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Oct 15. 2024

4_아니, 그래서 뭘 한다고요?

회사 얘기를 하면 다들 묻습니다. 


아니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처음 인턴을 시작할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은 참.. 뭐랄까.. 남의 나라 얘기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진짜로 남의 나라니까요. 미국은 땅도 크고, 사람도 많고, 모든 게 참 다릅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는 뭉뚱그려 말하면 에너지 효율 제품 쪽인데, 전력 시장 구조도 한국과는 전혀 다르고, 시장의 행위자도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데이터를 들여다보는지 남들에게 소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랍니다. (사실 저도 아직도 어려워요..



뭘 하냐면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저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의 "에너지 리베이트 제도"의 데이터를 다룹니다. 


한국에서는 “리베이트”라는 단어에 좋지만은 않은 어감이 있는데요, 이와는 달리 미국, 특히 유틸리티 부문

에서 리베이트 제도는 긍정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인센티브 제도랍니다. 앞서 소개했다시피 아주 작은 스타트업인 우리 회사는 나름대로 기후변화 시대에 잘 맞는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북미에는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제품 가격의 일부를 돌려주는 리베이트 제도가 오래전부터 아주 활성화되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세탁기나 에어컨, 냉장고를 살 때 좀 더 비싸더라도 에너지 효율 등급이 높은 제품을 구매하면, $20-$50 정도를 전력 회사에 청구해서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지요. 


리베이트 제도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 기후변화가 심각하다 보니 리베이트 제도의 예산도 늘고 규제가 강화되며 더욱 활성화되는 추세입니다. 다만 미국은 전력 시장이 민영화되어 있다 보니 같은 지역이라도 전력 회사가 여럿이고, 각기 다른 리베이트 제도를 운영합니다. 미국 전역에 수천 개의 전력 회사가 수만 개(!)의 리베이트 제도를 운영 중인데, 그러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보를 알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제가 일하는 회사는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그 동네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를 제품별로 쭉 보여주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한다는 게 바로 요거인데요, 거미줄처럼 얽힌 전력 회사의 서비스 영역을 체크하고, 리베이트 제도가 업데이트되면 시스템에 올리고, 오류가 나면 개선하고..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보통 재택 근무자들은 데이터 전문가라든지 코딩을 하는 엔지니어가 많을 텐데, 저는 솔직히 별다른 전문성은 없습니다. 박사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차근차근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지난 수년간 열심히 해 온 덕에 쫓겨나지 않고 여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창하지는 않은 일이지만 소비자가 고효율기기를 구매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큰 그림에서 아주 작은 퍼즐 조각을 맞추고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이죠. 



시장이 바뀌는 것도 목격 중

그럼에도 그 퍼즐 조각이 작아도 너무 작았었는데(...), 요즘은 좀 달라지긴 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인플레 감축법(IRA)이라는 거대한 돈다발을 풀었다는 걸 다들 잘 알고 계시죠. 이 법은 별명이 "기후변화법"이라고도 할 만큼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인플레 감축법이라는 본명이 오히려 생뚱맞다는 평가..), 히트펌프나 인덕션 쿡탑처럼 가정 전력화 및 효율개선 프로젝트에 리베이트를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요. 다 우리 회사의 서비스에 포함될 수 있는 부분이지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을 공부하고 늘 관심을 가져왔지만, 실제로 정부가 커다란 영향력이 있는 제도를 도입했을 때 시장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목격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인 것 같아요. 저는 비록 다른 대륙, 다른 나라의 방구석에 앉아 있지만, 거대한 변화로 인해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이메일함에서도 느낄 수 있거든요. 정부가 돈을 푸니 제조업자들도 귀를 쫑긋 하고 고효율 기기 판매에 열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소매업자들도 이런 걸 더 많이 팔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고요. 그리고 그 정보를 곳곳에 제공할 수 있는 건 바로 우리 회사의 서비스입니다. 


처음으로, 기후변화 위기 해결이라는 바다에 제가 아주 작은 조약돌 하나를 매일 던져 넣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랍니다. 방구석에서 일하면 어때요, 하는 일은 이렇게 넓은 세상을 향해 있는걸요.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이전 04화 3_존버하면 승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