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리 막지 않았어? (1)

by Hoon

작년 화제가 되었던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영화 <돈룩업> 중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해? (…) 우리끼리 그런 최소한의 합의도 못 하고 처앉았으면! 대체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 (…) 기회가 있을 때 혜성 궤도를 틀었어야지. 하다 말았잖아요.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 분명 시청자 중 많은 분이 지금 이 말도 안 들을 거예요.


지구를 향해 혜성이 돌진합니다.


당장 대재앙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 앞장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통령이며 세계 최고 기업의 CEO, 유명 TV 앵커 등 쟁쟁한 명사들은 각자 딴소리만 해대는 통에 전혀 진전이 없죠.


이런 “불통의 세상”을 눈앞에 둔 케이트와 랜덜은 어이가 없습니다. 너무나 명백한 눈앞의 재앙을 두고도 어쩌면 사람들은 각자의 이익만 좇고 있을까요? 누군가는 권력을, 누군가는 경제적 이익을, 누군가는 시청률이나 명성을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그저 엄마만 쫓아다니는 한심한 남자도 있고요.)


사실 이 영화는 대놓고 비판하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 사회가 어떻게 기후변화와 같은 중요한 환경 문제를 꾸준히 무시하는지 말이죠. (주연 배우 디카프리오는 기후변화 분야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 왔고, 이번 영화에서도 직접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위험을 경고해 왔고, 이제는 절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당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인데요.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 관심이 부족할뿐더러 본격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국제회의에서조차 성과는 늘 지지부진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 혜성 궤도를 틀었어야지. 왜 막지 않았을까요?

기회가 있을 때 기후변화를 막았어야지. 왜 막지 않았을까요?



막으려고 노력은 했다, 아니 둘러앉아서 얘기하긴 했다

엄밀히 말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1992년 리우 회의 이후, UN과 전 세계 국가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모여 앉아 기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기후변화는 범국가적인 문제인 만큼, 개별적으로 정부가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1997년의 교토 의정서, 2016년의 파리 조약 등 몇 가지 성과가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하지만 '세계 정부' 같은 권위체가 없기 때문에, 국제 협상은 마치 능구렁이 조원들만 모여 있는 '팀플' 같은 모양새입니다. 누구는 큰소리만 치고, 누구는 슬쩍 빠지고, 누구는 잠수를 타고 말이죠. 게다가 어찌어찌 배출량 감축을 약속하고 서명을 하더라도, 국내에서 반발이 있으면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는 법입니다. 교토 의정서도, 미국 내에서 비준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렸죠.


조별과제는 쉽지 않습니다.. (이미지: 인터넷 줍줍)


또 다른 문제는 국가들의 덩치도, 책임도 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이제까지 화석연료를 신나게 태운 건 유럽이나 미국의 몇몇 선진국이 절대다수 아닌가요?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이 뒤늦게나마 경제 발전을 하려는데, 왜 석탄 쓰지 말라고 막느냐 이거죠. 개도국들은 시큰둥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대규모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의 기후변화부 장관 Sherry Rehman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키스탄처럼 탄소 발자국이 미미한 국가들이 왜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의 대가를 치뤄야 하죠? 온난화가 우리 때문도 아닌데 말이죠.


물론 선진국들도 양심이 있는지라,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조달하여 개도국의 청정 개발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약속을 하긴 했었는데... 그러나 이행은 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죠.


(이미지: The GWPF)


파리 협약 이래 현 상황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제한하자"라는 공동의 선언이 전부입니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었던 사항은 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면 위험하니 그 상황을 막자는 것.. 네, 그게 다예요.


배출량을 어떻게 줄일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각국 정부의 의지에 정책 향방이 달려 있단 거죠. 물론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 보니 각 나라에서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긴 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피해는 장기적이고 점진적이기 때문에, 더 시급한 사안이 나오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경제에 직격탄을 맞은 국가들이 경기 진작을 위해 오염 산업에도 후한 지원금을 주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져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급한 대로 석탄이라도 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기후변화 정책은 위태위태하죠.


아무튼 그래서 나름대로 목표를 세우고는 있지만, 실제 성과는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돈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개도국들의 볼멘소리도 여전하죠. 아래는 1980년, 과학자들이 목이 터져라 기후변화에 대해 경고하고 있었던 시점, 미국에서 벌어진 실제 회의 장면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돈룩업>의 모습보다 현실이 나은 점이 1도 없지 않나요?


석유 생산을 중단하자는 발언에 엑슨을 대표해 회담에 참석한 한 신사의 마음이 처음으로 심란해졌다. (...)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원으로 지극히 순차적인 전환을 도모할 계획입니다."
(...) 하지만 일단, 점심부터 먹고 갑시다. 섭씨 26도가 넘는 따사롭고 화창한 날이었고, 회의 참석자들은 플로리다의 태양을 만끽하려면 적어도 세 시간 이상 휴식을 갖는 게 옳다고 입을 모았다.

- 너새니얼 리치, <잃어버린 지구>,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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