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리 막지 않았어? (2)

by Hoon

얼마 전, 열 살 첫째와 동화책을 읽는데 공장에서 더러워진 공업용수를 강물에 몰래 버리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처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오염된 강물 때문에 물고기가 아파지고, 그 물고기를 먹은 오리가 아파지고, 그 오리가 낳은 알을 먹은 동네 꼬마들이 아파지자 누구 잘못인지 모두 알게 되는 그런 이야기였죠.


아이는 안타까워했습니다. "공장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파질 줄은 몰랐나 봐, 엄마. 그렇지? 알았다면 몰래 버리지 않았을 텐데." 저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지만, 속으로는 세상사에 찌든 어른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몰랐을까?
알았다고 해도 다른 선택을 했을까?



몰라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 국가들이 손을 잡고 기후변화를 막는 건 뺀질이들이 모인 조별과제만큼이나 답답하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좀 더 발 빠르고 혁신적인 건 아무래도 사익의 영역, 즉 기업들이죠. 실제로 기업들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입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검은 황금으로 부를 축적한 석유 회사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걸 안다고 회사를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러니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아내어 사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엑슨이 이산화탄소 문제를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엑슨을 사명으로 채택하기 훨씬 전이었다. 1957년, 엑슨의 전신인 험블 오일의 과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화석연료 연소로 인해" 대기로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

기업에 속한 과학자들은 상사의 명령에 따라 이산화탄소 문제를 검토했고 그때마다 경고를 해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될 더 좋은 핑곗거리를 찾아냈다.

- 너새니얼 리치, <잃어버린 지구> p.78-80


기후변화의 폐해가 날로 심각해지며, 각국 정부에서는 '넷 제로 2050' 목표를 앞다투어 발표 중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당장 '0'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2050년까지는 '0'로 만들겠다는 것인데요. (그냥 '제로'가 아니라 ' 제로'인 이유는 배출량을 아예 0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 탄소를 빨아들이는 여러 기술을 이용해서 총량을 0으로 맞추겠다는 소리지요. '탄소 중립'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움직임은 대기업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BP나 토탈, 쉘처럼 거대한 국제 석유 기업들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미지를 바꿔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우니까요. "British Petroleum (영국 석유)"으로 알려진 BP는 "Beyond Petroleum (석유 너머)"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하고, 프랑스의 토탈은 Total에서 TotalEnergies로 사명을 바꾸어 재생에너지 부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로얄더치쉘 등과 더불어 2050 기업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어요.

석유화학 기업이 넷 제로라니, 참 야심 찹니다. 그러나 달성을 못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나요? "노력을 하긴 했는데 잘 안 되더라, 헤헤"하면 욕을 좀 먹고 끝이겠죠. 그게 현실입니다. 스웨덴의 기후변화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넷 제로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문제는 넷 제로 목표 자체가 아니라, 넷 제로가 진짜 행동에 옮기는 걸 미루는 변명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

게다가 이들이 내건 목표도 사실은 잘 뜯어보아야 합니다. '넷 제로인 척'만 하는 그린 워싱(greenwashing)일 수 있거든요. 그린워싱이란 진짜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 '친환경적인 척'만 하는 기업의 결정과 행동을 말합니다. 유명한 사례로는 국내 화장품 기업이 플라스틱 병 외면을 종이 포장재로 덮은 후, "Hello. I'm paper bottle (안녕, 난 종이병이야)"라는 문구를 적어 넣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죠.


넷 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석연료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일단 넷 제로라는 것의 '범위(scope)'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의미는 천지차이로 달라질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생산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포함시키는지, 아니면 해당 기업이 직접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탄소만을 포함시키는지 보아야 하고요. 또, '배출량'의 절대적 양이 아니라 '집약도'를 목표로 삼기도 하는데, 집약도는 낮아지더라도 배출량 자체는 증가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노르웨이의 석유 회사 에퀴노르는 재생 에너지 사업을 강화하며 엑손모빌이나 셰브론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죠. 2021년 1분기에 에퀴노르가 판매한 에너지 중 탄소가 없는 에너지는 0.54%에 불과하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기업들이 내세우는 기후변화 대응책도 아직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지요.



아이에게 뭐라고 해줄까

정부도 기업도, 변화는 느리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모두 싸잡아서 욕할 수도 없는 것이, 이미 우리 사회에는 화석 연료와 탄소 기반 인프라가 너무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우리 개개인은 모두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까요.


당장 누군가의 아빠가 석탄 회사에서 일을 한다면, 생계가 달려 있는데 기후변화를 이유로 기업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이 석유 대기업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하고 있다면요? 이런 이유로 왜 행동하지 않았냐는 질문은 도돌이표가 됩니다.


아이는 어른들에게 궁금한 게 많을 겁니다. "엄마, 정말 지구가 더워지고 있어?" "왜 더워지는 거야?" "자동차나 비행기를 안 타면 어떻게 여행을 다녀?" 아이가 던지는 여러 질문 중, "왜 알았는데도 미리 막지 않았어?"라는 질문이 가장 난감할 것 같습니다.



표지 이미지: https://www.mother.ly/parenting/how-to-talk-to-kids-about-climate-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