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만난 지인들 중 서로 반말을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날 때 젊을 땐(?) 쉽게 말을 놓아 '언니, 동생' 했었는데 요즘은 참 그게 쉽질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는 반말과 존댓말이 주는 느낌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관계의 본질이 달라지는 기분이 들고, 그래서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관계에서는 행여나 나와 동갑내기라 해도 쉽게 반말로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일단 존댓말로 관계가 시작되면 나중에 아주 친해져도 반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굳어 버린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친한 언니와 얼굴을 트고 초반 몇 달은 서로 존대를 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언니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해서 "응! 앞으로 그럴게!" 해 놓고는 자리를 옮겨 커피숍에 갔을 때는 나도 모르게 다시 존대를 하고 있었다. 언니가 "밥 먹을 땐 반말이더니 커피 마실 땐 존댓말이네"라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만큼 한 번 굳은 말을 바꾸긴 어렵다.
외국어로 친해진 친구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두어 명, 정말 '친구'라고 부를 만큼 친한 외국인이 있다. 서로의 모국어를 모를 경우, 보통 제3의 언어인 영어를 통해 소통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다년간의 외국 생활이 아닌 미드 시청을 통해) 영어로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상대도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한국인끼리 친한 것과 다름없이 시시콜콜 수다를 떠는 편이다. 나의 말도, 너의 말도 아닌 제3의 언어로 조잘조잘 얘기하는 건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런데 친한 친구 중 '한국어 패치가 장착된' 외국인이 있다. 그녀는 모국어 및 영어가 더 편하지만 한국어로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만큼 한국어에 능숙하다. 그래서 내가 영어 단어가 생각이 안 나거나 적절한 표현이 생각이 안 나면 "So I started to 눈치를 보고 and then went out." 이런 식으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준다.
그런데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어를 쓰는 상황이 오면 좀 재밌다. 다른 사람이 대화에 참여하거나, 상점 등에서 다 함께 한국어로 말하는 상황이 오면 우리는 둘 다 한국어 존댓말을 쓰는데, 느낌이 너무 다른 것이다! 엄청 가까운 거리였다가 갑자기 벽이 딱 생기는 느낌이랄까. 그녀도 똑같이 느끼는지 물어보니 자기는 한국어를 배울 때 디폴트로 존댓말을 배워서 잘 모르겠지만,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긴 한단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한국어 반말로 말하는 걸 상상하니 그건 더 못할 짓(?) 같다. 영어는 반말과 존댓말, 그 사이 어딘가에 있나 보다 싶었다.
이처럼 우정에도 언어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다져온 우정은 단연 한국어 중에서도 반말, 그중에서도 가장 격의 없는 반말이다. (막말) 나이 들어 만나 친해진 사람들은 반말을 쓴다 한들 그것과는 다르다. 영어로 생성된 우정은 제3의 영역이다. 가끔은 한국어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만 100퍼센트 나의 색채가 드러나진 않는달까.
어쨌든 나이 들수록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친구와 내가 나누는 언어에 대해.
우정이란 영역은 참 독특한데, 가족이라는 혈연도, 결혼이라는 계약도 없는 것 치고 인생을 무척이나 풍성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책임이나 의무가 없으며 권리도 없지만, 암묵적으로는 존재하며 이것이 양자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서 '손절 엔딩'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친구가 없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나 상당히 쓸쓸할 수 있으며, 친구가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나 일상이 꽤나 즐거울 수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생기고 부모님은 나이를 드시는 게 보이다 보니, 삶의 우선순위에서 우정은 늘 밀린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을 열기 위한 노력,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 특히 허물없이 반말하는 친구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
다행히 우정의 세계에서 언어 장벽은 없다. 두 여성의 우정과 삶을 그린 Firefly Lane에 나오는 것처럼,
Sometimes being a good friend means saying nothing.
때때로 좋은 친구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니까.
- Firefly 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