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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09. 2024

하필 딱 그런 날이었다

하필 딱 그런 날이었다.


내 몸 하나 버티고 앉아 있기도 버거운, 그런 날.


집 안은 엉망진창이어서 주부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했고, 조금이라도 정리했다 싶으면 아이들은 둘이서 실시간으로 카오스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네 식구 빨래는 왜 이리 많으며, 요리는커녕 왜 장 볼 시간도 없는지.


회사에서는 새 클라이언트와 계약하기 전에 내게 데이터 리뷰를 맡겼는데, 끝도 없이 쏟아지는 데이터를 보고 화수분인 줄 알았다. 원래 같으면 아무리 일이 많아도 2-3일이면 깔끔히 정리해서 보고를 올렸던 나인데, 일주일이 지나도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그 와중에 몸에 염증이 생겨 병원을 찾았는데, 병원 가고 약국 들르는 시간마저 아까웠다. 


거기다 화룡점정으로, 역대 최악의 PMS까지. (이 미친 두통) 다 집어던지고 도망갔다가 24시간 후에 나타나면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투덜대도 소용없는 거 다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버겁다고. 내 최대 역량은 100인데, 150, 200의 일감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얼마 전, 아주 오래간만에 오랜 친구를 만났다. 막 초등학생이 된 첫째와 미취학 둘째, 두 아들을 키우는 풀타임 워킹맘. 나보다 더 바빴으면 바빴을 그녀였다.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 문득 날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너는 너만을 위한 무언가가 있어?


자기는 없단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을 꽉꽉 채워 살고 있는데, 그 무엇도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워낙 욕심 많고 똑똑한 친구라 예전부터 뭘 하든 성과를 잘 내곤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든지 사정이 생길 때마다 직장에 눈치를 보며 반차를 써야 했고, 다행히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혼자 마음이 괴로웠단다. 남편도 자기 이상으로 집안일과 육아를 많이 하지만, 애초에 맞벌이 부부 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일상이다 보니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늘 뒤처져 있는 것만 같다고.


재충전을 할 시간은커녕 잠잘 시간도 없는데, 나보고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결하냐고 물었다. '나만의 무언가'가 나에겐 있나?


예전에 아가씨일 때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미술 학원을 다니고, 외국어 공부도 하고, 공연과 전시회도 꼬박꼬박 다녔다. 그런 게 '나만의 무언가'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친구들도 주기적으로 만나고, 술자리도 가고, 트렌디한 맛집도 열심히도 찾아다녔다. 젊은 날에 많이들 하는 것이기에, 그것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걸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바로 특권이었다.


지금도 물론 내가 선택한 삶이고 충분히 행복하다. 그러나 그 삶의 모든 면면을 선택 전에는 구체적으로는 모르기에 가끔 이리도 버거운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나만의 시간 한 스푼이 너무도 고픈 그런 순간이 가끔 나를 힘들게 할 줄은. 뭐 그건 주부/아내/엄마가 아니더라도 어떤 모습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화려한 싱글이라고, 아이를 다 키웠다고 모든 것이 버거운 순간이 왜 없겠는가. 그냥 내가 지금 그렇다는 거다.   


아무튼.. 친구의 질문에 갑자기 나도 말문이 막혔다. 나도 나 자신을 충분히 돌보고 있다고는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몇 주 전 읽은 책의 메모 노트가 내게 다가왔다. 커털린 키리코는 코로나19 백신으로 빵 뜬 헝가리 출신 여성 과학자지만, 그전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초라한 연구자였다. 50대 중반까지도 실험을 대신해 줄 대학원생이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연구했다고 한다. 그녀의 책 <돌파의 시간>을 읽고, 난생처음으로 직접 독서 노트를 손으로 썼다. 

(부정적 스트레스를 흥분, 기대, 의욕 같은 긍정적 스트레스로 바꾸려면) 자신의 힘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 대신에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커털린 키리코, <돌파의 시간>, p. 68)
인생은 땅의 지형과 같지 않다. 인생에는 중간 지점 같은 것이 없어 오직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뿐이어서 살면서 나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놓는다. 그때마다 나는 그동안에 얻은 것을 함께 들고 앞으로, 인생의 다음 장으로 향한다. (같은 책, p. 198) 
스트레스를 완화하여 자신의 삶이 손상되지 않고 나아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 나은 방법이 있다. 바로 감사하는 것이다. (같은 책, p. 234) 
당신 안에 있는 것을 신뢰하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당신이 찾는 것을 키우고 보살펴라. 누구 하나 돌볼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도 그곳에서 찾은 것을 돌보아라. (...) 계속하라는 것. 계속 성장하고, 계속 빛을 향해 나아가라. 당신은 가능성이다. 당신은 씨앗이다. (같은 책, p. 379) 


이걸 다시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고야 알았지만, 나는 요즘에야 비로소 나만의 무언가를 찾기는 했다. 유달리 지친 오늘 같은 날,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대단한 분이 나보다도 훨씬 더 밑바닥의 고통을 겪으며 써낸 글을 읽을 수 있는 시간. 진부해 보일지 몰라도 ''이다. 책 속으로 도망가고, 간간히 그 경험에 대해 쓰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었다. 


예전부터도 책과 친한 편이었지만, 요즘은 휴식처이자 쾌락이 되어가고 있다. 저자가 고민하며 오랜 시간 공들여 창조한 종이 안의 세계에 퐁당 점프하는 것도, 힘겹게 공부하고 깨달은 바를 활자로 전수받는 것도 너무도 즐겁다. 버거운 일상을 꼭 벗어나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도, 두세 시간 뭉텅 비워 내어야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참 고맙다.


그래서 일상에 치여 투덜대면서도, 나는 '나만의 무언가'를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책을 구하려면 도서관에서든 책방에서든 구할 수 있고, 아이를 보며 짬짬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여전히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너무 다행히도 한 달에 한 번, 같은 책을 읽고 줌으로나마 반가이 만나는 책벗들도 있다. (모두 엄마들이기에 무슨 책을 읽든 기승전육아 얘기지만)  물 먹은 솜처럼 유달리 축축 쳐지는 날, 커피 한 잔을 들고 타닥타닥 글을 쓰며 하소연을 할 수 있는 것도 크나큰 특권이다.


그러니 이런 날조차,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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