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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15. 2024

2_10년째 방구석 근로자가 된 사연

지루한 원격 근무가 시작되다

아기를 낳으며 이 회사와는 작별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기를 키우며 저도 파트타임으로 석사 학위를 밟기 시작했기에 더욱 그랬지요. 그러나 인턴을 그만둔 지 1년도 되지 않아,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아기가 자는 시간 동안 1-2시간이라도 원격으로 일을 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어요. 어차피 예전에도 수/금은 재택근무를 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죠. 시간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아니고, 제가 시간 되는 만큼만 하면 되었거든요.


그렇게 원격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쭉 한 것은 아니고, 중간에 비자 문제와 국제 이사로 일을 못 하게 된 시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미국에서 홍콩으로 이사를 가게 된 뒤에도 회사는 다시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해 트레이닝을 시키는 것보다 익숙한 사람을 계속 쓰는 것이 회사 측에서도 편했으리라 생각해요. 저도 어린아이를 키우고 국제 이사를 하는 시기에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이 회사에서 쭉 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홍콩 시기부터는 벽을 보고 일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제가 일어난 시간에 회사가 있는 곳은 저녁이고, 모두 퇴근하고 집에 가서 잠을 자는 시간이잖아요. 주섬주섬 찻잔을 챙겨 모니터 앞에 앉으면, 저만 혼자 외로이 벽을 보고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콩의 삶에도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하고, 회사의 업무도 딱히 바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느낌이 들었죠. 그때만 해도 인턴이 하던 일과 딱히 다르지 않은 잡무를 할 때였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버텼어요. 제가 공부했던 것,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건 아니지만, 이 회사의 업무는 커다란 모자이크 그림 속의 아주 작은 조각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더 나은 옵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키우며 하기에 이만한 일도 없다는 생각이 컸어요. 재미있지는 않지만 일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의 한 켠을 내어 열심히 책도 읽고 글도 썼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하는 알바 같은 일이 '커리어'로 변하기를 바라며.  



회사 안에서 내 자리를 찾다

그렇게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이런저런 잡일을 맡아하던 저는 이제 어느 정도 회사 안에서 하는 업무가 정해졌습니다. 회사 안에서 자리를 잡는 느낌이 비로소 들었어요. 서로 직접 얼굴을 본 지는 까마득하지만, 홍콩에서 둘째를 낳았을 때 회사에서 꽃다발과 인형을 보내줄 만큼 상사와도 인간적인 정이 쌓였죠. 제가 이래 봬도(?) 해야 하는 일만큼은 칼같이 지켜서 하고, 낮과 밤이 반대여도 소통에 크게 지장이 없기에 앞으로도 큰일이 없다면 (회사야 영원하렴)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나의 몫의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을 수 있는지 요즘 깨닫고 있습니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일이어도 최선을 다하면 어디론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요. 또 번외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구인 사이트를 조급한 마음으로 뒤지던 예전에는 '일만 하면 행복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라는 걸 말이죠. 그래도 저는 요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아직도 팀원들이 다들 잠든 시간에 홀로 일하지만, 벽을 보는 느낌은 아닙니다. 벽을 보면서도 열심히 창문을 뚫어서일까요? 


당장은 답답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제가  방구석 근로자로 살며 얻는 작은 교훈입니다.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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