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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Dec 14. 2019

칭찬이 만든 돈키호테

소설에 도전하다

파마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마침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꽃보다 할배'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나이 든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보며 '다 늙어서  뭔 짓을 하겠다고...' 하는 체념적 심정이 많이 누그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꽃보다 할배'를 보고 난 이후 용기를 얻어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지로 매년 자유여행을 떠났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힘들기도 했지만 여행에서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가장 큰 소득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그라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여하튼 파마 덕택에 글감이 다양해지고 글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평 듣게 됐다.


평생교육원이 종강을 하는 6월 중순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고향 친구가 세상을 등진 시기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데다 그의 그릇된 행실을 바로잡아 줄 어른이 없다 보니 일찍부터 엇나가 버린 친구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그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아처럼 보였다. 주먹을 쓰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본이고 용돈을 벌기 위해 도박판에도 드나들었다.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그는 영화 '타짜'에서 본 그런 기술을 내 앞에서 선보였다. 아마도 그 수법으로 용돈을 벌어 썼을 것으로 짐작다.) 훗날 그와 나는 절친이 되었지만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리고 내가 대학에 진학했을 때(물론 그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 그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나를 싫어했다. 그에게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나였던 것이다.


그는 겉모습이나 행실과는 달리 순정파였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건달처럼 생활하던 그에게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의 마음과는 달리 여자는 그 두려워 서울에 사는 지인의 집으로 몸을 숨겼다. 어느 날 저녁, 친구가 불쑥 나를 찾아왔다. 여자가 있는 곳을 알냈는데 자기는 서울 지리가 어두우니 동행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여자를 찾아냈고, 끈질긴 구애 끝에 그녀와 결혼했다.  결혼 그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실한 남자로 변했다.


그 친구는 매년 봄이 되면 내게 전화해서 우여가 제철이 부여에 다녀가라고 전화하곤 했다. 어느 해 인가 고향을 찾은 날, 그는 내게 술을 한 잔 사달라고 했다.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아는 그의 제안이 의아스러지만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 일이 있 며칠이 지나 그는 스스로 삶을 버렸다. 그가 세상을 버린 이듬해 서울에 사는 고향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어느 여자 친구의 꿈에 그가 나타나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더라는 이다. 


그는 죽음을 결심하고 죽기 전에 내게 간곡히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듯했다.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무슨 일이 있어?"하고 내가 먼저 물어주기를 바라며 눈치만 보다 끝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풀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얘기를 려고 친구의 꿈에 나타나 나를 찾은 것은 아니었는지....  모임에서 돌아오며 친구가 야속하기 고, 사려 깊지 못한 내가 미워지기도 했다.  그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 온다.


친구의 기일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그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 졌다. 가족 납골당에 안치되는 그를 볼 수가 없어 돌아서 있던 기억 떠올랐다. 내게 못다 한 이야기를 간직한 채 떠난 친구의 마지막 모습마저 외면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술 한잔 올리고 싶어졌다. 그런 마음을 담아 '우여'라는 제목이 붙은 수필을 발표했다.


우여는 웅어라는 물고기 부여 인근에서 부르는 이름으 백제 마지막 임금이었던 의자왕이 보양식으로 즐겼다는 생선이다. 백제가 망하고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런 사실을 알고 웅어를 잡아오라고 시켰지만 모조리 자취를 감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얼마 뒤, 소정방이 의자왕을 위시한 백제의 귀족 등 포로 12,000여 명을 배에 태워 금강을 내려갈 때 갑자기 웅어 떼가 나타나 의자왕이 탄 배의 뱃전에 부딪히며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웅어를 충의를 아는 물고기라는 의미로 '의어'라고 불렀는데 월이 흘러 우여라고 발음이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유왕산 축제의 한 장면. 포로가 되어 당나라 소정방에게 끌려간 의자왕을 추모하는 행사다.




이 글을 발표하고 나자 교수님께서 백제를 주제로 하는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간 알려진 의자왕이나 백제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줄 수 있는 참신한 시각이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잠자고 있던 DNA 하나가 퍼뜩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은 기분이 든 것이다.  그래 "백제! 백제에 대한 글을 쓰자."


문제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였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은 것이다. 수필 형식으로 써내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연구논문으로 쓰려니 새롭게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여러 날을 두고 궁리하다 소설 형식을 빌리기로 했다. 역사가로서 접근할 자신은 없으니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적당히 상상력을 가미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류의 글을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수필 공부를 막 시작한 새내기가 겁도 없이 소설에 도전한 것이다.


https://brunch.co.kr/@yjehong/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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