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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10. 2023

밖에서 군것질거리를 숨겨오시겠다?

어림도 없지

박통통 어린이는 군것질을 좋아합니다. 사탕, 초콜릿, 감자칩... 매일 입에 군것질거리를 달고 살다 보니, 그만 오동통 몸매가 되고 말았지요. 


통통 어린이의 엄마는 이런 아이가 걱정입니다. 매일 정크푸드를 먹다 보니, 균형 잡힌 식사는 뒷전이거든요. 아이의 건강을 염려한 엄마는 결단을 내립니다. "통통아, 이제 집에 과자나 탄산음료, 사탕이나 캐러멜은 일절 사다 놓지 않으려고 해. 이제 삼시 세끼, 밥을 제대로 먹는 거다?"


엄마는 정말 굳은 결심을 하고 온 집안에서 군것질거리를 싹 치워 버렸습니다. 찬장에는 견과류가, 냉장고에는 과일만이 들어차 있게 말이에요. 엄마는 흡족한 마음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통통이가 금방 날씬해지겠지?' 


그런데 웬걸요, 통통이가 집에만 있나요?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고, 놀이터도 갑니다. 용돈으로 편의점에 들러서 초코과자를 사거나,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생라면을 부숴 먹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단 소리죠. 먹다 남은 건 몰래 집 안에 숨겨 들어오기도 하고요.


이처럼 집안에서만 먹을거리를 관리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밖에서 먹을 기회가 있는 이상, 통통 어린이의 식생활은 보다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단 거예요. 



탄소 누출(carbon leakage)의 문제 

이런 문제는 어린이들의 식습관뿐 아니라 탄소배출량 규제 부문에서도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져 감에 따라 많은 국가들이 탄소배출량을 줄이려 애쓰고 있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특히 EU 등의 선진국들은 각종 규제책과 배출권거래제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배출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덕분에 실제로 장기적으로는 감소세이기도 하고요.


이 말은 즉, 집안에 까다로운 엄마가 있는 것과 비슷하단 얘깁니다. 영양 따위는 신경 안 쓰고 달콤한 것만 먹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과 똑같이, 탄소배출량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경제적 논리에 따라 물건을 생산하고 싶은 것이 기업의 마음이죠. 싸게 만들어서 많이 팔면 장땡 아닌가요? 하지만 EU 국가들의 정부는 배출량을 보고하고 감축하도록 하는 엄격한 정책을 실행 중입니다. 엄마 말은 들어야 하는 어린이들처럼, 기업들도 정부의 정책을 준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군것질 욕구를 해결하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기업들이 EU 국경 밖으로 눈을 돌립니다. EU 국경 밖은 대개 배출량 규제가 훨씬 덜 엄격하니까요. 이런 경우를 '카본 리키지' 즉 '탄소 누출'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인류 전체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인데, 다른 나라로 배출량이 줄줄 새어나가 버리면 인류 전체의 배출량엔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더 늘어나는 경우도 생기겠죠. 


통통 어린이의 몸매에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집에서 참은 만큼 밖에서 더 군것질을 하는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숨겨와 봤자 소용없어! 국경세(border tax)를 도입하다 

이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최근 EU는 세계 최초로 탄소 국경세를 도입했습니다. 풀네임은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 실제로 영어로 줄여서 "씨뱀"..이라고들 합니다....욕아님 주의)'라고 하는데요, 2026년부터 부과가 시작될 거라고 해요. 지금 요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CBAM은 이름처럼 국경'세' 즉 세금인데요, EU 밖에 있는 기업들이 EU로 물건을 수출하는 경우,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추정해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겁니다. 


으악! 생돈을 내라니, 기업들은 난리가 났죠. 특히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은 반발이 심하다는데요, 한국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제도는 모든 물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진 않고요, 탄소배출이 많은 6개 품목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고배출 산업으로 유명한 철강, 시멘트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탄소배출량이 발생했는지를 따져서 관세를 매긴다는 거예요. 


특히 철강은 엄청나게 탄소가 많이 나오는 산업입니다. 그냥 숑숑숑 계속 배출이 되거든요. 한국의 포스코만 해도, 한국 전체 배출량의 무려 1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10분의 1 맞아요. 잘못 읽은 거 아님) 그게 포스코 잘못이 아니라, 그냥 철강 산업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에요. 철강 생산은 위 그림처럼 이글이글 용광로를 돌려야 하는데, 이게 주로 석탄을 쓰거든요. 요즘 수소환원제철공법 등 새로운 테크닉이 나오며 조금씩 다른 방법도 도모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석탄 발전소와 다름없는 모양새입니다. 

 

* 철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면 다음의 영상을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6gTNvapSdSs

이거 보면 철 얘기 나옴. 여기 내 친구 나와서 올리는 거 아님. 진짜 유익한 영상임 



씨뱀, 보호무역주의?

아무튼 많은 국가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야! 그러면 우리는 EU에 수출하지 말란 거 아니냐! 너네끼리 먹고살자는 보호무역주의 아니냐!!"라는 겁니다. 실제로 전문가들도 탄소국경세 부과가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고요. 박통통 어린이의 건강을 챙긴답시고,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마마보이로 만들어버리는 거 아니냐고요.  


아무튼 시행은 2026년부터 지만, 이번 달부터 EU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탄소배출량을 보고해야 합니다. ("저, 통통한테 빼빼로 5개 줬습니다." "저는 통통이랑 뿌셔뿌셔 하나 나눠 먹었어요."라는 식으로 말이죠.) 지금이야 보고에 그치지만, 나중에는 해당 상품을 생산할 때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을 알아야 할뿐더러, 이게 자기네 땅에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니 모니터링이 쉽지 않겠죠. 이미 자국에서 탄소 관련 세금을 내는 기업들은 이중과세를 부담해야 하니 조정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무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 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이런 힘든 길을 가는 걸까요? 


사실 이제까지 기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불이행이나 무임승차에 관한 제재가 실질적으로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통통이에게 "너 오늘 학원 갔다가 바로 집에 와! 간식 사 먹지 마!"라고 했는데, 통통이가 탕후루 꼬치를 들고 집에 와도 별 말을 안 하면 통통이는 다음에도 엄마 말을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배출량을 감축하겠다고 큰소리쳐놓고 이행하지 못해도, 딱히 벌칙이 없었던 거예요. "아휴 정말 내가 못살아"라고 말만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엄마였던 거죠.  


그래서 EU는 어떻게든 경제적 규제 메커니즘을 통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겁니다. 집에서 일어나는 일만 감시하는 게 아니라,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우리 애가 관련된 이상 철저하게 하겠단 거죠. 저명한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국제무역시스템을 기후협약에 활용하는 것이 다른 국가들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경향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방법일 수 있긴 하지만, 대단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자유롭게 열려 있는 지금의 무역시스템은 보호주의를 물리치려는 눈물겨운 투쟁의 결과물이다. (...) 무역조치는 배출량과 간접적으로만 관련이 있으며, 이를 보정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이는 환경정책과 무역정책에서 한 번도 시행해 본 적 없는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 윌리엄 노드하우스, <기후카지노> p.370


아무튼, 통통이 어린이 화이팅! 씨뱀은 어떻게 진행되나 잘 지켜 보자구요. 



*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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