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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23. 2020

어차피 못 막을 거, 적응이라도 해 보련다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 정책을 생각하다

해안가에 집을 짓고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좋겠다)

이미지: Orange County Register/SCNG

오션뷰를 즐기며 잘 살고 있었는데, 요즘 요즘 이상하게 집이 자꾸 침수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주변에 "요즘 왜 자꾸 이래?"하고 물어보니 빙하가 죄다 녹으며 해수면이 상승하는 바람에 그렇다고 하네요. 근본적으로는 해수면이 더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그러니까 빙하가 더는 녹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막상 해안가에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높아지는 해수면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겠지요? 집 아래에 나무로 기둥을 만들어 수면 위로 한 뼘 높이 고쳐 짓는다든지 말이죠.



더워진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하니까

이렇게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완화(mitigation, 또는 저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적응(adaptation)이죠. 말이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별 거 아닙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 자체를 줄이는 것이 완화 정책입니다. 반면, 기후변화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현실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적응 정책이지요. 근본적으로 보면 완화가 중요하긴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죠.  당장 우리 집 아래 물이 찰랑거리니 말이에요. 온난화 문제가 존재하는 한, 완화와 적응은 병행하여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 외에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기후변화 적응의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요? [1]


- 제한된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기후변화로 인해 건조한 지역에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기 때문)

- 건축 기준을 변경하여 변화하는 기후 조건이나 극단적인 기상 현상에 대비

- 홍수 방지를 위한 인프라 구축, 둑 높이를 더 높이 변경

- 가뭄에 더 강한 작물 개발

- 태풍이나 화재에 덜 취약한 수종을 임업에 활용

- 토지 일부를 할당해 향후 동식물을 이주시킬 준비를 하기


찬찬히 읽어 보면 단순히 '온난화'와는 다르게 온난화가 가져올 여러 모습들(국민 건강 위협, 극단적 기상 현상, 더 잦아진 가뭄과 홍수, 그로 인한 인프라 파괴와 생태계 파괴,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 및 식량난)을 상상하게 되지요. 완화 정책은 '이런 미래는 너무 끔찍하니 어떻게든 막아 보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적응 정책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곱씹어 보며;;; 어디 어디가 취약한지를 평가하고 대책을 세우는 다소 우울한 작업입니다. 더워지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더워지는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각 관련 부처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적응이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

원래 기후변화 대책이라고 하면 주로 완화 정책을 말했는데요, 최근 적응 정책에 대한 논의가 미디어에 자주 눈에 띕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저감 노력이 시원치 않기 때문이죠. 게다가 지구의 기후 시스템은 관성(intertia)이 굉장히 크다고 말하는데요, 지난 백 년간 뿜뿜 뿜어온 온실가스 바다에, 식물에 슉슉 흡수되면서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근데 요즘 기후변화의 징후가 지구 곳곳에 보이며,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기후의 관성 때문에 당장 변화가 눈에 보이진 않습니다. (이미지: Skeptical Science)

지난 글에서 기후 민감도(climate sensitivity)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요, "이산화탄소를 지금처럼 대기 중에 뿜어 대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예전보다 2배가 됐을 때 과연 지구는 몇 도나 더워질 것이냐"를 기후 민감도라고 정의한다고 했었죠. 근데요, 시뮬레이션 돌려보니 1.5에서 4.5도라고 하더니.. 얼마 전 기사를 보니 5도가 넘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망했는데...?). 뿐만 아니라 기온 상승과 그 피해는 선형적으로 (또는 예측 가능하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당장 완화를 해도 어느 정도의 기후 재앙은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생태계는 민감하고 복잡하다 보니 이미 어느 정도는 되돌릴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적응 방안이 꼭 필요한 이유죠.


몰디브나 투발루 같은 섬나라에게는 적응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몰디브는 특히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의 아이콘처럼 되었는데요, 해저에서 각료 회의를 열어(!)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지요. 이런 나라들의 국민은 환경 난민이 되는 것이 코앞의 일이라, 아예 이주를 하는 것이 유일한 적응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관광객들에게 탄소세를 걷어 이주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해요.

몰디브의 해상 각료 회의 (이미지: reuters)

사실,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세상에서 적응의 가장 쉬운 사례는 바로 '냉방'입니다. 더워지는 기후에 적응하려 냉방을 하는 것도 생존 전략의 일부니까요. 하지만 적응 정책이야말로 포괄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이 정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다들 냉방을 더 하려 들어서 에너지 수요가 늘고, 발전소에 냉각수가 더 필요하게 되어 물 부족 현상을 심화시키는 문제는 어떻게 할까요? 게다가 모두가 냉방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냉방 장비를 구입하고 가동할 수 있는 것도 저소득층에서 보면 큰 사치니까요. 더워진 지구는 모두를 힘들게 하겠지만 확실한 건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거죠. 따라서 저비용 적응 기술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 것입니다.


적응 정책을 진지하게 마련해야 하는 이 시국이 안타깝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듯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해안가에는 물이 찰랑찰랑 올라오고 있으니까요.


[1] ec.europa.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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