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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Feb 28. 2022

법도 윤리도

설날, 형제들이 모였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2년 만에 가족 상봉이 이루어져서 그랬을까? 모처럼 한자리에서 자식들을 만난 어머니의 얼굴에는 천진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한참이 지나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썼다가 지우고, 지우고 다시 쓴 이야기를 꺼냈다. 순간 형제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볍지 않은 주제여서 오랫동안, 심각하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침내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 효행장려법)’을 위반하기로 결론이 났다. 세상에! 형제들이 모여 고작 이런 범법 행위나 모의하다니….


우리나라의 전통 예법에 혼정신성(昏定晨省)이 있다. 아침에 부모님께 문안 인사드리고, 저녁엔 잠자리를 봐 드리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미덕인가? 효행장려법은 이런 전통에 맞춰 ‘자녀가 부모를 성실하게 부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맹자도 이루하(離婁下)에서 다섯 가지 불효를 얘기했다. 그 가운데 많은 재물을 모아 처자식에게만 베풀고 부모는 부양하지 않는 것을 세 번째 불효라고 했다. 효행장려법과 상통한다. 혹시 효행장려법을 만든 이도 맹자의 이루하를 참고한 것은 아닐까? 결국 우리 형제들은 법 위반뿐만 아니라 맹자의 다섯 가지 불효 가운데 하나를 저지르기로 모의한 셈이다.


어머니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음식을 탐하며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다. 계절은 항상 겨울이었고, 날씨는 늘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렸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보며 대화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었다. 며느리는 남이었고, 심지어 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병원 의사는 ‘부모가 치매를 앓으면 아들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가 잦다.’라는 말을 한 모양이다. 참으로 어렵다. 맹자나 효행장려법은 부모를 직접 모시라고 하는데 현실은 녹녹하지 않으니….


얼마 전에 친구가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는 낙상을 당해 고관절 수술을 받은 이후 전혀 거동하지 못하던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친구는 요양시설로 어머니를 모시려 했으나 형제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뜻은 이루지 못하고 의만 상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형제간에는 앙금이 남아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 부양도 중요하지만, 형제와의 관계도 소홀히 하면 안 되니 요양시설로 옮기려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라고 조언했다. 덕택에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미흡한 대로 공감대를 이뤘다.


독일 속담에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에도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모두 나의 결심을 합리화시켜주는 속담처럼 들렸다.


요양시설 입소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문의했다. 이유를 설명하자 홀연 그녀의 음성이 차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식들이 해야 할 일을 요양시설 근무자들에게 떠넘기겠다는 거예요?’라며 힐난하는 듯도 했다. 마음이 저릿해지며 소리꾼 장사익의 「꽃구경」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어머니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자식들을 키워냈는데 나는 법도 어기고, 윤리도 저버리며 마침내 불효자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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