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소설의 소재가 된 금동대향로의 발굴 당시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공주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견된 것처럼 금동대향로도 그렇게 발견되었지만 세상을 만나는 모습은 너무 달랐다. 금동대향로는 적의 손에 넘어가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급하게 감춘 듯한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사진을 보며 백제가 망할 당시의 상황이 무척 왜곡되고 폄하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며 얼치기 작가의 촉이 마냥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의자왕에 대한 평은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와 백제가 망하던 순간이 극과 극처럼 달랐다. '해동증자'가 천하의 망나니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특히 백제가 망하기 직전 5년 동안 집중적으로 의자왕의 이미지는 급전직하한다. 백제시대에 일어난 재이(災異)의 90%가 의자왕 대에, 그것도 말기에 집중됐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난세의 혼군이 된 것이다. 의자왕의 이미지를 폄훼하고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합리화하려는 치밀한 계산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서기 655년, 백제가 망하기 5년 전에 동북아시아에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흥미 있는 일이 벌어진다. 655년 1월, 백제에서는 의자왕의 친위쿠데타가 벌어진다. 의자왕이 백제의 최고 세력자였던 사택가문을 외가로 둔 이복동생 부여 교기를 전격적으로 제거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백제를 좌지우지하던 8대 명문가들이 몰락하고 의자왕의 친정체제가 강화된 다. 이와 더불어 백제는 신라를 무너뜨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공격의 고삐를 한층 더 당기기 시작했다.
655년 2월, 왜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의자왕의 여동생이라고도 주장하는 사이메이 여왕이 등극한다. 사이메이와 그녀의 아들 덴지천왕은 백제에 매우 우호적인 인물들이었다. 백제가 망했을 때 사이메이는 오빠의 나라가 망했다며 통곡하다 혼절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사이메이의 등극으로 신라에게는 매우 불리한 국제정세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백제를 돕기 위해 지원군을 집결시키다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병사들을 집결시킨 곳이 니만쿄(二萬鄕,이만향)이다. 2만 명의 병사들이 모였던 곳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으로 지금의 오카야마시 인근에 있다.
당나라에서는 655년 10월에 측천무후가 등장한다. 당 태종의 후궁이었던 무미랑이 태종의 아들 고종의 부인이 되어 황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때부터 당나라는 사실상 측천무후의 천하가 되었다. 고종 때 당나라는 주변국들을 모두 복속시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부국강병을 보여줬던 '성당(盛唐) 시대'를 열게 된다.
역사에서 강한 권력을 행사한 여인으로 묘사된 두 여인. 우리나라 기록에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일본서기에 요녀라고 표현했던 의자왕의 여인 은고. 655년은 세 명의 걸출한 여인이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해였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세 여인 간의 지략싸움에 초점을 맞춘 글을 쓰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백제가 망하기 직전 5년간의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인 은고의 수족 역할을 할 사람으로 5명의 미녀를 설정하고 연꽃, 즉 소취선, 소무비, 어리연, 홍련 그리고 고귀련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첫 번째 책과 마찬가지로 [꽃잎처럼 날리다]라는 제목을 먼저 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여를 대표하는 유적지 가운데 하나인 '낙화암'. 백제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조선시대 시인이 감성적으로 읊은 시에서 유래된 낙화암이 부여를 대표한다는 것이 못내 싫었다. 근거도 없고 생뚱맞기만 한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정절을 지키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억지가 싫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차라리 그럴듯한 스토리 하나 만들어 보자는 오만함이 배어있는 제목이기도 했다. 삼천궁녀 대신 다섯 미녀가 신라군에게 쫓기다 낙화암에서 산화하는 것으로 소설을 맺으려 했다.
여자들의 이야기는 얼치기 작가가 도전하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여인들의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고, 어느 여인과 절절한 사랑도 해보지 못한 밋밋한 남자의 상상력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로맨스도, 무협 소설도 그렇다고 판타지도 아닌 어정쩡한 글이 써진 것이다. 답답했다. 화도 났다. 글쓰기를 멈추고 백제와 관련될 만한 것을 더 찾아보았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된 소설이 《규염객 전(虯髥客傳)》이었다.
당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중국 전기소설로 무협소설의 시초라고 평을 받는 책이다. 당 태종의 군사 고문이자 《이위공문대》의 저자로도 알려진 이정(李靖)과 그의 애첩 홍불녀(紅拂女) 그리고 규염객(虯髥客)이라는 사내,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중국을 횡행하던 규염객이 이정의 주선으로 당 태종 이세민을 만난 뒤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며 중원을 떠나 중국 동남쪽에서 왕위에 오른다는 줄거리다.
일부에서는 규염객의 모델이 연개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 태종과 비견될 만한 인물이 그 말고는 없다는 이유였다. 연개소문을 주인공으로 하는 《갓쉰동 전》이 《규염객 전》과 스토리가 비슷하다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럴듯한 설명이 따르지만 내게는 차라리 의자왕이 더 가까운 모델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젊은 시절 연개소문은 천리장성을 쌓는 책임자로 그 행적이 비교적 많이 알려졌지만 의자왕은 태자로 책봉되는 40세 무렵까지의 행적이 전해지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규염객의 모델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지만 굳이 우리나라 인물에서 찾는다면 의자왕이 연개소문보다는 더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규염객 전에 "동남쪽에 새로운 왕이 나타나면 그게 나인 줄 알아라." 하는 말을 이정에게 남기고 떠났다는 구절도 있다.
전혜안 작 [규염객과 홍불녀], 청나라
소설의 주인공을 은고에서 의자왕으로 바꿨다. 의자왕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가 많지 않았지만 '대륙 백제'를 주장하는 글들을 읽으며 스토리를 엮었다. 그래서 바꾼 제목이 《대륙에 남긴 꿈》이었다. 중국에 거대한 영토를 가졌던 백제를 부활하려는 의자왕의 야망을 표현해보려는 의도였다.다시 지난한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