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아이를 키울 때 느꼈던 점은 상대가 다섯 살짜리 외국인 꼬마라고 해서 대화하기가 쉬운 건 아니라는 겁니다.
소싯적에 뉴욕 타임스며 뉴스위크로 영어 공부를 했었건만, 꼬맹이가 하는 말은 죄다 쉬운데 어른인 저는 그런 표현을 도무지 쓸 줄 모르는 것이 뭔가 억울(?)하죠. 아이들은 GRE 단어가 아닌 put, take, bring 같은 쉬운 단어들로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내잖아요.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면, 번갈아가며 그네를 탈 때 take turn이라고 하지 누가 alternate 같은 말을 쓰겠어요? 아이 친구가 놀러 올 때마다 저는 아이들이 얼마나 쉽게 명확한 표현을 하는지 감탄하곤 했습니다.
영어는 언제나 어렵다
비대면 근무라지만, 미국 회사에서 일할 때 가장 큰 부담은 역시 영어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저로서는 말이에요. 특히 어려운 표현을 쓰는 건 오히려 어렵지 않은데,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표현들이 저에게는 더 새로울 때가 많아요.
원어민들은 쉬운 말로도 원하는 바를 잘 표현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알면 좋지만, 일상적인 이메일을 굳이 유려하고 현학적으로 쓸 필요는 없잖아요. 이건 오히려 한국 회사와는 반대 같이 느껴졌어요. 한국에서는 한자어를 많이 섞어서 "검토 요청드립니다." 또는 "필요한 자료를 송부해 드립니다."처럼 업무 메일 티를 팍팍 내는 표현이 많이 섞이게 마련이잖아요.
한국 회사에서도 신입 사원일 땐 어리바리하며 이메일 하나 쓰기도 어렵게 마련인데요, 마찬가지로 저도 처음으로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쓰는지 잘 몰랐고, 일을 하며 조금씩 배워갔습니다.
쉬운 표현, 다른 문화
예를 들면 이메일에서 여러 사람들이 정보를 주고받을 때, 동그란 고리 loop라는 말을 참 유용하게 많이 씁니다.
- I'll keep you in the loop. (관련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해 줄게)
- I'm looping Hoon into this conversation. (이 이메일에 Hoon도 포함시킬게)
- I'm trying to close the loop here. (이 이슈 종료된 거 맞지?)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또, 앞으로 업데이트 되는 상황을 알려준다고 할 때도, "I'll let you know"보다는 "I'll keep you posted"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지요. 업무에 대해 말할 때도 "My tasks are A and B"보다는 "I have A and B on my plate"라는 식으로 많이 쓰는데, 아마 일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예요.
줌미팅을 제안할 때도 "Let's have a Zoom meeting"보다는 "Let's connect via Zoom"이라든가 "Let's have a chat on Zoom"처럼 뭔가 제가 영작을 한다면 바로 나오지 않았을 것 같은 표현을 쓰는데, 이런 것들도 많이 배웠습니다.
또 영어는 사람을 가리킬 때 he/she라는 인칭 대명사의 성별이 중요한데요, 요즘 미국에서 진보주의적인 트렌드가 있어서인지 이메일 끝에 자기 서명과 함께 "she/her/hers"로 어떻게 지칭할지를 함께 적는 경우가 많더군요. (최근에는 자신이 어떤 성별로 파악될 것인지 결정해서 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they라는 인칭 대명사를 쓰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너네 회사 Alex가 나를 도와줬는데, 걔 말로는 정보가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할 때, Alex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따라 "she said"인지 "he said"인지가 달라지잖아요. 한국어에서는 필요없지만 영어에서는 꼭 필요한 정보지요.
영어나 미국 문화가 한국과는 다르단 걸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부보다는 도구로서의 영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저로서는 영어란 언제나 ’공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미국에서 몇 년 생활하고, 대학원 공부도 하고, 무엇보다 일을 하며 영어를 ‘도구‘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도구는 딱 한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보다는 두루두루 유용한 것에 아무래도 손이 가는 법.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이런 저런 표현들이 제겐 참 고맙고 쓸모 있게 다가왔던 듯합니다.
여전히 영어로 일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가끔 미팅 때 자연스럽게 좋은 표현이 입에서 튀어나오면 으쓱하기도 합니다. 짬바(?)가 생기긴 하나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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