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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15. 2024

1_시작은 진짜 실리콘밸리였다

어리버리 한국인, 미국 스타트업의 인턴이 되다

따지고 보면 제가 우리 회사에 자리에 얻은 건 막무가내 정신 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남편을 따라 간 미국. 그 곳의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어느 날!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거예요. 공부나 일을 하고 싶었던 저는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아기가 나오기 전에라도 뭔가 하고 싶었습니다뭔가 해야겠다 싶었지요. 아무리 작은 자리라도 상관없었어요. 결혼 전에 한국에서 일했던 분야(기후변화 컨설팅)와 아주아주 조그만 교집합이라도 있으면 무슨 포지션이든 지원했습니다.


다행히 그곳은 스타트업의 성지인 실리콘 밸리였고, 취업 사이트에는 구인 공고가 흘러넘쳤더랬습니다. 경력이 2년 남짓이고 석박사 학위도 없는 외국인으로서는 대부분 그림의 떡이기는 했지만... 일단 급한 대로 보수가 없는 비영리기관에서 일을 시작하고, 일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각종 기관에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넣었습니다. 그때, 전 직원이 다섯 명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에서 여름 몇 달 정도 인턴을 구한다는 공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회사는 제가 당시 연락한 수많은 회사들 중 유일하게 바로 답을 해 줬습니다. 전화 면접을 보자고요. 후닥닥 웹사이트에 있는 정보를 긁어모아 공부를 했어요. 솔직히 대체 뭘 하는 데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이야 미국의 전력 시장 구조나 리베이트 제도에 대해 빠삭해졌지만 당시는 전력 회사라고 하면 한전밖에 몰랐습니다) 그래도 회사 웹사이트와 CEO의 링크드인, 고객사 웹사이트 등을 열심히 뒤져서 대충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전화 면접은 차 안에서 봤습니다. 왜 차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비영리 기관에서 일하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조용한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영어는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외국어였지만, 공적인 일로 영어를 하는 건 처음이다 보니 생각처럼 말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열심히 떠드니 CEO는 마음에 들었는지 사무실로 와서 대면 면접을 보자고 했습니다. 뭔가 한 단계라도 나아간 것 같아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렌트가 어마어마하게 비싸져서 방을 뺀 지 오래지만, 10년 전만 해도 우리 회사는 멘로파크 다운타운에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작은 사무실에 책상이 두어 개 있고, 작은 회의실이 있더군요. 일하는 사람이라고는 CEO, CTO, 엔지니어 한 명과 나의 상사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마케팅과 세일즈는 미국 타주에 사는 다른 사람이 담당하고 있었고, 데이터 관리하는 외주팀이 인도에 하나 있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대면 면접은 전화 면접과는 달랐습니다. 바로 자기 회사의 시스템을 보여주더니 갑자기 숙제를 내주더군요. '퀴즈'라면서 이걸 풀어 오면 합격시켜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성실도 테스트였던 것 같아요. 우리 회사 서비스는 미국 우편번호(zip code)를 베이스로 제공되는데, 따라서 각 전력 회사의 영역 파악이 핵심입니다. 이건 전력 회사 협조를 통해 구할 수도 있지만, 지도를 보고 손으로 해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시험은 지도를 보고 우편번호를 일일이 찾아내는 것이었어요. 시간은 이틀 정도 줬고요.


집에 와서 열심히 숙제를 했습니다. 친구는 인턴 하나 뽑는데 뭐 그렇게까지 하냐고 하더군요. 저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제게 주어진 경험이라면 무슨 잡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미국에 이사 온 지 몇 달 되지 않아 우리 집 우편번호도 간신히 외우는 판이었지만, 난생처음 보는 지역의 우편 번호를 열심히 리스트로 만들어 가져갔습니다. 다행히 결과는 합격. 꾀부리지 않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해 간 것이 나름대로 합격점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 회사에 출근 해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출근했던 시절이 참 재미있었어요. 일단 한국 회사랑은 너무너무 달랐거든요. 각자 일하고, 점심도 각자 먹고, (목요일은 보통 같이 먹었어요) 수/금은 모두 재택근무를 했습니다. CEO는 바로 근처가 집이라서,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왔다가 개 밥 준다고 일찍 퇴근하곤 했고요. 사정이 생기면 일찍 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배우자나 파트너가 가끔 사무실에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었죠.


업무 상의 영어는 약간의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상사가 어떤 부분을 "flag"해달라고 했는데, 대충은 알겠는데 정확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몰래 구글링 해보았던 기억이 나요. 유틸리티사에 전화하거나 고객사에 대응하는 건 대부분 상사가 했지만, 가끔은 제가 직접 해야 했고 무척 떨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일단 퍼스트네임을 무조건 까고 들어가는(!) 문화가 어색했어요. "안녕, 내 이름은 존인데 나 좀 도와줄 수 있니?" "응, 존, 뭔데?" 이런 문화인데, 저의 이름은 그들에게 낯설었고 굳이 스펠링까지 말해가며 통성명을 하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제가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처음엔 긴장되어 쉽지 않았고요.


가끔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간혹 그들은 한국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곧 야구 얘기라든가 자동차 얘기라든가 소소한 일상 얘기를 했어요. 처음 만난 사람과도 곧잘 대화를 잘하는 저였지만, 모두가 원어민이고 저만 영어가 외국어인 경우는 약간 달랐지요. 문화 코드도, 농담도, 표현도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래도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보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즐거웠어요. 다행히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고, 저를 인턴보다는 정직원처럼 대우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제 신변에 변화가 생기며 드디어 원격 근무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습니다.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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