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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14. 2024

크리스마스트리 성애자의 소원 성취

‘진짜’ 크리스마스트리의
향기를 맡아본 적 있나요?


저는 수년 전 미국 동부에 살 때, 그리도 바라고 바라던 진짜 크리스마스트리를 구입해서 꾸몄었습니다. 11월 말부터 동네에 생기는 나무 시장에 가서, 푸릇푸릇 풍성하면서도 색이 깊고 진한 나무를 골랐어요. 크기는 저보다 약간 큰 녀석을 골랐습니다. 상점에서 차 지붕에 튼튼한 밧줄로 나무를 묶어 주었어요. 집으로 운전해 오는 5분의 시간 동안, 흔들거리는 나무의 무게를 느끼며 어찌나 두근두근했는지 모릅니다.

시장에서 사면 차 위에 이렇게 묶어줍니다 (사진: Stateman Journal, Claire Behan)

그때 저희가 살던 집은 타운하우스였어요. 아파트와 비슷한 다세대 주택이지만 기껏해야 두셋에서 여섯 가구 정도 사는 3층짜리 건물이었지요. 하필 우리 집은 3층. 엘리베이터가 없어 외부 나무 계단을 올라야 했어요. 저는 나무를 번쩍 들어 어깨에 올리고는 비장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디뎠습니다. 그때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그렇지, 누가 봤다면 아마 덩치가 크지도 않은 동양 여자가 혼자 부들부들 거리며 낑낑 나무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 놀라 도와주려 달려왔을 것 같아요.

진짜로 이렇게 들고 감 (이미지: Shutterstock)


마침내, 입성! 나무는 밑동 부분이 잘려 있었는데, 이를 둥근 접시 같은 데 넣도록 되어 있습니다. 간신히 세워두고 주변을 둘러보니,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어마어마하게 많이 떨어진 이파리”였습니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엄청나게 떨어져서, 남아 있는 이파리가 하나도 없을까 봐 걱정될 지경이었다니까요. 청소기를 세 번쯤 돌리고야 어느 정도 정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몰랐어요, 움직이지 않아도 계속 계속 떨어진다는 사실을…)


이미 녹초가 되어 장식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소파에 앉아 한 숨 돌리는데,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전나무에서 나는 향기가 얼마나 강한지 말이에요! 향기는 은은하지만 분명해서, 어느덧 온 거실을 채우고 있었어요. 나무 냄새는 그 겨울 내내 우리 거실을 향기롭게 장식해 주었습니다. 밤새 떨어진 나뭇잎을 아침마다 청소하면서도, 그 향기야말로 진짜 나무를 구입하는 이유라는 걸 배웠습니다.



사실 저는 이상할 만큼 크리스마스 장식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 잠깐 미국에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즈음 친척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거든요. 천장까지 닿는 트리에 가득 채운 반짝반짝한 불빛, 거실 곳곳에 자리한 장식과 달콤한 냄새, 트리 아래 자리 잡은 저를 위한 큰 곰인형까지… 아마도 그때 크리스마스라는 남의 나라 명절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딱 이런 느낌.. (이미지: Rockwell Christmas Co)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러 명동을 가던 아이는 급기야 친구와 크리스마스 때를 골라 뉴욕 여행까지 갔습니다. 멜로 영화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영화만큼은 예외였고요, 10월 말부터 캐럴을 듣는 크리스마스 성애자로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집에도 거대한 트리를 만들어 놓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죠.


하지만 결혼 후 10년은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게 되어, 크리스마스트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미국 동부에 살던 1년 간 앞서 말한 진짜 트리를 꾸몄던 것이 유일한 사치였지요. 그 외엔 날씨가 비교적 따뜻한 미국 서부와 홍콩에 살았던지라, 어차피 겨울 분위기도 그다지 나지 않았고요. 동네를 돌아다니며 남의 집이나 쇼핑몰에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는 것이 낙이었어요. 홍콩에서는 못 참고(?) 아주 작은 트리를 하나 사서 거기에 화려한 전구와 오너먼트를 걸어놓고, ‘나중엔 열 배 큰 나무에 이 장식을 똑같이 달아야지 ‘라고 다짐했던 생각이 납니다. (이쯤 되면 광기..)

쿠팡에도 파는 이런 제품.. (이미지: 쿠팡)



3년 전, 드디어 우리 가족은 추운 겨울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홍콩처럼 집이 좁은 것도 아니라서 드디어! 트리를 꾸밀 여건이 되었어요.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당시 50일이었던 우리 둘째였습니다. 아기가 기어 다니고 걸음마를 하며, 눈에 보이는 건 다 쥐어뜯잖아요.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며 놓으면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했죠. 그래서 그렇게 (트리의) 안전을 고려하여 눈물을 머금고 몇 년 뒤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태가… (이미지: 유튜브)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침내 올해가 되었습니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저지레를 하는 나이는 지났죠. 저는 떨리는 손으로 마침내 상당한 가격대가 있는 트리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가장 멋진 트리를 구하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인터넷 검색을 하고 결정하느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막상 주문했을 때는 품절이 되어서 ㅠㅠㅠ 12월에 들어서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배송 지연이 된 며칠 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고 초조했나 몰라요.


트리가 오자 부랴부랴 설치하고 전구를 달고, 예전부터 간직해 온 오너먼트들을 달아 예쁘게 꾸몄습니다. 비록 진짜 나무가 아니라서 향이 나지는 않지만,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우리 집 나무가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원래 있던 오너먼트들 말고도 리본과 솔방울, 눈꽃, 고드름 등 로망으로만 간직했던 여러 장식들을 붙여 보았어요.


이제 밤에 저는 이 눈부신 나무 앞에 앉아 ‘트리멍’ 때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오래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소원 성취를 한 셈이죠. 추운 겨울이 올 때마다 집에 있어야 해서 답답했는데, 이제 적어도 겨울을 기다릴 한 가지 큰 이유가 생긴 것 같아요. 우리 트리, 꽤 예쁘죠?

배경을 날리니 웃기긴 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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