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주인의식 되찾기 프로젝트
이제 3주 되었다.
청소 이모님을 끊은 지.
결혼 12년이 되었는데, 첫 7년은 남의 손을 빌린 적 없이 살림을 했다. 미국에서는 인건비가 비싸 내가 직접 청소를 하는 편이 훨씬 쌌기도 했고, 새댁 주제에 누군가의 손을 빌린단 게 매우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홍콩에 이사를 가서도 콩알만한 집에 달랑 세 식구 살다 보니 청소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러다 홍콩살이 2년 차에 헬퍼를 고용했다.
예전에도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지만, 헬퍼 아주머니에 비하면 내가 하던 살림은 장난이었다. 손도 무척 빠를뿐더러 야무져서, 집 안은 늘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아이 친구가 와서 플레이데이트를 할 때마다 온 집안을 다 뒤집어엎었는데, 예전 같으면 화부터 냈겠지만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아주머니가 안 계시는 날은 딱 하루, 일요일이었는데, 그날은 그냥 식구들도 집안 꼬락서니(;;)도 긴장을 늦추고 쉬는 날이었다. 어차피 월요일이 되면 다시 태어날(?) 것이니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살림에 '주인 의식'이란 게 조금씩 희미해져 간 것이.
더럽거나 정돈이 안 된 곳이 있으면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남의 일'이 되었다. 조금 참으면 곧 깨끗해질 테니까. 회사 일과 아이들까지는 '내 일'이었지만, 살림과 청소는 조금씩 그 경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귀국해서도 가장 처음에 한 일 중 하나는 청소 이모님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양한 앱을 통해 나의 필요에 맞는 도우미 분을 찾을 수 있었다. 헬퍼만큼 내내 곁에서 도와주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대청소를 해 주시는 분이 있단 건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운 좋게도 처음부터 성실하고 꼼꼼한 분이 와 주셔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안은 마법처럼 깨끗해졌다. 그때만 해도 아직 둘째가 어렸고, 원격 근무지만 복직도 한 터라 그 도움이 매우 절실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나는 그 주 1회의 사이클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그분이 월요일에 오시면, 토요일부터는 슬슬 살림을 게을리했다. '이틀만 참으면 오시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미루고 기다렸다. 여전히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다행히 그 도우미 분은 오래 도와주셨다. 아기가 어릴 때 잠시 봐주실 베이비시터님까지 소개해 주셔서, 어찌 보면 진짜 귀인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일을 그만두시고, 나는 다시 청소 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올여름의 일이다.
새로운 청소 도우미 분을 모시는 건 쉽지 않았다. 일정이 맞지 않거나, 금방 그만 두시기도 했다. 나는 청소의 기준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기에, 일정만 맞으면 청소를 부탁드렸다. 그러나 청소하시는 동안 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살림에 간섭을 하시거나 과하게 전도를 (...)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약간 망설여지기는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한 분이 정기적으로 오시게 되었다.
그러나 집에 사람을 들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마 입장이 바뀌었어도 나도 마찬가지로 다른 집에서 완벽하게 잘 해내지 못하리라. 가정마다 지켜야 할 규칙도, 기대치도 조금씩 다르기에. 자세히 쓰지는 않을 생각이나, 어쨌든 몇 달간 우리의 기준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나는 정기 청소 일정을 종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해 보자.'
12년 차 주부가 뭐 이리 비장하게 결심을 해야 할까 싶지만, 잃어버린 주인 의식을 되찾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청소만은 아니다. 귀국 초기에는 반찬가게를 많이 이용했었는데 요즘은 아무리 맛이 없어도 (...) 적어도 평일에는 매일 직접 요리를 한다. 다행히 나는 회사 일이 자유로운 편이고, 일을 덜하면 그만큼 청구 시간이 줄어 수입에 타격이 가기는 하지만 식구들을 위한 살림도 그 이상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청소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주 1회의 마법을 기대하지 않게 되니, 오히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틈틈이 치우니 집안은 평소보다 오히려 깨끗해졌다. 시간을 쪼개 일을 하니 딱히 업무에 크게 지장이 가지도 않는다. 결국은 살림을 '내 일'이라고 인식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도우미를 쓰는 것보다 안 쓰는 것이 낫다는 말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힘든 가사에서 벗어나, 청소라도 '내 일' 경계 밖에 놓아둘 결심을 하는 것도 똑같이 대단한 것이니까. 나도 아마 이러다 한 번씩 대청소 업체를 부를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내 꼬락서니를 보면...) 그러나 나의 경우는, 매일의 살림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하는 건 생각보다 자유를 주는 일이었다. 새댁일 시절에는 그토록 귀찮았던 걸레를 빠는 일, 머리카락을 떼는 일, 이불을 빠는 일이 이제는 오히려 디지털 세계로부터 잠시 쉼표를 찍는 시간으로 느껴진다.
<돌봄과 작업>에 나오는 말이 내 마음을 잘 설명할 것 같다.
오로지 내 입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염려와 책임 속에 살아가는 만큼 성숙할 기회를 배가 됐다.
내 존재를 떠받드는 훈련, 그리고 타인을 위한 일상적인 노동.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있을까?
* 표지 이미지: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