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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Sep 05. 2023

쇼미더머니, 돈다발 좀 풀어 줘

 

정부가 나서서 해줘야지! 


요즘 이런 말들을 자주 뱉곤 합니다. 


교권은 바닥에 떨어졌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끼니를 굶고, 물가는 자꾸 치솟고만 있죠. 개인의 힘으로만은 해결할 수 없는 무게의 사회적 이슈들은 역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뭘 나서서 해달라는 말인가요?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돈을 풀어 달라는 말이에요. 정부가 나서서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관련 인력을 확충하든 물건을 사서 나눠주든, 돈이 필요하니까요. 자금을 빵빵하게 지원해 주면 그만큼 제도는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겠지요. 


그리고 기후변화야말로 정말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하는 대표주자입니다. 개개인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니까요. 게다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햇볕 쨍쨍 끝내주는 날씨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에 태풍이 와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원래는 서부 해안이 태풍이 형성되기에는 온도가 낮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태풍이 오지 않는 지역인데, 기후변화가 가져온 사태죠. 태풍은커녕 비도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재해 방지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아, 더욱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헉, 캘리 맞나요? (이미지: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통 크게 썼다 -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전임 정부였던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현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해 왔습니다. 선거 공약 때부터 뱉은 말이 있다 보니 관련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무지 애를 썼죠. 그리고 마침내 그 핵심 법안에 서명을 하게 되는데요, 그게 바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입니다. 


오잉? 웬 인플레이션? 기후변화랑 물가 상승이 대체 무슨 관련이 있길래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사실 이 법안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여러 정치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기후변화법'이라고 대신 부를 만큼 인플레이션보다는 기후변화에 더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말은 즉 뭐다?? 돈을 엄청 풀었단 얘기죠! 세계 각국에서는 이 법을 '역사적인 법안'이라고 평가하며 환영했습니다. 무려 $3700억 달러를 기후변화 대응 및 청정에너지에 풀었는데, 한화로 약 482조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나 좀만 주라) 단일 법안으로는 기후변화 부문 최대 규모라고 해요. 

돈 왕창 쓰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미지: 게티 이미지)

저는 미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회사가 에너지 효율 부문이다 보니 다른 내용은 잘 모르겠고 관련 내용만 열심히 봤습니다. 가정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조치를 취할 경우 리베이트(보조금)를 지급받는 내용이 있는데요. 미국은 아파트보다는 그냥 싱글하우스나 다세대 주택 같은 주거 형태가 많다 보니 아파트와는 달리 난방 기기라든지 환기 시스템을 바꾸는 공사를 집주인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용이 무척 부담되겠지요. 전기 냉난방 기기인 히트펌프 설치는 수백만 원 이상 드는 대공사니까요. 그런데 보조금을 받게 되면 이 부담이 확 적어지니, 에너지 효율화나 가정 전력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요. 


미국이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 국가인 건 다들 아실 텐데요, 이 법안은 연방법이기 때문에 이 엄청난 돈은 주 정부로, 또 그 아래의 지방자치단체로 졸졸졸 흘러 내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미국의 크고 작은 회사들과 가정, 개인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고요. 


아무튼 리베이트 정보를 다루는 회사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이 법안의 효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화끈하게 돈을 푸니 이렇게 판도가 바뀌는구나!'라는 기분이랄까요. 원래는 전력 회사 차원에서 주곤 했던 보조금이 연방 정부를 통해서도 부여되니 제도 자체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가정의 난방 기기나 가전을 바꾸려는 개인에게까지 혜택이 가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에게는...?

이렇게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하던 저였는데요. 웃는 사람이 있으면 우는 사람도 있는 법이란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전기차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한국의 현대기아차는 이 법 때문에 난리가 났었단 걸 이제야 알게 된 거죠. 

인플레이션 감축법 너....!! ㅠㅠㅠ (이미지: Unsplash.com)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는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가 좋다고 하는데요, 특히 아이오닉5나 EV6가 인기가 좋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그래서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바로 다음으로 2위 자리를 현대기아차가 꿰차고 있었는데, 이게 사실은 보조금 덕이거든요. 전기차는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내연기관차와는 달리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전기차 보급을 위해 각국 정부는 보조금을 통해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를 장려해 왔습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보조금 기준이 달라지는 바람에 현대기아차는 크게 타격을 받게 된 거죠. 보조금 없이 비싼 전기차를 플렉스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국 생산차를 대신 선택하게 되는 거죠. 이 때문에 미국의 무역 보호주의다, 자국 이기주의다 말이 많았습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미국처럼 덩치가 크고 부유한 나라가 돈을 풀어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함은 당연하면서도, 한국인의 차원에서 보면 '저따위 법안은 없어져 버려라!'라는 마음을 품게 되는 겁니다. 같은 법안이지만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고나 할까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사례를 보면, 아무리 취지가 좋은 법안도 정치 싸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법안이 통과될 때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전통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민주당 의원 한 명도 이 법안에 반대했었거든요. 알고 보니 화석연료 산업에서 로비를 빵빵하게 받았던 것이 밝혀졌죠. 기후변화의 렌즈를 통해 보면 화석연료는 나쁘지만, 사실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던 주축이었고 그로 인한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많으니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거고요. 


그래서 어느 범위의 산업에 혜택을 줄지,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지, 고려할 사항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돈다발을 풀어 기후변화 대응에 온 힘을 다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뭐가 이리 복잡할까요? 그래도 일단은 정부가 돈으로 팍팍 지원해 주는 것, 그거 하나는 확실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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