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안개 때문에 아침 8시에 출발해야 하는 비행기가 짜증스런 기다림 끝에 12시에 겨우 이륙했다. 하루의 반을 김포공항에서 대기하며 날려버린 것이다. 반나절을 허비하는 바람에 제주공항에서 올레1길의 중간 지점인 종달초등학교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거기에서부터 올레1길의 종점인 성산일출봉까지 걸었다. 제주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찌푸려있었다. 서울에서는 안개가 발목을 잡더니 제주에서는 흐린 날씨가 등을 떠민다. 도중에 비를 만나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발을 옮겨 해질녘에 성산에 겨우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성산일출봉에 들르니 마지막 방문객으로 입장시켜 주었다. 그나마 행운이 남아 있던 셈이다.
다음날 아침. 거친 빗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에는 2월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장마철에나 옴직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들른 식당에서 식당주인은 우리가 올레꾼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제주도 비바람은 제법 거칠어요. 오후에는 비가 잦아진다고 하니 오전에는 숙소에서 쉬었다 오후에 출발하는 게 좋겠어요.”하고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전날에도 안개 때문에 반나절을 허비했는데 비 때문에 또 반나절을 허비하는 게 싫었다. 게다가 성산에서 빤히 보이는 섭지코지까지는 1~2시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나섰다.
광치기 해변을 따라 섭지코지까지 바닷가를 걷는데 비는 물론 바람도 장난이 아니었다. 우산도 준비하고, 우비도 가져왔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걷기 시작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우산은 제 기능을 잃고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우비만 걸치고 걷는데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이만저만 따가운 게 아니었다. 바람은 또 얼마나 거센지 우리 부부를 하늘로 날려 버릴 것 같아 서로를 의지하며 힘겹게 나아가야만 했다. 섭지코지까지 걸어가겠다고 했을 때 화들짝 놀라던 식당주인의 반응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모진 비바람을 뚫고 2시간여 만에 섭지코지 입구에 도착했다. 마침 공중화장실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서로를 살펴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운동화는 물속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물이 가득 차 물고기가 헤엄쳐 놀만 했고, 온 몸으로 파고드는 한기는 절로 디스코를 추게 했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고집부리다 이 꼴을 당했을까?”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섭지코지 입구의 화장실에서 대강 추스르고 나니 표선행 버스가 도착했다.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야속하게도 비가 잦아들더니 표선에 도착할 때쯤에는 완전히 멎어 버렸다. 반나절이 아까워 서두르다 고생만 실컷 하고 하루를 날려 버린 것이다. 식당주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성산에서 좀 더 쉬었다 출발했더라면 미친 듯 날뛰는 광치기 해변 대신 멋진 풍경을 즐겼을 테고 섭지코지에서 차 한잔하는 낭만도 누렸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날이었다.
탈고한 원고를 한 달여 만에 다시 읽었다. “이게 정녕 내가 쓴 글이란 말인가?” 놀라움이 앞선다. 자문자답을 해봤다. “무슨 취지로 이 글을 썼지?”하고 질문하니 “의자왕에 대한 변명이랄까?”하는 대답이 쉽게 나왔다. “그럼 주인공이 의자왕인가?”하고 물었다. “그런…가?” 대답이 떨떠름해진다.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야?”하고 질문을 던지니 답이 궁해졌다. 얼굴이 붉어진다. 이런 글을 써놓고 출판을 꿈꾸다니 참 염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 전화했다. 글을 수정하겠다고, 아니 처음부터 다시 써야겠으니 출판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1년 가까이 이 일에 몰두했는데, 나름대로 공들여 쓰고 탈고까지 했는데 없던 것으로 하려니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속된 말로 멘붕이 왔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려고 책을 한 보따리 샀다. 한기호의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루이즈 디살보의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그리고 프리츠 게징의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등이다. 글쓰기의 기본부터 다시 다듬어볼 요량이었다. 도나 타트라는 작가의 “책 한 권이 일 년 만에 나오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라는 문구를 접하고 나니 겨우 1년을 쓰고 마치 오래 동안 글을 쓴 것처럼 느낀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을 47가지나 쓴 다음에야 결정했다고 한다. 헤밍웨이 같은 거장들도 얼마나 고심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지 알게 되니 서둘러 책을 내려던 내 행동이 더욱 옹색해 보였다.
지인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첫 번째 책을 완성하는데 22년이 걸렸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 난 속으로 “그는 젊었으니 가능했지만 내게 22년은 너무 길어!”하며 애써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늦게 시작했으니 뭔가를 이루기 위해 그만큼 긴 기다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탓이리라. 루이즈 디살보는 이를 ‘서두름의 불치병’이라는 말로 일축해 버렸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도 ’천재는 인내의 대가(大家)‘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였을까? 어떤 작가는 탈고한 원고를 네 번이나 다시 고쳐 쓰기도 했다고 한다.
스티븐 킹도 “책은 ‘쓰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짓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타고난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헌신과 인내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래이 브래드버리는 “너무 열심히 일하면 뮤즈가 놀라서 숲속으로 도망간다. 등을 돌리고 한가로이 거닐고 부드럽게 휘파람도 불면 뮤즈가 살며시 뒤따라 걸어온다.”라고 말하며 여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말에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광치기 해변도 서두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교훈을 주었다. 다시 제주에 가는 날, 새로 나온 책을 들고 광치기 해변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