는 가족을 잃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루이스는 가족에게서 도망쳤던 부끄러운 과거를 털어놓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깊숙이 숨겨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외로운 영혼을 보듬어 준 것이다.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스스럼없는 대화를 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게 된 두 사람은 육체적 관계까지 맺는다. 대화가 외로움을 몰아내고 두 사람의 장벽도 걷어낸 것이다.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두 사람의 대화는 젊은이들의 대화와는 어떤 게 다를까?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올랐다. 파리로 가는 열차에서 만난 젊은 남녀가 사랑, 삶, 종교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대화의 주제도 방식도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서로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의 밀회(?)는 곧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루이스는 이에 부담을 느낀다. 이에 대해 애디는 루이스에게 “어차피 다들 알게 될 거고, 떠들어대겠죠. 상관없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면서 평생을 살아왔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전율이 왔다. 아마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거추장스러운 짐을 벗어버린 두 사람은 공공연하게 외식도 즐기고 여행도 떠난다. 그 모습이 홀가분해 보였다. 아니, 부러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잘생긴 배우들은 늙어서도 고운 모양이다. 젊은 날과는 또 다른 매력이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우아하게 늙은 사람들이 연기도 우아하게 한다.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오랫동안 부부로 출연한 최불암 씨와 김혜자 씨가 다시 호흡을 맞추면 저런 느낌이 나려나? 삶이 순탄치 않았듯 영화의 결론 또한 마냥 해피엔딩으로 달려가지만은 않았다. 애디가 살고 있던 콜로라도에서 멀리 떨어진 아들 집으로 이사하며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다시 예전처럼 외로운 생활을 하던 어느 늦은 밤. 잠자리에 들면서 애디가 루이스에게 전화한다. 루이스가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라고 묻자 그녀도 “맞아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나랑 얘기해주지 않을래요?”하고 말한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해도, 전화기를 통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원작 소설은 애디가 칠흑같이 어두운 창밖을 보며 루이스에게 “당신 거기 추워요?”라고 묻는데…. 원작이 영화보다 애디의 애틋함을 더 잘 보여준 것이다.


2017년에 제작된 「밤에 우리 영혼은」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더가 네 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볼 수 있는 싱그러운 젊음과는 대조적으로 늙어서 외로워진 사람들이 묵은지 같은 그들의 삶을 들어줄 대화 상대를 찾는 이야기다. 그래서 인간은 관계 속에서 기억되고 존재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애디가 루이스를 잊지 못하고, 루이스가 애디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본능적으로 관계의 중요성이 작용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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