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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18. 2021

해외 생활 9년, 마음을 다시 여는 법

미국 5년, 홍콩 4년.


해외 생활을 마치고 며칠 후 귀국을 한다. 둘이었던 가족은 어느새 넷이 되었지만, 잦은 이사로 유목민 같은 생활을 한 덕에 가구 한 점 없이 잔짐만 잔뜩이다. 팔랑팔랑 자유분방하던 새댁은 걱정이 많은 헌댁이 되었다. ENFP였던 나의 MBTI는 지금 새로 하면 사뭇 달라져있지 않을까 싶다.


홍콩의 운치 있는 낡은 거리와 청량한 12월 바람을 생각하면 좀처럼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매일 쨍한 캘리포니아의 날씨도, 강 건너 맨해튼이 보이는 탁 트인 뉴저지의 공원도, 자꾸 뒤돌아볼 만큼 미련이 남았다. 첫째와 둘째를 낳은 이 땅들은 내게 각각 각별하고 달콤하다.



하지만 해외 체류가 길어지자 아무래도 고국의 친구들과는 멀어져 갔다. 나는 아이를 일찍 낳은 편이라 가끔 귀국해도 어린 아들 때문에 마음껏 나가서 놀기 어려웠고, 빠르게 변하는 한국 생활과 거리가 멀어지자 공통점도 점점 줄어들었다. 오랜 친구들이야 물론 어제 만난 것처럼 편했지만, 만나고 싶은 친구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다행히 해외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는 했다. 성인이 되어 만났음에도 아마도 평생 보고 살 듯한 친구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이사를 할 때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내가 배운 건 ‘마음의 벽을 세우는 법’이었다.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는 상대가 좋은 사람이면 헤어지고 나서 그리워서 힘들고, 잘 맞지 않는 사람이면 내가 했던 이야기가 허물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힘들었다. 대부분은 전자이긴 했지만, 어쨌든 마음을 여는 리스크가 크단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점점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상대는 적어졌다. 약간 쓸쓸하긴 했지만 혼자서 일도 하고 남편과 놀며 만족을 찾았다. 원래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홍콩에 처박힌 지 오래지만 한국이 그립다기보단 사람이 그리웠다. 양가 부모님과 소수의 친구들. 아이들이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나이에 뵙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고,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은 물론이고 굵직한 경조사마저 놓치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한국인임에도 고국의 인연들과 너무도 절연되어 지낸 삶이기에 귀국은 여러모로 좋은 선택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내게도 또 좋은 친구가 생길까 -


아이를 매개로 하는 피상적인 관계 말고,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기 자신과 꿈을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을, 새로 이사하는 낯선 그곳에서도 만날 수 있을지 나는 두렵다. 그리고 설사 만난다 해도 내가 활짝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건만. 사실은 스무 살 풋사랑이 끝난 후가 아니라 나이를 이만큼은 먹어야 알 수 있는 감정이었구나.



지난 며칠, 이곳에서 친했던 소수의 몇 명과 작별 인사를 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벽을 세웠기에 예전에 미국에서만큼 눈물이 나진 않지만, 묘하게도 마음이 허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벽은, 허물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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