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의 기쁨과 슬픔
처음으로 엄마가 되면 무언가 하나에 꽂혀서 유달리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일단 나와 내 주변인들은 많이들 그랬다.)
친하게 지내던 한 언니는 천기저귀에 꽂혀서 그 정신없는 일상에 매일같이 천기저귀를 쓰고 삶는 과업까지 기꺼이 추가시켰다. (최근 만나서 그 얘기를 물어보니 단호하게 "내가 미쳤던 거지, 미쳤던 거야"라고 단언했다) 다른 언니는 아기의 잠 시간에 단단히 꽂혀서, 아기가 많이 자면 많이 잔다고, 적게 자면 적게 잔다고 자나 깨나 걱정을 했다.
나의 경우는 모유였다.
친정 엄마는 언니와 내게 둘 다 모유만을 먹이셨는데, 은연중에 나도 그래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꽂히는 데 뭐 이유가 필요할까. 그냥 모유를, 모유만을 먹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돼지족을 삶아 먹고 미역국을 끓여 먹고 마더스밀크티를 마시고 틈틈이 유축을 했다. 아마 그때의 나는 젖소보다 부지런히 착즙(?)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첫아기 모유수유가 얼마나 어려운지. 임신도, 출산도 그 어려움에 대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모유수유가 얼마나 거대한 산인지 토로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기가 젖을 빨면 나오는 건 줄 알았다. 하, 나오긴 뭘 나와.
아기도 나도 생초보였기에, 모유수유는 가시밭길이었다. 잘 안 나오면 한 번쯤 분유로 보충해주면 좋았을걸, 미련하게 모유를 고집하느라 몇 시간씩 젖을 물렸고, 나의 하루는 수유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아이가 칭얼대던 어느 날은 두 시간 가까이 젖을 물리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핑 돌기도 했다. 모유가 풍부한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러나 잘 나온다고 능사는 아니다. 아이가 먹는 양보다 내 몸에서 생산되는 양이 많으면 젖몸살과 유선염이 손에 손잡고 찾아온단 걸 미처 몰랐다. 모유수유가 안정화되었다 싶었을 무렵, 가슴이 돌처럼 딱딱하게 뭉치더니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미국에 살고 있었으니 가슴 마사지 같은 걸 받을 수도 없었다. 남편에게 부탁했지만 남편은 손이 닿기만 해도 몹시 아파하는 나를 보더니 차마 세게 마사지를 해주지 못해서, 큰 효과가 없었다.
아기가 잘 자던 어느 밤, 딱딱하게 굳은 가슴을 부여잡고 안방 앞 계단참에 앉아 울면서 젖을 짜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 날 결국 민간요법으로 남편이 사 온 양배추를 가슴에 붙였는데, 그 모습을 보며 슬프면서도 참 우스웠다. 인간도 포유동물인데, 본능에 따른 행위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내 고집으로 첫째는 결국 완모를 해 냈지만,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융통성 있게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둘째를 맞을 준비를 할 때는 내 미련한 집착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둘째는 홍콩에서 낳았는데,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액상분유를 엄마에게 부탁해 한국에서 공수했다. 두어 종류의 젖병이며 젖병 솔, 세제까지 야무지게 쟁여 놨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모유 집착을 버린 홀가분한 마음가짐이 첫째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출산 가방에 일찌감치 챙겨 넣은 분유가 무색하게도, 둘째는 처음부터 인생 2회차처럼 젖을 빨았다. 내 몸에서 나오자마자 가슴에 올려진 신생아는 백일은 된 아이처럼 익숙하게 젖을 물었고, 그래서인지 모유도 금방 돌았다. 그러나.. 듣던 것처럼 둘째는 첫째보다는 모유수유가 수월하구나 싶었지만, 섣불리 안심하는 건 역시 성급했다. 젖이 잘 돌면 도는 대로 젖몸살도 일찍 찾아왔고, 사출이 너무 세서 신생아는 사레가 잘 들렸고 배에 가스도 많이 차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이게 뭐야
게다가 첫째와 다르게 둘째는 피부와 장이 예민해서 내가 먹는 것에 몇 배는 신경을 써야 했다. 엄마가 섭취하는 음식이 모유에 직접적으로 영향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음식 때문에 아이가 발진이 생기거나 배탈이 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도 새로운 것을 먹을 때는 늘 망설여진다.
어쨌든 졸지에 둘째도 완모 중이지만, 아직도 모유수유는 무진장 힘들다. 무엇보다 수유가 오로지 나의 몫이기 때문에 아기와 두세 시간 이상 떨어져 있지 못해 행동에 제약이 많다. 수유 텀이 3-4 시간이 된 지금도, 시간을 들여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키다 보면 다음 수유 텀까지 여유롭게 외출할 만한 시간은 나지 않는다.
아기를 돌보느라 피곤에 찌든 육신을 진한 커피로 깨울 수도, 시원한 맥주로 달래줄 수도 없다. (이게 사실 가장 큰 슬픔이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파블로프의 멍멍이마냥 몸에서 조건 반사가 일어나 가슴이 욱신거리며 젖이 도는데, 이 또한 민망하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나는 모유수유를 한다. 사실 아기에게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도 직수를 지속할 만큼 모유수유는 내게 특별한 경험이다. 아기가 나와 눈을 맞추며 오물오물 젖을 먹는 모습을 보면, 매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벅차오른다.
내가 첫째를 임신 중일 때, 우리 시누이가 당시 두 돌 반이었던 조카를 데리고 놀러 온 적이 있다. 예비 엄마였던 나는 육아 선배이자 멘토인 그녀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수유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젖을 먹이며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들어다 보면, 내가 아기를 사랑하는 것만큼 아기도 나를 사랑해 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아기를 낳아 모유를 먹일 때마다 그 말이 떠오른다. 나 혼자 짊어지는 이 과업이 너무도 힘들긴 하지만, 그만큼 그 축복도 오롯이 나의 몫이구나. 그래서 오늘도 고단한 포유동물로서의 하루를 기꺼이 시작하려 한다.
덧붙이는 말.
* 부제는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생각나서 따 왔습니다.
* 저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혼합수유나 분유수유에도 각기 기쁨과 슬픔이 있을 것입니다. 무작정 모유수유를 권장하려는 글은 절대로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