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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r 01. 2024

일하며 만난 인플레 감축법

한국에 살지만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저는 내가 속한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문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그래도 다른 한국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미국에 최근 도입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에 대해 약간 얘기해 볼까 합니다.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순전히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 보이는 점들에 대해 쓸 것이기 때문에 언론에서 흔히 다뤄지는 내용과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기사가 자주 뜹니다. 아무래도 미국 경제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이겠지요. 게다가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지출이 예상되는 만큼 거대한 돈다발이 물려 있어 많은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IRA는 '기후변화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포괄적인 기후변화 대응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직격탄을 날린 건 전기차 보조금 관련 항목인데, 보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회사일을 하며 다른 부문에서 영향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가정 전력화에 부여되는 리베이트 부문입니다. 

한국의 쟁점은 전기차 (이미지: The Korea Times)


제가 일하는 회사는 가정용, 상업용 고효율기기 리베이트 정책을 다룹니다. 리베이트 제도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시행되어 '관행'에 가까운 제도입니다. 한국에도 한전에서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에 도입된 데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 기기의 범위 등이 훨씬 한정적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은 전력 시장의 구조가 매우 달라 굉장히 다양한 행위자들이 전력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고, 리베이트 제도 역시 전력 공급자 각각이 개별적으로 발전시켜 온 터라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IRA에서 포함된 리베이트는 기존의 리베이트 제도를 대체하거나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는 그대로 두고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IRA는 가정용 냉난방 기기인 히트펌프와 주방 기기인 인덕션 쿡탑 등에 리베이트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트펌프나 인덕션 쿡탑 등은 기존 유틸리티사에서 제공하는 리베이트 메뉴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거든요. 유틸리티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기존의 리베이트 제도 설명이 나와 있고, IRA에 의해 추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개별적으로 제도가 상이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기존 제도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별도라는 것이지요.


다만 히트펌프에는 최대 $8,000, 히트펌프 방식의 온수기에는 $1,750, 인덕션 쿡탑 및 히트펌프 방식의 건조기에 $840의 리베이트가 주어진다고 하니, 유틸리티 차원에서 제공하는 리베이트보다는 규모가 클 것 같습니다. 개별 유틸리티가 제공하는 히트펌프 리베이트의 경우 보통 $1,000을 넘지 않는데, $8,000이면 설치 비용의 거의 절반 가까운 금액이거든요. 

리베이트 제도 (이미지: Alliance fo Affordable Energy) 

한국에도 유사 제도가 있다고 아까 언급했는데요, 이는 복지 차원에서 전기요금 복지할인이 신청되어 있는 사람들만 대상입니다. IRA 하의 리베이트 제도 역시 소득에 따라 다른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다만 소득에 관계없이 $2,000까지는 세제 크레딧의 형태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유틸리티 리베이트 제도 역시 대개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고효율 기기 요건만 충족하면 소비자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요.)   



저희 회사에서는 IRA 도입 이전에도 미국 전역의 리베이트 제도를 전반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IRA와 함께 더더욱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고효율기기를 제조하는 제조업체를 비롯하여 이를 판매하는 소매점들에서도 리베이트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판매가 촉진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요즘 우리 회사에 문의가 자주 들어온다고 해요. 


물론 법이 생겼다고 갑자기 소비자의 통장에 갑자기 돈이 꽂히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이행되어 돈다발이 풀릴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지요. 한국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짧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회사에서 일해보니 모든 사안에 시간이 참 오래 걸립니다. 회사에서도 고객사에게 대응할 때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하고, 빨리 하라고 저를 쪼지도(?) 않습니다. 새해에 시작되는 프로모션이 있으면 회사 시스템에 연말에는 올려야 하는데, 모두 쉬느라 하지 않아서 매년 뒤늦게 1월 초에 올립니다. 그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나 봐요. 

쉴 때는 쉬는.. (이미지: unsplash.com)

특히 미국은 연방 국가이기 때문에 연방법이 주마다 적용되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게 마련이지요. 각 주는 연방 부처인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에 신청서를 내서 "우리 주에서 IRA에 명시된 리베이트 제도 실행할 거니까 돈 좀 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캘리포니아, 하와이, 뉴욕주 등 몇몇 주들은 이미 신청을 한 상태고, 다른 주들도 아마도 조만간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도 지역별로 정치색이 다른 것처럼, 미국도 전통적인 공화당주가 있고 민주당 텃밭도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으레 진보 정당의 어젠다로 여겨지지만, 공화당 주라고 해서 IRA 이름 아래 정부가 틀어쥔 돈다발을 모른 척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공화당 주도 그 돈을 받기 위해 나름의 방식대로 프레이밍을 해서 신청서를 낼 겁니다. 


DOE가 신청서를 심사하고 허가를 내는 데 또 두세 달이 걸립니다. 결국 실제로 이 제도가 이행되고 소비자의 통장에 돈이 꽂히려면 아무리 빨라도 올해 말은 되어야 한다는 소리죠. 그래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올 것 같으니 미국 내의 행위자들과 전 세계의 기업들은 발 빠르게 대처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12년 전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며 리베이트 제도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전반적인 틀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하지만 IRA와 함께 리베이트 제도를 이용한 고효율기기 및 전력화 장려 노력에 박차가 가해진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역시 막대한 돈이 풀렸기 때문이겠죠. 이는 일반 국민 이외에도 다양한 부문의 행위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특히 주목받는 쪽은 바로 "컨트랙터"입니다. 미국에서 일반적인 의미로 컨트랙터란 계약직 전체를 지칭할 수 있지만, 에너지 효율화 장비 부문에서는 기기 설치 업자를 말합니다. 한국에서도 시스템 에어컨처럼 가전 기기를 설치할 때 기사님이 오시잖아요. 바로 그 직업군을 가리킵니다. 

고효율 기기를 설치하는 컨트랙터 (이미지: Clean Heat Connect)

히트펌프 설치가 늘어나면 그만큼 컨트랙터의 일감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컨트랙터들도 최대한 히트펌프 설치를 장려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유틸리티 사는 컨트랙터들에게도 설치 건당 어느 정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컨트랙터는 이 비용을 고객에게 일부 또는 전부 전달하기도 하고 자신이 갖기도 합니다. 이렇듯 미드스트림 부문의 리베이트 역시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말 그대로 다른 나라 얘기이기 때문에 (ㅋㅋ) 읽는 분들은 이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다뤄지는 것과는 또 다른 시각을 한 번 써 보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혹시나 트럼프가 다시 정권을 쥘 경우 향후 전망이 매우 달라질 수 있으니 현재의 분위기를 한 번 기록해 보고 싶었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 실제로 돈이 졸졸졸 아래로 흘러내려오며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이제 누가 뭐래도 기후 위기의 시대지요. 이런 법안이 미국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닐 겁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제도가 필요할지, 그 파급력은 어떨지 가늠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Vlog da Logcomex

*참고 기사 

Todd Woody, Bloomberg, <Rebates for energy-efficient appliances are coming, finally> 

https://www.mercurynews.com/2024/02/27/us-rebates-for-energy-efficient-appliances-are-coming-fi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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