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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04. 2021

순간을 저장하는 방법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아이가 태어난 지 몇 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어요. 낮잠을 재우려고 유모차에 덮개를 덮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들어왔는데, 살짝 덮개를 들춰 보니 아기는 잠은 커녕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더군요.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짓던 환한 미소. 신생아때 무의식적으로 짓는 배냇미소가 아닌 “사회적 미소”가 바로 이거구나 싶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재빨리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휴대폰을 꺼내는 그 짧은 순간에 미소가 사라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기억도 나요.


그 사진은 아직도 자주 꺼내봅니다. 귀중한 순간을 이렇게 저장할 수 있단 것에 감사하면서요. 세상에 있는 모든 소중한 걸 저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법?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는 어떨까요? 그것도 저장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실생활에 가깝게 맞닿아 있어요. 요즘도 고급 시계들 중에 태엽을 감아야 하는 시계들이 많이 있는데요, 시계 태엽을 감는 것도 에너지를 저장하는 겁니다. 미리 빙글빙글 돌려서 에너지를 저장해 놓으면 스프링에 보관된 에너지가 시간차를 두고 사용될 수 있는 거죠. 

시계 태엽도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 (이미지: Unsplash)

우리가 흔히 쓰는 배터리도 화학적인 방법으로 에너지를 저장해 뒀다가 필요할 때 방출시켜 쓴다는 점에서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입니다. 뿐만 아니라 양수 발전 시스템도 물리적 방식의 에너지 저장 방법으로,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 저장했다가 떨어뜨리며 낙차를 이용해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것입니다. 이렇듯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개발되어 있고,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에는 ㅇㅇㅇ가 필요하다

지난 주에 언론에 크게 보도된 뉴스가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정부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었는데요, 이런 에너지원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청정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큰 장벽이 있습니다. 햇빛이 없는 밤이나 일조량이 적은 날, 바람이 불지 않는 때에는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간헐성'이 바로 그것인데요, 그래서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바람이 쌩쌩 불 때 열심히 생산한 전기를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합니다. 

에너지 저장 시스템 (이미지: Omazaki Group)


그런데 문제는 그 비용이 매우 크다는 겁니다. 지난 주 뉴스[1]에 따르면 ESS 구축에 최소 787조원에서 최대 1,248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2021년 국회를 통과한 국가 예산이 558조원이라고 하던데, 그걸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수치죠.  이 뉴스에 난리가 날 법도 합니다. 


게다가 신재생 에너지의 또다른 문제점은 필요한 부지에 대비해 발전 효율이 낮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안 그래도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는 멀쩡한 산을 깎아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런데 ESS까지 더해지면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ESS 구축에 필요한 땅이 4,182만~6,680만 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48배에서 76배에 달하는 크기라고 해요. 청정 에너지를 위해 온 나라의 돈이란 돈은 죄다 긁어 모으고 땅이란 땅은 죄다 사용하잔 얘긴가 싶죠. (물론 이건 100% 신재생 에너지 + ESS만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에 대한 수치이기는 합니다.)



ESS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기후 위기 속에 신재생 에너지 사용은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고, 에너지의 저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력 뿐 아니라  모바일 기기도, 전기차도, 에너지의 저장 없이는 아예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ESS 분야는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성장하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2015년 247억 달러였던 시장이 2020년 414억 달러로 급성장한 것으로 추정되니까요 [2]. 


최근 현대자동차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다시 이용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3]. 전기차 시장 자체가 성장하면서 수명을 다한 배터리 물량도 같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현대차 울산 공장 안에 태양광 발전소가 있는데, 거기서 생산된 전력을 전기차 배터리를 재사용한 ESS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외부 전력망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실증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올해 초에 보도되었어요. 일종의 작은 발전소로 기능하게 되는 거죠. 자동차의 배터리는 용량이 크지 않아 일단은 시범 사업 수준이지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선순환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참고 기사 

[1] http://www.biztoday.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28351

[2] http://www.ecotig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51

[3]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1/10/20210110001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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