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시간
통계청에 따르면, 워킹맘의 주당 일+육아+가사 시간은 70시간이라고 합니다. 주말 없이 하루 10시간인 셈이죠. 평일엔 아이는 학교나 기관에 가는 대신 엄마는 일을 하고 (물론 퇴근 후엔 가사와 육아 콤보), 주말엔 밀린 가사와 육아를 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풀타임으로 출근하는 친구들만 보아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이들 챙기고 출근 준비를 하고, 종일 직장에서 일을 하다 종종거리며 퇴근하면 밤에 잘 때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해요. 슈퍼맘은 바란 적도 없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세상엔 슈퍼맘 천지인 셈이죠.
집에서 일하면 편할 것이다?
재택근무로 일하면 물론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에 좀 더 여유가 있기는 합니다. 출퇴근 자체도 그렇지만 남들에게 보여도 무방할 만큼의 외관을 꾸미는 시간과 노력도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샤워나 화장 없이 잠옷 차림 그대로 커피잔을 들고 서재방에 가면 그게 출근이지요.
그러나…
사실 재택근무야말로 슈퍼맘의 함정에 빠지기 딱 좋습니다. 어찌 보면 70시간도 적단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일단 업무 시간이 온전히 저의 관리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재택맘에게 시간 관리와 업무시간 확보는 필수적입니다.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저는 45-50분 정도 일하면 10-15분 정도 쉬는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을 재기도 하고 Work with Me 같은 유튜브 비디오를 틀어놓고 일하기도 하지요. 문제는 휴식 시간에 온전히 쉬지 못합니다. 집에 있다 보니 식기세척기에 접시를 후닥닥 넣거나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방 하나라도 청소기를 돌리곤 하거든요. 호닥닥 쓰레기라도 버리고 오면 바로 다음 사이클의 근무를 시작해야 하고요. 오후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픽업한 뒤 함께 후딱 장을 본 뒤, 굽고 볶고 끓여서 대충 저녁을 차려서 먹입니다. 부엌을 정리하고 막내를 씻기고, 중간중간 첫째 숙제를 봐주고, 양치를 시키고 밤이 되면…
녹초.
그렇다고 집안이 깨끗하거나 아이들에게 정성스러운 진수성찬을 차려 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일주일에 한 번은 청소 이모님의 손길이 필요하고, 정말 바빠서 정신이 없는 날은 반찬 가게로 발걸음이 향하곤 하죠. 일은 일대로 밀리고, 가사는 가사대로, 육아는 육아대로 평균 이하라는 생각이 들면 울적해집니다.
재택근무맘은 전업주부와 워킹맘 그 사이에서 더욱 발버둥 치는 느낌이에요.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장점들
하지만 엄살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재택맘의 장점도 분명 있거든요.
제일 감사한 건 아이가 아플 때 옆에 있어줄 수 있다는 것이에요. 특히 아이가 어리면 저도 휴가를 내야 하지만, 초등 고학년 정도 되면 아이는 옆에서 쉬게 하고 저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출근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옆에 두는 게 맘이 편하죠. 워킹맘들이 제일 힘들 때가 아이가 아플 때라고 하던데, 이것만큼은 재택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각종 A/S라든지 가스 점검처럼 집에서 대기해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경우, 저는 늘 집이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문만 열어 드리면 되니까요. 주말까지 대기하지 않고 후딱 일처리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늘 되새기는 것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건 없죠. 장점을 바라보며 단점을 감수하는 게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녹초가 되는 이 일상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빛나는 순간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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