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대향로를 소재로 선택하고 나니 제목도 정하고 싶었다. 제목이 정해지면 글을 풀어가기가 수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궁리한 끝에 '소설 금동대향로'라는 가제를 붙였다. 이런 형식의 소설 제목을 많이 봤기 때문에 거부감도 없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얼마나 안이하고 오만한 것이었는지 알아채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설 금동대향로'라는 제목으로는 아무런 주제도 상상력도 세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막연하기만 했다. 이렇게 궁리하고 저렇게 생각을 굴려도 "도대체 금동대향로가 어쨌다는 거야...."라는 답만 돌아왔다.
처음 생각해낸 제목으로는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어 관련 자료를 좀 더 읽어본 뒤 주제를 정하고 제목도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로 생각한 제목이 '오, 다섯 그리고 No.5'였다. 아라비아 숫자 '5'를 중심 단어로 세운 것이다.
고구려나 한성백제에서 많이 발견되는 적석묘는 기단의 네 모서리에서 계단식으로 한 단씩 쌓아 올리면서 점차 중앙으로 수렴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적석묘가 ‘천하 사방과 중앙’이라는 5방의 관념과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사다리’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수평적으로는 사방으로부터 중앙으로 수렴되고, 수직적으로는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일종의 ‘하늘 사다리(天梯)’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하 사방과 중앙이라는 5의 개념은 백제의 기본 숫자 체계, 즉 성수(聖數) 체계였던 것이다. '오, 다섯 그리고 No.5'라는 제목에 저으기 만족했다.
석촌동 2호분
‘5’라는 성수 체계는 금동대향로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금동대향로에는 5명의 악사, 5마리의 기러기, 기러기가 앉아 있는 5개의 봉우리, 향이 피어오르는 구멍도 5개씩 두 줄로 나 있다. 금동대향로를 주제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숫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제나 고구려는 5 부족 연맹체 또는 5부 체제였다. 고대 동아시아 정치체계에서도 '5'는 핵심 숫자였던 것이다.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면서 5부(五部)와 5방(五方) 체제를 도입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5’라는 숫자와 관련된 것으로는 별도 있다. 정오각형의 꼭짓점들을 연결하면 별 모양이 되고, 그 별의 내부에 다시 새로운 오각형이 생긴다. 그 오각형의 끝점을 연결하면 더 작은 별이 되고 그 안에 다시 오각형이 생기고……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각형 속의 별 모양은 가장 짧은 선과 가장 긴 선이 물체를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황금분할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즉 별이라는 것은 가장 완벽한 모양 속에 가장 아름다운 비율로 선들이 그려진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 때문에 피타고라스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물체를 별 모양 즉 펜타그램으로 하자고 제안하여 오늘날까지 쓰게 된 것이다.
‘5’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는 생각은 기발했지만 글재주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상상력과 표현력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 다시 한번 제목을 변경했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제목이 ‘지워지지 않는 나라’다. ('5'라는 숫자는 두 번째 소설 '사비로 가는 길'에서 다섯 미녀를 등장시킴으로써 소소하게 부활했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구성을 바꿔보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소설 쓰기를 배워보지도 못한, 단편소설 한 편 써보지도 못한 초보 작가가 좌충우돌하며 써 내려간 소설은 우여곡절 끝에 탈고되었다. 문제는 글은 완성했는데 어떻게 책으로 발간해야 하는지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다 서점을 운영하는 인척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잘 아는 출판사가 있다며 기꺼이 소개해줬다. 직원은 대여섯 명에 불과했지만 탄탄한 영업망을 구축하고 꽤 훌륭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알토란 같은 회사였다. 원고를 넘겨주고 1주일쯤 지났을 때 출판사 사장은 A4용지로 3장이나 되는 검토의견서를 보내왔다.
".... 소설적 구성이 빈약하며, 인물들의 캐릭터를 세우지 못했으며, 작가의 주제에만 몰두해 소설적인 구성을 무시한 것 같음.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역사적 가치를 알려주려는 작가의 의도는 알겠지만 이를 소설로 옮겼을 때는 소설이라는 특성을 고민했어야 옳지 않았나 싶음. 읽는 맛을 고려하기보다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앞선 결과가 아닌가 싶음. 모든 인물을 억지로 백제와 연결시키려는 것도 그런 결과로 보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멋진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형편없는 글이라는 평이 아닌가? 출판사와의 계약조건을 생각하고, 서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각광을 받으며 팔려나가는 것을 상상했는데 소설 축에도 못 끼는 글이라는 의미 아닌가? 어느 출판사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기 작품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곤 하지요. 어느 작가는 화가 나서 원고를 돌려받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무척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조금만 손 보면 좋은 작품이 될만한 글들이 제법 있었거든요...."
돈키호테가 둘시네아 공주를 만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농부의 딸인 알론사를 만났던 것처럼 나도 대단한 걸작을 쓴 것처럼 우쭐대다 제대로 한방 먹은 것이다. 선택을 해야 했다. 돈키호테처럼 소신대로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분수를 알고 돌아설 것인지.....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공연한 짓을 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자조적인 생각에 휘감겨버린 것이다. 수필이고 뭐고 글 쓰는 재주는 내게 없다는 실망감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두어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자 마음이 가라앉더니 오기가 비집고 나타났다. "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중학교 1학년 때 좌우명으로 세운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탈고했던 원고를 다시 꺼내 첫 줄부터 수정하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낑낑거리며 수정한 끝에 두 번째 탈고를 했다. 첫 번째 경우와는 달리 망설임이 있었지만 몇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자비출판에 대해서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책을 만들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을 경우에 대비해서 출판비용을 모두 부담할 각오를 한 것이다. 어느 출판사에서도 긍정적인 답을 주지 않았다.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예상은 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는데 결과가 무척 실망스러웠다.
도서출판 푸른향기를 만났다. 한효정 사장은 원고를 다 읽고 난 뒤 조심스럽게 그녀의 의견을 들려주며 수정을 권했다. 두어 달 동안 다시 한번 원고에 매달렸다. 원고가 마무리될 즈음 한 사장은 표지에 금동대향로 사진을 담았으면 좋겠다며 부여박물관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고맙게도 부여박물관은 내게 멋진 사진을 보내줬다.
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부여박물관에서 보내준 금동대향로 원본사진은 멋지게 변형돼서 첫 번째 소설 '지워지지 않는 나라'의 표지가 되었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죽기 전까지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을 최소 세 권은 내야겠다는 것이 들어 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이루어졌다. 내 이름이 들어간 첫 번째 '책'을 받아 든 것이다. 무척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독자들의 반응이 두렵기도 했다.
출판사는 책의 홍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덕택에 초보 작가의 어설픈 첫 번째 책이 '2쇄'까지 발간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