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그러니까, 몰디브는 더 늦기 전에 가야 해. 나도 내년에 여자 친구랑 갈 거야. 거기 석양이 천국의 초저녁 복사본이라는 말은 들어 봤지? 그건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 안 그럼 억울해서 못 죽지.”
신혼여행지로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친구에게, 다른 친구는 이렇게 추천합니다. (천국의 초저녁 복사본이라니! 가보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커플을 두고 해 줄 법 한 말 아니겠어요?
그런데 사실 그전에 이 친구는 이런 찬물 끼얹는(?) 소리를 했었습니다.
"해수면 상승 때문에 백사장이 점점 짧아지고, 수온 상승으로 산호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 모든 섬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산호가 전멸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강산 변하는 데 10년이면 충분해. 헛소리가 아니라 과학자들 이야기야.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못 가. 사라져 버려서. 고대의 아틀란티스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거지."
이 이야기는 김기창의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이라는 소설 중에 나옵니다. 뉴스에서 다루는 북극곰이나 유럽 어드메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담은 너무나 먼 얘기 같지만, 사실은 기후변화는 신혼여행을 앞둔 옆집 예비부부에게도 무관하지 않단 거죠.
제목부터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이라니. 사랑은 사랑인데, 시대가 녹록지 않습니다. 그런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과 일상은 계속된다, 뭐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일상 속에서 환경 파괴니, 기후변화니 이런 말들을 많이 입에 올리기는 합니다. 하다못해 먹방 유튜버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플라스틱 포장재가 너무 많이 나온다며 겸연쩍어하는 세상이죠. 그다지 발랄한 주제는 아니지만, 이런 화제를 계속해서 소비하는 것이 일반 대중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친구를 만나 "얘, 요즘 드라마 뭐 봐?"라든가, "나 얼마 전에 새로 생긴 과일 가게에 가 봤다?"라든가, 이런 소소한 화젯거리 중 기후변화나 환경 문제가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단 거죠.
요즘 저는 6개월 아기를 모유 수유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커피와 맥주에 대한 심각한 금단 증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손이 덜덜) 어서 모유수유를 끝내고 시원한 맥주를 유리잔에 찰찰찰 따라서 들이킬 생각만 하면 벌써 입가에 거품이 묻는 기분이에요. 그런데, 웹툰을 보다가 이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기후변화와 물 부족, 식량난은 짝꿍인 거 아시죠? 기후가 변하니 농업용수와 식량 생산에도 영향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기후변화는 맥주를 만드는 보리 수확량에도 영향을 미쳐서 맥주값을 2배나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더워진 지구에서 시원한 맥주도 맘껏 마실 수 없다니, 금단 증상이 더 심해지는 기분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와인도 마찬가지라서, 기후에 예민한 피노 누아 같은 품종은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대신 타 품종을 재배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해요. 영화 <사이드웨이>를 보신 분들이라면 가슴을 칠 소식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일상에 깊숙하게 스며든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분야를 공부했다 보니, 뉴욕타임스에서 발행하는 Climate Forward라는 뉴스레터와 영국의 싱크탱크 카본브리프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해도 참... 노잼이에요. 아이 학원차를 기다리며 다른 학부모와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 공약과는 다르게 화석연료 개발을 장려하는 정책을 자꾸 발표하던데, 아무래도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관계있겠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결국 본인이 즐겨하는 행동에 이런 주제를 조금씩 포함시켜 나가는 게 첫걸음일 거예요. 저는 휴대폰을 즐겨 보는 편입니다(야, 너도?!). 저 같은 사람들은 소설이나 웹툰을 좋아한다면 아까 언급한 책이나 웹툰을 손바닥 안의 화면으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또, SNS를 하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할 수도 있겠죠.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공감할 겁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에너지를 소진시켜 잠을 잘 재울 것인가'가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게 마련인데요(저만 그런가요..). 이왕 아이와 같이 할 여러 활동을 고민하는 거, 기후변화나 환경 문제에 대한 활동도 포함시켜 볼 수 있단 거죠. 아이와 함께 관련 책을 읽고, 전시회를 방문하고, TV 프로그램을 챙겨볼 수도 있겠죠.
아래와 같은 행사도 발견했는데요, 대구과학관이지만 요즘은 편리하게 유튜브로도 시청할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일상의 한 켠을 내어줄 수 있겠지요.
이렇게 기후변화라는 무거운 담론이 일상에 자리 잡게 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웹툰과 TV 프로를 보고, 이웃과 환경 문제를 함께 한탄한다고 달라지는 건 별로 없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개인은 소비자이며 유권자고, '티끌 모아 태산'할 때 그 티끌입니다. 다들 일상적으로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를 입에 올릴 때 기업과 정치인들은 결코 대중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죠.
사실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아무리 애써봐야 정치하는 사람들이 굵직굵직한 정책을 바꾸는 효과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나도 안다. 하지만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삶에 밀착되어 문화를 이루면 결국 녹색 비전을 가진 정당, 환경을 중시하는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를 뽑게 되리라는 점도 나는 안다.
- 이진민, <아이라는 숲> 중
그래서 저는 "요즘 넷플릭스 뭐가 재밌어?"라는 말처럼, 친환경 제품을 써본 경험을 공유하고, 가정에서 전력을 아끼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수다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물에 잠기지 않은 '천국의 초저녁 복사본'을 한 번 구경이라도 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이 궁금하다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8690540
웹툰이 궁금하다면: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789038
기후위기인간 인스타그램이 궁금하다면:
https://www.instagram.com/climate.human/
국립대구과학관 행사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