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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28. 2023

님비(NIMBY)는 아는데 바나나(BANANA)는 뭐지

Not In My Back Yard! 
(내 뒷마당엔 안돼!) 


다들 아시죠? 님비 현상. 님비즘(NIMBYism)이라고도 합니다. 까마득한 옛날 사회 시간에 배웠던 것 같은데, 쓰레기 소각장이나 오수 처리장 등 꼭 필요하지만 호감이 가지 않는(?) 시설이 자기네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역 이기주의라고 볼 수 있죠. 


그러면 "바나나 현상"이란 뭘까요?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one  


우리 동네 사람 근처에는 그 무엇도 절대로 짓지 말라는 건데요, 님비와 비슷하지만 좀 더 격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죠. 

NIMBY에서 BANANA로 옮겨 가는 사람들 (이미지: Michael Webber 세미나 자료 중)



재생 에너지고 뭐고, 우리 동네엔 안 돼

님비고 바나나고 왜 요즘 특별히 문제가 되느냐 하면,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기후변화는 화석연료를 계속 쓰고 있는 인류 때문에 발생했고 점점 심각해져 가는데요, 이를 타개하려면 '에너지 전환'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석탄을 태우고, 석유를 쓰면 안 된단 거죠. 그러면 어디서 에너지를 구해야 할까요? 고갈되지 않고 깨끗한 에너지원, 즉 태양 에너지나 풍력 등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에너지 전환은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어도, 당장 내일 아침 몸무게를 재 보면 5kg쯤 빠져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면 좋겠다!!) 식이요법을 하고 운동을 하며 장기적으로 노력해야 살이 빠지는 것처럼, 에너지 전환도 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갖추고 화석연료를 덜 쓰는 방향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재생 에너지 인프라라고 하면 꽤나 멋져 보이지만, 막상 우리 집 근처에 짓는다고 하면 어떨까요? 엄청나게 거대한 날로 많은 새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풍력 발전기나, 숲을 밀어 버리고 세우는 멋없는 태양광 발전기들을 생각하면 그리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탄소 배출량이 없지만 우리 동네에 세워진다고 하면 당장 피켓을 들고 시위에 뛰어들 사람들이 많을 거고요. 


실제로 미국 동부에서는 대규모 해상 풍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할 때, 해당 지역에서 상당한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관광업이나 어업으로 먹고사는 지역인데, 다 망칠 거라 이거죠. 사실 멋진 바다 풍경에 선풍기처럼 생긴 풍력 발전기가 더해진다고 생각하면 관광업 종사자는 망했다 싶을 겁니다. 근처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도 배가 망가질까 걱정부터 될 것이고요.

해상 풍력은 이런 모양이거든요. (이미지: windpowerengineering)


그러니 "다 좋은데 우리 동네는 안 돼! 절대 안 돼!!"라며 바나나를 외치게 되는 겁니다. 



어딘가에 짓긴 지어야 한다고ㅠㅠ

'버몬트' 하면 카레부터 생각나는 우리지만, 버몬트는 미국의 주 이름입니다. 작은 편이지만 기후 위기 대처에 아주 적극적인데요, 최근에는 전력 생산을 거의 재생 에너지로만 하고 있을 정도지요. (에너지 전체는 아니고, 전력 생산만 본 거예요!! 수력이 거의 절반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버몬트 하면 카레 아닌가요? ㅎㅎ


아무튼 그런데 버몬트 주의 사람들은 정작 불만이 많다고 해요.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인데 재생 에너지 시설 때문에 괴롭다는 건데요.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음도 싫고, 농지로 쓰일 땅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것도 맘에 안 든다는 거죠.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대규모(utility-scale)의 재생에너지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단 건 알고 있어요. 다만 우리 동네 대신 '저 멀리 어딘가' 다른 곳에 지으면 안 되냐는 거죠. 


화석연료에 반대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찬성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단박에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다 보면, "우리 동네는 태양광 대신 풍력 하면 안 돼요?"라든가 "지상 풍력은 싫으니 해상 풍력으로 갑시다!" "이도 저도 다 싫으니 그냥 다른 데서 전력을 사 옵시다!"라는 이런저런 목소리들이 나오게 마련이니까요. 특히 재생 에너지는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커다란 땅덩이가 필요하다 보니, 숲이나 농지를 밀어 버려야 기존의 화석연료 발전에 상응하는 대규모 발전이 가능하단 문제가 있어요. Citizens for Responsible Solar라는 단체는 재생에너지 자체에는 찬성하되, 대규모 태양광 발전은 비판하는 조직입니다. 아래의 사진처럼 숲을 밀고 세워지는 태양광 발전소를 일관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버지니아의 한 태양광 발전소 (이미지: Citizens for Responsible Solar 웹사이트) 



님비나 바나나는 당연하지만..

자기가 사는 곳을 보호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보니, 님비나 바나나 현상은 사실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정을 다 봐줄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의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꾸준히 늘어 왔지만, 그렇다고 화석연료를 덜 쓰는 건 아니거든요. 인구가 늘고 삶의 기준이 올라가면서, 에너지 수요량은 늘어만 가고 있으니까요. 다이어트를 할 때 트레이너가 "하루 한 끼 이상은 샐러드를 드세요."라고 했을 때, 샐러드 한 끼를 먹는 대신 기존 하루 세끼 대신 네 끼를 먹는다면 다이어트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겠죠. 샐러드와 같은 재생 에너지는 인류의 한 끼를 담당하고 있지만, 인류의 칼로리 요구량 자체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화석연료로 충당하고 있단 거죠. 재생 에너지가 더 빠르게 확대되어야만 기후 위기를 타개할 수 있습니다. 


님비와 바나나는 당연하지만, 타협과 희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역' 이기주의를 조금 확장해서 인류와 지구 전체를 생각해야 하지요. 각자의 사정을 다 봐주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A rapidly changing climate and the urgent need to slow that change leave us with a shrinking pool of options.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와 그 기후변화를 늦춰야 하는 긴급한 필요성 때문에 우리에게 옵션이 몇 개 안 남게 되어 버렸다.) 

- 시에라 클럽의 2021년 아티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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