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Oct 24. 2023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친구는 가까이, 그러나 적은 더 가까이 둘 것 (이미지: X.com 줍줍)


친구는 가까이 둬라.
적은 더 가까이 둬라. 


영화 <대부>의 유명한 대사죠. 피도 눈물도 없이 이익만 좇는 마피아에게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적을 미지의 존재로 두는 것보다는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대부를 인용하다니 저도 이제 나이가.... 근데 진짜 재밌음 강추)



적을 가까이 두는 현명함(?)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 간 기후변화에 대해 알리려 애쓴 여러 사람들에 대해 르포타주 형식으로 쓴 너새니얼 리치의 <잃어버린 지구(Losing Earth)>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여러 환경 운동가들과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정치권에 알리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 더 일찍 대응하는 것에 실패한 결과에 대해 알 수 있어요.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 책을 읽다 보면 거대 화석연료 기업들(엑손이나 쉘 같은)이 대부의 저 유명한 말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석유화학 기업들 입장에서는 기후 위기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적'이겠죠. 자기네 이익과 직결되니까요. 너도 나도 화석 연료를 거부하게 되면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한 그들은 누구보다도 일찍 기후변화에 대해 자체적으로 연구를 시작합니다


1979년, 엑슨은 연간 6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자체적인 이산화탄소 연구 프로그램을 신설하거든요. <잃어버린 지구>에 나오는 말처럼, 지구가 얼마나 더워질지 알려고 한 게 아니라 '온난화에 대한 책임을 엑슨이 얼마나 떠맡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였지만요.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패널인 IPCC와도 긴밀히 협조하여 일합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지구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는 것처럼 굴면서, 적을 면밀히 파악하고 적극적인 물밑 작업(로비)을 펼칩니다. 사실 예전부터 과학은 분명했지만, 기후변화에 대해 회의적인 과학자들을 물색하고 경제 전문가들의 권위를 빌려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죠. "기후가 변할 가능성은 분명 있다. 그러나 당장 뭔가 조치를 취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말이에요. (그리고 그게 먹힙니다..!!

 


화석 연료 & 담배 

실제로 석유 회사가 화석 연료에 반대한단 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겁니다. 마치 담배 회사가 담배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죠. 그러고 보면 담배 산업과 화석 연료 산업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후변화의 가능성을 철저히 숨긴 화석 연료 산업처럼, 담배 산업도 오랫동안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감췄거든요. 


90년대에 미국의 거대 담배 회사들은 미국의 여러 주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했는데요, 담배와 암의 상관관계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픽션이긴 하지만 <땡큐 포 스모킹>이라는 영화에 보면 거대 담배회사의 로비스트가 어떤 궤변으로 여론을 선동하는지 나오는데요, 화석 연료 산업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영화 <Thank You for Smoking (2005)>

결국 담배 회사들이 패소하며 25년 간 무려 3,600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게 되었고, 현재 담뱃갑에 붙어 있는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를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흡연율은 꾸준히 감소하게 되지요. 기후 운동가들은 비슷한 성과가 화석 연료 산업에도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후 위기를 묵과할 수 없는 지금, 거대 화석 연료 기업들이 자기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변화를 꾀하기를 말이죠. 



친구냐 적이냐, 구분도 좋지만

그러고 보면 기후 위기 대응도 결국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입니다. <잃어버린 지구>에 나오는 말마따나, 기술과 경제는 신뢰할 수 있지만 인간의 행동을 신뢰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려면 결국은 일반 대중의 힘이 중요합니다. 친구냐, 적이냐 구분하여 곁에 두는 것도 좋지만 기후 위기가 더욱 심각해진다면 친구도 적도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요.  


정치 얘기를 하다 보니, 정치인 생각이 나네요. 최근에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가 한국에 왔었습니다. 저는 <불편한 진실> 다큐를 볼 때만 해도 "정치인이 웬 기후변화를 논하며 나대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앨 고어는 <잃어버린 지구>에도 계속 등장할 만큼 젊은 시절부터 환경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정치인이었습니다. (80년대부터 유권자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몇 번 화두를 던졌지만 별 반응이 없어서 (흑흑) 나중에는 언급을 안 했다고 해요. 천상 정치인.


아무튼 이번에 방한을 하며 인터뷰를 한 영상이 있는데, 한국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오셨더라고요. 한국에 특화된 통계, 연구 등을 열심히 인용하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정치인, 공무원, 기업가들에게 정치적인 압력을 가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겁니다. 지속가능한 전환을 위해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말이죠. 

(A single most important this that a person can do is to find more effective ways to put political pressure on politicians, on government officials, and on business leaders to speed up the change toward this sustainability transition.)

- 앨 고어 인터뷰 중  



* 참고 자료 

https://www.nytimes.com/2023/09/23/business/dealbook/california-fossil-fuels-cigarettes.html

https://www.imdb.com/title/tt0427944/

https://www.youtube.com/watch?v=EGaqeEK8EtE


매거진의 이전글 밖에서 군것질거리를 숨겨오시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