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Sep 25. 2023

당신 탓이 아니에요

이제야 고백합니다만(!), 사실 <에너지와 기후변화 매거진>에 글을 쓸 때마다 약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있는 듯한데요, 


첫째, 독자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잔소리를 해야 한다.


차를 타면 얼마나 편한데,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하라니.. 소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육식을 줄이라고 하다니..! 맘 편하게 누워서 연예 뉴스나 보면 좋겠는데, 제목부터 부담스러운 기후변화 뉴스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다니!! 제가 글을 쓰면 항상 이런 잔소리로 끝나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마음이 불편한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둘째, 사실 나조차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다. 


고백하건대 저도 주유소 가서 기름 넣고, 스테이크 엄청 좋아하고요, 로켓배송 애용한다고요. 기후변화 뉴스 읽기 전에 웹툰 한번 싹 훑는다고요. 그런 주제에 무슨 기후변화 글을 쓰고, 강의를 하나요? 그래서 양심에 많이 찔렸습니다.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 - 내 잘못만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계기가 있었어요. 요즘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었거든요. 그런데 집중력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기후 위기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어요


아, 기후 위기 자체가 책이 언급되어 있기는 합니다. 저자는 집중력을 되찾아야 할 이유가 되는 인류의 위기로 기후 위기를 손꼽고 있거든요. 실제로 현재 우리 눈앞에 닥친 기후, 환경 위기는 누워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아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사태잖아요. 유튜브 쇼츠에 빼앗긴 우리의 집중력을 그러모아 본격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넘어서서, 기후 위기 자체가 집중력 위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왜냐고요? 


온종일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허송세월한 날, 우리는 스스로를 탓합니다. 하지만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는 그게 우리 잘못만은 아니라고 말해 줍니다. (아 해방감)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 기기의 앱 특성상 끝없이 스크롤하고 오랜 시간 집중하기 어렵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란 거죠. 화면에 오래 머무를수록 테크 기업들은 돈을 버니까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애초에 '5분만 숨 돌리자'라는 것이 통하지 않게끔 작정하고 설계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개인이 탄소 발자국을 줄여야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삶이 '죄'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그건 우리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사회에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와 공장, 전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에서 탄소 발자국이 생성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선택한 게 아니니까요. 너무도 깊숙하게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탓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주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탄소 발자국을 옅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불편하게, 남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유난을 떨어야 합니다. 


즉, 집중력 위기나 기후 위기나, 모두 개인의 의지를 넘어선 더 큰 시스템의 틀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개인을 탓하기 전에 시스템을 바라보기

그렇다고 해방감을 느낀 나머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집중력 위기를 논하며 '디지털 디톡스' 같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기후 위기 해결에서도 개인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노력 같아도 모이면 더 큰 힘이 되니까요. 


그러나 저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만 기대선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디지털 디톡스, 좋죠. 저도 하루 정도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에서 해방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 가능할까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SNS 플랫폼과 인터넷 기술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집중력을 되찾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집중력을 회복할 수야 있겠지만, 어마어마한 노력을 들여야 가능하겠죠.  


'탄소 발자국 줄이기'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에너지를 왜 아껴야 할까요? 에너지를 아껴야 하는 이유는 '현재로서는' 에너지가 청정하게 생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리하게 에어컨도 팍팍 틀고 일회용품도 팍팍 쓰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중에 탄소 발자국이 전혀 남지 않게 된다면 지금처럼 에너지 자린고비(?)를 꿈꾸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청정에너지 사회로 이행'이 '탄소 발자국 줄이기'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소리지요. 



자기 자신과 화해하자, 더 큰 힘을 형성하자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인터넷 서비스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이야기를 합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개개인이 시스템의 한계를 인정하고 힘을 모아 변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점에는 깊이 공감했어요. 이번에 출간된 저의 첫 책(슬쩍 홍보)에서도 제가 강조하는 바이기도 합니다만, 개인의 힘이 중요한 이유는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대놓고 홍보


그보다 의식 있는 개개인이 모여 사회 전체의 결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에요. 더 좋은 정책을 펼쳐줄 정치인을 대표자로 선출하고, 더 좋은 기업의 제품을 사 주는 행동이 탄소 발자국 줄이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도 나왔지만, 실제로 영국에서는 기후 활동가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들의 의식을 고취한 결과 정부가 새 석탄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폐기시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스템이 부당하다면 개인적 차원에서도 노력해야겠지만, 시스템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력해야겠지요. 


<도둑맞은 집중력> 저자의 말대로 현재 우리가 만들어낸 이 세상은 우리 정신의 한계 너머로 밀어내고 있고, 지구를 생태적 한계 너머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뭔가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고기 섭취를 줄이지 못한 나를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내가 속한 집단에서,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의식을 고취할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책에도 이런 말이 나오죠. 


오직 그렇게 믿는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꿔왔다

- 마거릿 미드



자신과 화해하세요 

표지 이미지, 마지막 이미지: 영화 <굿 윌 헌팅> 중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을 위한 칭찬 스티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