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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Mar 25. 2023

패자부활전

‘사과하지 마. 사과받자고 10대도 20대도 30대도 다 걸었을까? 넌 벌 받아야지.’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넘나드는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 扮)이 고등학생 때 자기를 괴롭히던 박연진(임지연 扮)에게 한 말이다.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이 대사에서 쾌감을 느낀 시청자도 제법 있지 않을까? 그만큼 학교 폭력이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관심사가 되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학교 폭력 문제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에서 1위를 달리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황영웅을 최종 결승전 직전에 탈락하게 했다.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로 인사청문회에서 탈락한 고위 공직자 후보도 있다. WBC 야구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한 재능있는 선수도 있다. 이외에도 학교 폭력 문제로 사회적 비난을 받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례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학교 폭력 문제가 거센 회오리를 일으키며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황영웅은 제기된 폭력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어린 시절의 일이라고 변명하지 않고,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사과하겠다며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그렇게 용서를 구했지만 싸늘해진 여론을 돌리지 못했다. 사실 누구보다 안타까운 사람은 황영웅 본인이겠지만, 폭력 행위를 모두 시인한 마당에 억울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일로 미래를 망치게 하는 것이 합리적 해법일까?

폭력에 가까운 체벌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했던 중장년 세대와 10, 20대가 폭력을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이와 같은 체감도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황영웅이 경연 도중 하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팬카페 회원 수는 되려 늘었고, 그를 옹호하는 글도 많아졌다고 한다. 아마도 재능있는 젊은이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꺾인 것을 안타까워하는 중장년 세대의 반응 때문이었을 것이다. 폭력에 대한 중장년 세대와 젊은 세대의 체감도가 다른 이유로 2011년 3월에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된 「학생인권조례」를 들기도 한다. 조례를 채택한 지자체가 늘면서 학생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안타깝게도 학생들 간의 폭력 행위마저 근절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교사의 체벌이 사라지면서 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학교 폭력 문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잘못을 반성하고 만회하려는 사람에게 우리 사회는 얼마나 기회를 주고 있을까? 어느 설문 조사에서 40대 이상의 응답자 78.1%가 우리 사회를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고 대답했다. 급속한 산업화로 성장과 효율성에 집중된 경쟁사회에 살면서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관용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진 결과 때문은 아닐까?


공자는 제자 중 안회를 으뜸으로 꼽았다. 그 이유로 ‘안회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들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허물이 있다. 당연히 잘못도 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반성하고,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공자는 누구라도 자기가 저지른 허물에 갇히면 그 안에서 죽지만, 허물을 벗으면 새 세상을 만난다고 가르친 것이다.


동은은 연진에게 ‘난 네가 시들어가는 이 순간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거든. 우리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라며 복수의 칼날을 더욱 벼린다. 「행복과 불행은 단짝」이라는 우화에는 ‘실체도 없는 불행을 행복의 식구로 보고 웃음으로 대하면 불행의 악마는 사라진다. 빛이 들면 그림자가 사라지듯 불행의 악마는 웃는 얼굴에 접근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복수의 칼날을 벼리는 대신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할 방법은 없을까?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을 따뜻하게 치유해서 사회에 내보내야 하는 것처럼 반성하는 가해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잘못을 만회할 수 있도록 패자부활전을 허용하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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