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Sep 27. 2021

우리 동네는 너네랑은 달라

지역별로 너무 다른 기후변화

1940년대 말, 미국 공군은 전투기로 새로운 제트기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조종 기술을 훈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비행기에서 유달리 사고가 많이 났다고 해요. 그래서 전문가들은 4천 명이 넘는 조종사들의 신체 치수 중 팔과 다리 길이, 신장 등 비행기 조종에 연관이 깊다고 생각되는 열 가지를 꼽아서 평균을 낸 뒤, 이에 맞춰 조종석을 디자인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사고는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모든 신체 치수가 그 '평균값'에 근접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거예요. 평균에 가까운 팔 길이를 가진 사람이 가슴둘레는 평균보다 훨씬 더 작고, 키는 엄청 큰 사람이 다리 길이는 평균에 가까운 등, 엄청나게 들쑥날쑥 이었던 겁니다. 


조종석을 '평균'에 맞추면 누구나 적당히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엄청난 오해였던 거죠. 이건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 나오는 사례인데요, 평균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부정확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얼마나 그 수치를 신뢰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신체 조건뿐만 아니라 시험 성적 때문에 평균에 굉장히 익숙합니다. 실제로 평균값은 산만한 데이터를 하나로 모아주는 편리한 기능을 하고, 유용할 때가 많기는 하죠.  

'평균' 체격이라는 것은 얼마나 의미가 없는가 (출처: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하지만 평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제각각의 사례가 갖는 독특성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요즘 제가 이걸 뼈저리게 느끼는 건 지구 온난화 때문인데요, 기후변화에도 '평균'이 참 많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워낙 넓고 지역마다 기후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정부들이 모여서는 평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지금 기후변화 대응의 국제적 노력은 몇 년 전 체결된 '파리 협약(Paris Agreement)'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살펴보면, 여기도 평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파리 협약의 목표: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아래에서 억제하고,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하자고 협의한 거죠. 2도가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마지노선으로 잡은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 마치 아직은 2도만큼 더워지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먼 미래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2도라는 건 어디까지나! <평균> 일뿐입니다. 국가마다, 지역마다 너무나 들쑥날쑥한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동네가 2도만큼 기온이 상승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 아직 시간이 있구나'하고 안심할 때가 아니란 거예요. 



지역별로 뜯어보자

그럼 지역마다 어떻게 다를까요? 지난주에 Carbon Brief에서는 일반 대중도 손쉽게 자기가 속한 지역의 기온 상승 폭과 예상 변화를 볼 수 있는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1]. 이 링크에 가 보면 interactive map을 볼 수 있는데, 전 지구를 64,800개의 그리드(약 100킬로미터 너비)로 쪼개서 해당 지역의 기온 변화 추세를 볼 수 있어요. 


현재까지의 기온 변화는 1850년부터 2017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했고, 미래의 경우 2100년이 되었을 때 기온 변화 예측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예측치는 '이 지역은 앞으로 4도 더워질 거야'라는 식으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별로 매우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당연히 지금 엄청 많이 노력하면 그나마 온난화 정도가 덜할 거고, 그냥 이대로 막 살면(?) 걷잡을 수 없이 더워지겠죠.  


물론 이런 예측에도 불확실성은 존재하지만, 수십 개의 정교한 기후 모델을 평균 낸 수치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트렌드는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한번 한국은 어떤지 보았습니다. 

한국 수도권의 기온 상승폭은 이미 1.5도

오잉, 수도권을 클릭하니 이미 벌써 1.5도가 올랐다고 해요. 지금 당장 배출량이 0으로 되더라도 기온은 당분간 쭉 오를 텐데, 2도 이내로 제한하는 건 이미 물 건너간 건가 싶습니다ㅠㅠ 


제가 살고 있는 홍콩도 한번 보았습니다. 

홍콩은 아직 0.9도

비행기로 고작 3시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기온 상승폭이 0.9도로 한국보다는 훨씬 작습니다. (1도, 1도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기후 시스템에서는 엄청난 변화이기 때문에 0.6도 차이라는 것은 아주 큰 차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좀 무서운 마음으로 극지방을 클릭해 보았는데요. 

이미 2.6도 ㄷㄷ 

으악!!

벌써 2.6도가 올랐습니다... 더 무서운 건 그 아래 그래프인데요, 2100년까지 2.8에서 8.4도(!)가 오를 수 있다고 해요. (뭐, 뭐라고)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도 2.8도 상승이란 것도 충격이고, 아무것도 안 하면 8.4도가 오른다는 것도 소름이 끼칩니다. 이제 얼음으로 덮인 북극은 볼 수 없겠다 싶어요. 



특히 적응 정책은 지역 레벨에서 

극지방을 보고 상당히 우울한 기분이 들기는 합니다만, 상황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도 생각해 봐야겠지요. 특히 지역마다 굉장히 다른 기온 상승 양상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 폐해의 모습도 다를 겁니다. 어딘가는 가뭄과 물 부족이 가장 큰 문제일 거고, 다른 곳은 홍수와 태풍 피해가 더 큰 문제일 테니까요. 


일단 다 같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히 해야겠지요. 그렇지만 이와는 별도로, 더워진 세상에 적응하는 정책은 지역별로 다르게 고안되어야 할 겁니다. (기후변화 '적응' 정책이 뭔지는 아래 글에)  

https://brunch.co.kr/@yjeonghun/28

몰디브나 투발루 같은 섬들은 벌써 해수면 상승에 대처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제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걸 넘어, 벌써 많은 인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다 적응에 해당하죠. 우리 지역의 상황은 어떠하며 앞으로 어떤 폐해가 가장 걱정되는지, 대책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역별 정책이 앞으로 점점 중요해질 겁니다.



[1] https://www.carbonbrief.org/mapped-how-every-part-of-the-world-has-warmed-and-could-continue-to-warm?utm_campaign=Carbon%20Brief%20Weekly%20Briefing&utm_content=20210924&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Weekly


매거진의 이전글 자비스, 도와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