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일을 하는가
이 글을 쓴 지 꽤 됐다.
https://brunch.co.kr/@yjeonghun/211
어영부영 알바처럼 일한 지 10년이 넘어가던 무렵, 보스가 퇴사했다. 대여섯 명 남짓의 조그마한 스타트업에서 나의 입지는 꽤나 커졌고, 연봉도 올려 받고 유급 휴가도 얻어냈다는 해피 엔딩.
...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입지는 다시금 매우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회사에서는 내 위로 디렉터를 뽑아 주었다. 작은 조직이다 보니 우리 팀은 디렉터와 나 둘뿐이다. (그전에 나 하나였다) 내 위로 들어왔지만 회사 시스템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다 보니 내가 보스를 트레이닝해주는 격이 되어 첫 한두 달은 누가 보스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보스는 매우 똑똑하고 유능한 여성이었고,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금방 가닥을 잡았다. 비효율적인 부분을 바로바로 정리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많이 바꿨다.
예전에는 방치에 가까웠던 회사 슬랙(Slack)을 채널별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활발하게 이용하기 시작했고, 남발하기만 했던 지라(Jira) 티켓도 오래된 건 다 정리하고 우선순위에 맞게 재배치했다. 중간 관리자(=나)가 관리하던 11명짜리 인도 팀을 본인이 직접 한 달에 한 번 (줌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빅 데이터에 대한 경험이 많았고, 데이터를 사용할 줄 알았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할 줄은 알았지만 그걸 가지고 뭘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던 나는 사실 '시키는 일을 하는 직원'에 가까웠다. 현상 유지를 하는 데 있어서는 나도 쓸만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가 보유한 데이터는 방대했고, 여기서 트렌드를 발견하여 고객사에게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은 내 보스였지, 내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입지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이 회사에서 쭉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 보스는 늘 그렇게 말했었다. "너만 원하면 네 자리는 언제나 있어."
그러나 그사이 시대는 바뀌었다. 이 스타트업이 자리를 잡았을 때만 해도, 내가 도중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데이터 사이언스도 인공지능도 낯선 얘기였으니까. 아니, 2024년 하반기에 내가 “존버하면 승리한다”라고 단언할 때만 해도 이렇게 시대가 빨리 바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챗gpt를 필두로 AI의 일상적 사용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사용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사용하느냐”가 문제가 되었다.
챗gpt로 일을 하면 컨닝을 하는 것처럼 양심에 찔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챗gpt와 제미나이를 둘 다 적재적소에 사용해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드러내야 하는 때가 되었다. 내가 하던 구식의 업무 따위는 쉽게 대체될 수도 있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내년, 내후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아니, 과연 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짐작도 가지 않는다.
결국 내 마음속에는 깜박이는 전구처럼, 희미한 질문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일을 하나'라는 질문이.
물론 1번은 '돈'이다. 늘 마음속으로 되뇌는 이야기. 돈 안 받고도 일할 건 아니다. 아무리 이 분야가 내가 사명감을 느끼는 분야이고 내가 일을 할 때마다 효능감을 느낀다 한들, 나는 돈을 받기 때문에 일한다. 파트타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질 수 있는 여타 직업에 비해 금전적 보상이 뒤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놓지 못하고 있다. 통장에 따박따박 꽂히는 돈이 삶에 매우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직장을 그만둘 경우 가장 무서운 점은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커리어 공백이 생길 때마다 내가 가장 손쉽게 손을 뻗었던 분야가 바로 ‘번역’이었다. 특히 논문 번역은 특별한 문학적 재능이나 경험이 없어도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여서, 나는 대학교 어학당이나 몇 개의 번역 회사에 소속되어서 번역 일거리를 받아 일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나의 얄팍한 언어적 재능 따위는 능력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인공지능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닐지언정 이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누구나 어느 수준까지는 다른 언어로 번역을 하는 게 가능해졌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번역이라는 옵션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디서 이만큼 돈을 벌 수 있을까?
경제적 보상 말고도,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과 효능감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사실 내 일은 안정감이나 명예, 권력(?) 같은 측면에서 보면 매우 보잘것없다. 무슨 일을 한다고 자랑할 만한 직업도 아니고, 당장 잘려도 할 말 없을 만큼 안정적이지도 않다. 당장 지금도 보스의 말 한 마디면 끝장이니까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내가 일을 하고 있고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있으며 크든 작든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쭉 지탱해 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업무 이메일을 확인하고, 그 주변으로 삶의 다른 자잘한 태스크를 배치하는 습관은 오랫동안 나의 루틴이었고, 그게 없어진다면 그 허전함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 둘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겠지만, 그래서 무척 바쁘게 지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과는 다르리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개인적 삶을 꾸리는 것 외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십수 년 간 나의 정체성이었던 듯하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공부를 했고, 자원봉사로라도 일을 했고, 번역이든 뭐든 찾아서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회사가 아니라면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최근에 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두 권 읽었는데 하나는 제현주 작가의 <일하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중국 후안옌 작가의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이다. 일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매우 다른 두 작가로, 전자는 직업이 자아성취의 도구이자 인생의 매우 중요한 이정표로 작용한다. 이에 반해 후자는 직업이란 말 그대로 생계 수단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달성하기 전에 먹고살기 위해 거쳐 가는 중간역일 뿐이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직업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단 점, 그리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하나의 서사로 빚어냈다는 점이다.
나 역시 대학생까지는 탄탄대로처럼 달려왔지만 그 이후의 인생은 직선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하는 일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적어도 오 분은 잡아야 할 만큼 애매하다. 게다가 언제 잘릴지 모른다. (...). 올해 나의 직업적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책을 통해 두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었고 어느 정도 답변을 들은 기분이다.
하나는 '탁월성 발견하기'다.
"전통적인 의미의 전문성을 어떻게 갖추느냐보다는 자신만의 탁월성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 전문성이 한 가지 이름의 직업과 결부되는 것이라면, 탁월성은 일을 바라보는 접근법,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수 있는 중심 기술과 연결된다. (...) 조직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별개로, 자기만의 만족 기준, 달성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탁월성을 만들어낸다. 탁월성은 또한 자신이 해온 일,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반추하며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 <일하는 마음> 중 -
내가 특별히 탁월해서가 아니라, 직장에서 잘리더라도 내 커리어를 지탱해 준 나의 핵심 기술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꼭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인공지능 전문가' 같은 남들이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기술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 수 시간 지루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도 딴짓을 하지 않는 성실함의 기술' '십 수년 간 원격으로만 일하면서도 잘리지 않은 소통의 기술' 같은 것이 그것이다. 나만의 탁월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이 직장에서 잘리더라도 다음 스텝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똑같은 직장이야 존재하지 않지만, 내 핵심 기술을 사용할 만한 직장은 잘 찾아보면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자유를 추구하기'다.
일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이고 개인적 소망을 단념하면서도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반대의 삶에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여기에서는 일단 자유라고 부르겠다. (...) 내가 말하고 싶은 자유는 고도의 자아의식을 기반으로 추구하는 개인적 갈망과 자아실현이며 타인과 확실히 구분되는 정신이다. 나는 그런 자유를 동경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욱 다양하고 다원적으로, 더욱 평등하고 포용적으로, 더욱 풍부하고 다각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 <북경의 택배기사> 중 -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의 루틴에 익숙해지다 보면 완전히 잊는 것 중 하나가 '꿈'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택배 기사로 일하고, 공장이나 자전거 가게에서 일하면서도 후안옌 작가는 진정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꼭 일을 '통해' 달성하지 않아도 된다. 일을 하는 '동안에' 내 나름의 의미와 목표를 찾는 것. 그것이 모든 직장인에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도, 없는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매일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미래를 준비해 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