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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May 31. 2019

바람과 구름의 땅, 하이반 고개

베트남 여행

하이반(Hai Van)은 '바다(Hai)와 구름(Van)'이 결합된 베트남語로 고개 정상이 항상 구름에 가려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15세기에는 베트남과 참파 왕국 사이의 국경이었고 베트남 전쟁 때에는 남북 베트남의 처절한 쟁탈지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의 하나로 선정한 절경이기도 하다.


고색창연한 하이반 고개 정상 안내도


대관령 고갯길을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한 길의 끝에 는 낡은 성문, 하이반콴(海雲關)이다. 19세기 초 후에(Hue)의 황궁을 보호하기 위해 민망(Minh Mang) 황제의 지시로 만든 요새이다. 성문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Thien ha de nhat hung Quan)'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하이반콴



성문과 그 주변에는 베트남전 때 남북 베트남군 사이에 치열하게 벌어진 교전 흔적이 남아 있다. 치열한 전투 현장 너머로 보이는 랑코 비치. 고개를 넘어 후에로 향할 때 리무진 운전사가 인증샷을 찍으라며 차를 세워준 해변이다.

랑코 비치



남쪽으로는 다낭만이 보인다. 근거는 알 수 없지만 세계에서 5번째로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미케 비치를 안고 있다. 

다낭만의 미케 비치



하이반 고개를 빼앗기 위해 목숨 건 전투를 벌이던 남북 베트남 두 진영의 군인들에게 아름답기 그지없는 랑코 비치와 미케 비치가 눈에 들어왔을까? 베트남족과 참파족의 싸움이 아닌 같은 동족 간의 전투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이반 고개는 후에(Hue)에서 벌어진 대학살이나 다낭의 대규모 보트피플을 보고 싶지 않아서,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누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구름으로 을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이반콴 문루에서, 전투를 하던 참호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바다와 산등성이는 흐린 날씨와 구름 덕분에 더욱 환상적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괜히 선정한 명소가 아니었다.






하이반 콴에서 아름다운 랑코 비치와 미케 비치 감상을 마치고 후에로 이동하기 위해 휴게소로 내려왔다. 휴게소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가게마다 안쪽에 화장실을 두고 있었다.  용변을 보려고 공중화장실로 향하려고 하자 여기저기서 어눌한 한국말로 '화장실! 깨끗해요!'하고 외치며 여인들이 다가왔다. '물건을 팔기 위해 준비해 놓은 화장실이구나! 아무려면 공중화장실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살집 좋은 여인이 다가와 자기네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권유한다. 어느 가게를 가든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따라 들어갔다. 그곳은 우리나라 화장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열악한 곳이었다.

소변을 보고 나오자 여인이 환하게 웃으다가와 진짜 옥이라며 여러 가지 제품을 들어 보였다.  이것저것 권하다가 옥으로 만든 팔찌를 앞에 들이대더니  20만 동(원화 약 만원)이라며 하나 사란다. 액세서리를 좋아하지도 않고 마음에 드는 물건도 없어서  화장실 사용료를 지불할 요량으로 2 천동을 내밀었다. 호이안이나 다낭의 유료화장실에서 받는 금액이었다. 순간 천사 같던 여인의 표정이 바뀌며 조폭마누라 1로 변했다. 화장실 사용료로 1만 동을 내라는 것이다. 뭐라고 대꾸를 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조폭마누라 2가 나타나 '2만 동!'하고 외친다. 어처구니도 없고 화도 나서 눈에 모든 힘을 모아  레이저를 발사했다. 그 순간 갑자기 조폭마누라 3이 나타나 한 대 때리기라도 할 것처럼 주먹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화장실에서 변 한번 봤을 뿐인데 순식간에 조폭마누라들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하이반 고개 휴게소



리무진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무심하게 바라만 볼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당했다. 불현듯 머릿속으로 루신의 소설 <아Q정전>에 나오는 아Q가  떠올랐다.  "그래, 져주는 척하는 거야. 어쩌면 이 여자들은 아름다운 하이반 고개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투사 들일지도 모르잖아!"  조폭마누라 1에게 눈빛 레이저를 발사하며 5 천동을 쥐어주듯 주고 황망히 자리를 떴다.





혹시 하이반 고개에서 용변을 봐야 할 사람은 조폭마누라들과 다투지 마시고 자연보호 성금을 내는 마음으로 꺼이 쾌척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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