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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pr 11. 2022

비싼 것을 골라 사는 여자

얼마 전, 이제 생후 5개월이 된 저희 집 아가를 위해 물티슈를 새로 구매했습니다. 복숭아 같은 아기 엉덩이를 닦아줄 제품이니 조금 신경 써서 사야겠다 싶었지요.

물티슈는 육아 및 살림과 환상의 짝꿍입니다. 아기 엉덩이나 장난감 말고도, 집안 곳곳을 걸레나 행주 대신 간단하게 슥 닦기도 하면 참 편하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물티슈를 물 쓰듯 쓰다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곤 했습니다. 그냥 휴지와 달리 물티슈는 물에 녹지 않는데요, 사실 대부분의 물티슈는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플라스틱 계열 합성섬유를 이용했으니 썩지도 않죠. 한 기사를 찾아보니 썩는 데 무려 10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하네요. (사실 저는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가, 큰애가 볼일을 보고 물티슈를 사용해서 변기가 막히는 바람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생분해' 물티슈라는 게 나오더라고요? 찾아보니 4주 정도 지나면 생분해되는 재질로 만들었고, 환경부에서 시행하는 '생분해도 테스트'도 통과했다고 해요. 환경부에서는 호기성 생분해 조건에서 180일 이내에 생분해도 90% 이상인 경우, 또는 분해 추세가 뚜렷한 45일 이내 생분해도 70% 이상일 때 생분해도 적합성을 인정해 준다고 합니다. 구매해서 사용해 보니 다른 물티슈에 비해 품질도 더 우수한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순둥이' 물티슈 제품 설명


물론 가격은 조금 더 비쌉니다. 쿠팡 기준, 같은 브랜드의 일반 물티슈는 10매당 188원인데, 똑같이 구성된 생분해 물티슈는 335원이거든요. 1장당 약 15원 더 (거의 두 배!) 비싸게 주고 사는 셈이죠.



더 비싸도 괜찮아 

이렇게 환경에 더 친화적인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더 지불하는 비용을 "그린 프리미엄(green premium)"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15원의 프리미엄을 지불하고도 생분해 물티슈를 선택했어요. 그 편이 마음이 더 편하기도 할뿐더러, 이런 식의 소비가 늘어날수록 기업들에게도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를 시그널링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생분해 물티슈가 훨씬, 훠얼씬 비싸다면 아마도 저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수입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ㅜㅜ


실제로 업사이클링이 유행이라 해서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기웃 거려 보았는데요, 가격이 상당하더군요. 그냥 에코백을 하나 산다면 1-2만 원이면 해결될 텐데, 프라이탁 같은 제품을 구매하려면 40만 원에 육박하는 지출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물론 이런 제품은 이미 사용된 방수천이나 자동차의 안전벨트, 자전거 고무 튜브 등을 다시 사용할 수 있으니 의미 깊습니다. (눈에 확 띄는 독특한 디자인도 한몫하죠)

비, 비싸...!

공정 과정 역시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공장에서도 재활용열이나 빗물을 사용하는 등 최대한 환경 친화적으로 한 땀 한 땀 제작하다 보니 가격이 껑충 뛸 수밖에 없죠. 그러나 이러한 가치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린 프리미엄이 상당히 높음을 의미합니다.  



전기도 깨끗하게 생산하면 더 비싸져요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에만 그린 프리미엄이 붙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물 쓰듯 쓰는 전기에도 프리미엄이 붙을 수 있어요. 다들 잘 알다시피 화석 연료 발전에 비해 신재생 에너지 발전은 단가가 더 비쌉니다. 기존 발전소 시설 말고도 따로 설비를 마련하고 운영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뿐더러, 간헐적인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 사용에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저장 장치가 딸려 와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후변화에 해가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화석연료를 단박에 끊어내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만일 소비자 입장에서 “난 더 비싸도 깨끗하게 생산된 전기만을 쓰겠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돈을 더 내라고 하면 되겠죠. 마침 한전에서는 요즘 원하는 소비자에 한해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소비자, 특히 기업들은 좀 더 비싸더라도 청정하게 생산된 전력을 구입한 뒤 “우리 기업은 이렇게나 생각이 깊고 친환경적이다”라고 자랑할 수 있겠지요.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는 것이 관건

그런데 이 녹색 프리미엄 제도는 올해 시들시들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프리미엄을 지불할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단 게 가장 큰 원인이겠죠.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린 프리미엄은 너무 높으면 안 됩니다. 아주 쪼끔만 더 지갑을 열어도 될 만큼 최대한 낮춰야 많은 사람들이 초록색 선택을 하게 되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니 그린 프리미엄이 아주 낮은 제품도 있어요. 저는 이번에 귀국한 뒤, 정수기를 설치하기 전까지 2-3주는 페트병 생수를 사다가 마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부가 투명 페트병 분리 정책을 추진하며, 비닐 라벨을 아예 제거한 삼다수가 나오더군요. 무라벨 제품인 “삼다수 그린”을 처음 선 보일 때, 삼다수 회사는 일반 삼다수와 같은 가격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 찾아보니 쿠팡 기준으로 삼다수 그린이 오히려 싸더군요. 아마 재고량, 생산량 등 여러 요인이 일시적으로 작용한 것이겠지만, 이런 경우는 그린 프리미엄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죠.


환경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내 호주머니 사정 역시 걱정하는 저 같은 소비자가 많을 겁니다. 그린 프리미엄이 낮은 여러 제품이 나와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선뜻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표지 이미지: 어린이 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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