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조상 황제(黃帝) 헌원. ‘황제’라는 명칭은 재위 기간 중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전한다. 오행(五行)의 각 기운과 연결된 다섯 가지 색(五方色) 가운데 노란색(黃)이 중앙을 상징하기 때문에 차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헌원의 최초 근거지는 곤륜산이었다. 곤륜산은 지리학적으로는 티베트지역의 쿤룬산맥(崑崙山脈)으로, 신화적으로는 서쪽 끝에 있다는 나라를 가리킨다. 어느 경우든 변방의 작은 세력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무렵 황하 중류의 판천(阪泉)은 염제(炎帝) 신농씨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불의 신이었다. 또한 인간들을 위해 농기구를 보급하고 약초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농업의 신 그리고 의약의 신으로도 추앙받는다. 변방에서 미약한 세력을 이끌던 헌원이 힘을 길러 염제가 지배하는 판천을 공격한다. 중국 신화에서 ‘염황대전(炎黃大戰)’ 혹은 ‘판천대전(阪泉大戰)’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헌원이 승리한다. 이 싸움에서 패한 염제의 추종 세력 가운데 남쪽으로 달아난 세력의 후손이 묘족이다. 지금도 묘족은 염제와 더불어 염제와 가까웠던 치우를 조상신으로 모시고 있다.
염황대전이 끝나고 나서 중국인의 원형이랄 수 있는 화하족(華夏族)이 등장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황제의 후손’이라는 생각과 함께 ‘염황의 자손’이라는 인식도 갖게 된다. 헌원에게 복종하지 않고 화하족의 팽창을 가로막은 세력이 치우로 대표되는 동이족이다. 화하족과 동이족은 탁록(涿鹿, 베이징 인근)에서 격돌한다. 이른바 ‘탁록대전’이다. 10년 동안 73회를 싸운 이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중국 기록은 헌원이, 우리 기록은 치우가 이겼다고 주장한다.
치우는 우리의 조상일까?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14대 자오지 환웅이 치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반론도 작지 않다. 애매한 것이다. 반면 중국은 치우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편입시켰다. 1992년 베이징 인근 탁록현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짓고 황제, 염제와 함께 치우를 중국인의 3대 조상으로 모셨다. 1980년대에 염제를 황제와 함께 신화적 조상으로 모시고 1990년대에는 치우까지 끌어안은 것이다. 중국은 무슨 이유로 염제에 이어 동이족인 치우까지 자기들 조상이라고 우기는 걸까?
홍산문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1906년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의 츠펑시(赤峰市) 훙산(紅山) 일대에서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積石墓, 돌무지무덤)가 처음 발견된 이후 이를 1955년부터 홍산문화라고 부른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홍산문화는 6,000여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화하족의 황허 문명은 물론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홍산문화 대신 요하문명(遼河文明)이라고 바꾸어 세계 4대 문명 대신 세계 5대 문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홍산문화는 빗살무늬토기, 적석묘 그리고 옥기(玉器) 등으로 대표되는데 이 유물들은 중국보다는 만주 및 한반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옥은 8,000여 년 전에 처음 만들어져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 사이에 옥기시대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옥기로는 7,000~6,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와 전남 여수 안도 패총의 옥 귀고리가 있다. 훙산 옥기에는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여러 점 있고, 제단 터에서는 희생된 곰 아래턱뼈도 발견되었다. 단군조선의 상징인 곰 토템을 떠올리게 하는 유력한 유물들이다.
홍산문화 혹은 요하문명이 동이족이 만든 문화임이 확실해지자 화하족의 조상으로 추앙받아온 황제 헌원이 사실은 동이족의 조상이라는 주장이 슬며시 나타나고 있다. 곰 토템을 가진 동이족임을 보여주려고 사마천의 『사기』에 언급된 ‘황제의 나라가 유웅(有熊)씨’라는 기록을 끌어온 것이다. 이를 통해 단군왕검과 웅녀 등이 모두 황제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적 바탕을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또 있다. 중국 산둥성 린이 시에는 「동이문화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동이 영웅이라며 태호 복희, 소호 금천, 치우, 순임금 등 4명을 전시해 놓았다. 문제의 인물은 황제 헌원의 맏아들인 적장자 소호 금천이다. 적장자가 동이족인데 아비만 화하족일 수는 없지 않은가?
중국은 치우를 중국인의 조상 가운데 한 명으로 만들면서 요하문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더 나아가서 요하문명 영향권이던 한반도조차도 자기네 고토라고 주장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 어둠 속에서 발톱을 숨긴 그림자가 우리 것을 슬금슬금 가져간 것이다. 이제 누가 발톱을 숨긴 그림자를 물리칠 수 있을까? 우리 신화에는 치우와 궤네깃또라는 영웅이 나온다. ‘위로 든 바람은 아래로 나고, 아래로 든 바람은 위로 나는 곳’이라는 궤네기에 사는 사람이 궤네깃또다. 치우는 중국이 자기네 조상이라고 왜곡시켰으니 궤네깃또에게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물리칠 임무를 맡겨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