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를 도서관에서 빌렸다. 묵직하다. 이런! 이 책이 이렇게 두꺼웠나? 예전 기억으로는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두께였던 것 같은데 500쪽이 넘는 책이라니.... 세월의 강물에 종이가 불어서 책이 두꺼워졌나?
책을 펼쳤다.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임이 분명한데 왜 글자는 안 보이고 까만색만 보일까? 종이값이 비싼 건지, 민음사가 가난한 건지 하여튼 좁은 지면에 글자를 잔뜩 우그려 넣었다. 한쪽에 100자쯤 인쇄하면 읽기가 얼마나 좋아?
눈을 홉뜨고 읽기 시작했다. 어허! 방금 전에 읽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가서 다시 읽었다. 세 쪽 읽고 다시 돌아가고. 눈을 비비고 깜박이면서 이런 식으로 읽는데 별안간 글자들이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너울너울.
'야, 이눔들아! 정신 사나워. 제자리로 돌아가!'
녀석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군무를 추기 시작한다.
'야 이눔들아 그만 춰? 어지럽단 말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놈들은 이미 나를 만만하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하얀 것은 사라지고 검은 녀석만 남았다.
OMG!!!
이럴 때는 책을 덮고 잠시 쉬는 게 장땡. 중랑천을 따라 걸으며 나훈아의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도 듣고, 새로 생긴 '카페 이문'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돌아왔다. 머리가 맑아졌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책을 펼쳤다. 하얀색과 까만색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아하! 이제 읽을 수 있겠군!'
속단이었다. 세상 일이 그리 쉽던가? 세 쪽 읽고 되돌아오고, 네 쪽 읽고 되돌아오고... 이렇게 무한반복하다 끝나는 거 아녀? 마침내 검은 놈들이 다시 춤을 추고, 흑백이 온통 흑으로 바뀌었다.
'허, 이런!'
문득 '우리 나이에 책 읽으려면 수시로 인공눈물 넣으면서 봐야 해!' 하던 지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부리나케 약국에 가서 인공눈물 한 통을 사 왔다.
한쪽 읽고 눈물 한 방울, 두 쪽 읽고 눈물 한 방울. 이러다간 책 읽는 시간보다 눈물 넣는 시간이 더 많겠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했는데 읽은 쪽수는 열 손가락쯤? 한숨이 나온다. 피곤하기도 하고.
'에라, 한숨 자고 읽자!'
책 두께도 베개로 쓰기 딱 좋다. 책 읽을 때 글자들이 너울너울 춤췄지? 오케이! 그 분위기 그대로 내가 자는 동안 춤추며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렴!
소파에 길게 누웠는데 갑자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