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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Sep 25. 2020

반(半) 워킹맘, 반 전업맘, full 코로나 맘

나는 원래 약간 독특한 업무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남들의 절반만 (주 40시간 기준으로 봤을 때 주 20시간),
플렉서블하게 (하루에 약 4시간을 일하되 어느 시간대에 하는지는 무관),
100% 재택으로.

이런 형태가 가능했던 것이, 회사 자체가 미국에 있어서 홍콩에 사는 나로서는 재택만이 가능했고, 조직이 워낙 작고 하는 일도 딱 정해져 있었다. 원래 미국에 살 때 이미 그 회사에서 1년 정도 일한 적이 있어서 보스와 3-4주에 한 번씩 회의만 하면 일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출근할 때도 회사 성격이 실리콘 밸리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그대로 닮아 있어서, 사장이 슬리퍼 끌고 출근했다가 몇 시간 있다가 개 밥 준다고 퇴근하곤 했던 곳이었다. 다들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을 했다. 그래서 백 프로 재택이어도 극적으로 달라진 점은 사실 없었다. 시간대와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혼자만 일하기는 했어도.


그래서 나는 완전한 워킹맘보다는 차라리 전업맘에 가까운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일은 틈틈이 하되, 엄마들 모임에도 종종 나갔고 오후에는 플레이데이트나 학원을 내가 직접 데리고 다녔으니. 내가 일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엄마들도 많았다.


유연한 근무 시간은 큰 장점이었지만, 하루의 시간 구성이 내게 온전히 맡겨져 있다 보니 오히려 효율적으로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에 가자마자 열심히 일해서 4시간을 먼저 채우면 좋겠지만, 오전에 볼일이 생기거나 커피 약속이라도 생기면 생각보다 시간을 규칙적으로 쓰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종일 허투루 시간을 쓰다가 아이가 잠든 밤에 허겁지겁 못한 일을 끝내는 적도 비일비재했다.


그때, 남편이 어디서 보고 내게 전해준 40분+20분 재택근무 작업법을 보았다 [1]. 1시간을 한 블럭으로 잡고, 되도록 정시에 일을 시작하고 40분 동안 집중해서 일한 뒤, 남은 20분 동안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집안일 등을 하며 휴식하는 방식이다. 50분만 되어도 약간 긴데 40분은 나도 직접 해보니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4시간을 통으로 쓰는 건 불가능하니, 적어도 1시간 단위로 생활을 구성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최대한 정시에 시작해서 40분 이상 집중하고, 잠시 쉬고 하는 패턴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가끔 생기는 약속과 집안일, 운동 등을 일하는 블럭들 주변으로 구성해 보려고 노력했다. 점점 이 방식에 익숙해질 때쯤...


코로나가 터졌다.


40분은커녕 10분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천만다행으로 코로나 직전에 헬퍼를 고용해서 집안일을 맡길 수 있단 건 너무나 행운이고 사치였기 때문에, 내가 힘들단 불평을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 케어는 헬퍼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고, 종일 지루해하는 아이 옆에서 내가 시간 지켜서 일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나의 시간은 내가 구성하는 단위가 아닌, 지극히 랜덤한 파편으로 쪼개졌다.


그래도 나는 아이가 많이 커서 자기 앞가림을 혼자 할 수 있고, 레고 한 박스면 한참을 혼자 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더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특히 미국처럼 딱히 도움을 받을 곳도 없는데 학교도 닫혀 있는 상황에서는 부모들이 정말 막막하지 않을까. 한국은 긴급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어쨌든 기댈 곳은 마련되어 있는데,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대부분일 테니. 우리도 만일 헬퍼를 고용하지 않았었다면 나의 정서는 둘째 치고라도 물리적으로 생활 유지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 같다.



코로나 초반 무작정 학교를 쉴 때도 힘들었지만, 홈러닝을 시작하니 더더욱 나의 손길이 필요해졌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외동이다 보니 혼자서만 덩그러니 종일 집에서 노는 것이 안쓰러웠고, 그 나이 때 필요한 사회적 자극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 같아서 내심 걱정이 됐다. 하지만 홈러닝을 시작하니 스크린으로나마 선생님과 소통하며 텅 빈 시간을 채우고는 있지만, 배움의 과정을 아이 혼자에게만 오롯이 맡길 수 없었다. 학교에서 미리 잔뜩 던져준 자료는 아이들이 혼자서 찾기에 너무 많았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가 스크린으로만 지시 사항을 듣고 따라가기에는 좀 버거워 보였다.


초반 몇 주, 나는 내 일은 제쳐두고 아이 옆에 붙어 앉아 컴퓨터를 조작하고 자료를 찾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에 일일이 관여를 했다. 혼자 하게 두니 소파 위에 누워 버리거나 뮤트/언뮤트를 거꾸로 하는 일이 잦아서, 나는 내가 이건 꼭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할 일을 못하니 예민해지고, 아이도 아이대로 내 눈치를 봤다.


어느 날, 아이가 울먹이며 내게 말했다. "엄마, 나 빨리 학교 가고 싶어. 학교 가면 엄마가 나를 못 보는데 집에 있으니까 엄마가 계속 나를 봐서 싫어."


아,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느덧 나는 워킹맘도, 전업맘도 아닌 코로나 맘이 되어 있었다. 아이와 24시간 붙어서 보살펴 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가 마땅히 혼자 해내야 할 일도 일일이 간섭하는 예민하고 짜증 많은 엄마. 엄마가 원래 해야 하는 일을 자기가 젖혀두고는 그것이 네 탓이라는 듯 아이를 바라보는 코로나 맘.


나는 아이와 약속을 했다. "엄마가 너 하는 것 보지 않을게. 대신에 모르는 것이 있어서 엄마가 필요하면 네가 엄마에게 와." 나는 내 노트북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훈훈한 깨달음의 일화였겠지만, 사실 그 후에도 나는 몇 번이나 아이에게 간섭했고 아이는 내게 혼나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 곧 대면교육이 시작될 예정이니, 아이에게나 내게나 참 다사다난한 홈러닝 여정이 마무리되어간다.


이제 아이가 다시 학교를 가면 나는 반워킹맘, 반전업맘의 생활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간 동안은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 노력하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내가 나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단 것 하나만도 엄청난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팬데믹이든 아니면 다른 사태로 인하여 또다시 내가 내 삶을 마음대로 꾸릴 수 없는 나날이 올 것이라는 우울한 예감도 든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코로나 맘처럼 아이에게 그 무력감을 풀지는 않으리라. 이런 경험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충분히 힘든 것이니까.  


[1] https://starlakim.wordpress.com/2019/06/29/4020-작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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