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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15. 2024

마치며_경단이라면 찹쌀경단도 싫었던 나에게

한동안 찹쌀경단조차 쳐다보기 싫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경력단절, 줄여서 경단녀. 이 말이 왜 이리 싫었을까요? 아이를 키우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사회는 왜 꼭 '단절'되었다는 잔인한 표현을 써야 할까요? 이러니 저출산 사회가 된 것도 이해가 갑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출산 후 한동안은 동창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한 마디도 하기가 싫었습니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전기과) 남자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물론 각자의 고충은 있었겠지만, 외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살림을 하느라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 보이는 자격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달린다면 

그래도 돌이켜보면 한 순간도 안이하게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학위를 따고, 번역 알바를 하고, 돈도 받지 못하면서 비영리기구에서 자원봉사로 일도 했습니다. 모두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만 했던 일들입니다. 코로나 시대 이전이라 흔하지 않았지만 온라인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검색해서 욕심 많게도 일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좋은 대학은 한국에서나 의미가 있지, 미국에서는 그 간판이 별 게 아니더군요. 맨몸으로 부딪쳐야 했죠. 발버둥을 치다 보니 현재 회사의 인턴도 얻어걸렸고(?), 버티고 버티다 보니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남이 보면 여전히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번듯한 일입니다.


머나먼 남의 나라 회사를 위해 혼자서만 일을 하다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지루할 수도 있는 제 업무의 의미를 찾기 위해 늘 방황을 했죠.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이 방황의 일부였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일상의 답답함까지 더해져 다 때려치우고 싶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버텨냈죠. 그러다 보니 제가 쓰는 글도 조금은 빛을 보았습니다. 브런치에 쓰던 글이 쌓여 작년에 첫 출간을 했거든요. 회사에서도 기뻐해 주셨지요. 제가 하는 일과 글이 완전히 맞닿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교집합이 커져 가는 것 같아요.  



내게도 당신에게도 응원을

이 글을 마무리하며, 맨날 집에만 있는 재미도 없는 저의 이야기를 왜 쓰고 싶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가지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고 집에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그 와중에 제 능력만으로도 무언가를 조금은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걸 입 밖에 내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늘 부족하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아이를 잘 키워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커리어가 화려해서도 아니고, 그만큼 성실히 열심히 살아온 것만큼은 자랑스러워요. 재택근무야말로 성실한 자만 할 수 있고, 그런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단 걸 이젠 알거든요.


두 번째는 열심히 살다 보면 누구나 조금은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일상에 치여 자신의 꿈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는 엄마들에게 말이에요. 그 꿈이 처음에 그렸던 것과는 다를 수 있지만(저도 이런 모습을 꿈꾼 적은 없어요), 작은 노력도 매일 쌓이면 분명 차이가 있다는 걸 제 경험으로 느낍니다. 젊은 시절 꿈꿨던 만큼 화려하고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나 자신이 되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음식에 양념이 배기를 기다리고, 건조기가 다 돌아가기를 대기하는 5분, 10분이 우리에겐 참 많잖아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휴대폰 대신 노트에 글이나 그림을 끼적일 수도 있지요. 결국은 모든 길은 꾸준함성실함으로 통합니다.


한국 방구석에 앉아서도 실리콘 밸리 회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세상인데, 뭔들 못하겠어요? 꿈을 꾸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그리고 저 자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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