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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Nov 28. 2019

갈피를 못 잡고

너무 어려운 글감 찾기

첫 번째 글을 발표한 뒤 선생님에게서 뜻밖의 칭찬을 받았지만 글이 미흡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그렇다고 첫발을 떼기가 무섭게 발길을 돌리고 싶지도 않았 재능도 없는 사람이 헛된 꿈을 꾸는 결과를 빚고 싶지도 않았다. 궁금했다. 과연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타고난  재능일까 아니면 부지런함일까?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얻은 결론은 부지런한 글쓰기였다. 타고난 재능이 먼저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내게 편리한 쪽으로 결론 지어버린 것이다. (부지런하기로 말하자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자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행동이었다. 1주일에 한번 있는 수업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출석하기로 했다. 또한 수업에 출석할 때는 반드시 글을 한 편 써가기로 했다. 원칙은 단순했지만 지켜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쉽지 않은 일을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그렇게 해서 150여 편에 이르는 수필이 자산으로 남았다.)


문제는 글감이었다. 마땅한 주제가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어렵게 얻은 글감을 수필로 엮어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해 한 주일을 온통 쏟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쓴 글은 때로는 대학 때 과제로 제출했던 리포트와 비슷해지기도 했고, 때로는 어쭙잖은 사회비평글이 되기도 했다. 수필다운 수필이 써지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글쓰기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좋아서 시작한 일 스트레스로 바뀐 게 한심스럽기는 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한심한 글이지만 선생님은 칭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어쭙잖은 사회비평글을 제출해도 "요즘은 수필처럼 쓰는 칼럼도 많아요. 수필과 칼럼의 경계가 무너지는 추세에 맞는 글이에요." 하며 칭찬했다. 덕택에 포기하려던 마음을 다잡으며 힘겹게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계속해서 재미있게, 자신감 있게 글을 쓰려면 전기가 필요했다.


아내와 함께 마트에서 장보기를 하던 어느 날 미용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까지는 머리를 자르기 위해 이발소만을 고집했는데 미용실을 보는 순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예  파마를 하고 싶어 진 것이다. 미장원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랐던 아내는 파마를 하겠다는 내 선언에 그렇잖아도 큰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경악스러워했다.


파마를 하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파마를 하는 것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기력하던 마음자세 자신감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글감을 찾는 것도 조금은 여유가 생다. 이때 쓴 수필이 "변신 끝? 아니면 변화의 시작?"이다. 수업시간에 발표하자 뜨거운 반응이 나타났다. 아예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염색해 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선뜻 염색까지 나아가기가 저어해서 다음번 도전으로 남겨뒀다. 하게 되면 밝은 블론디에 도전해볼까?


https://brunch.co.kr/@yjehon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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