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세 살 둘째는 자연관찰 책을 좋아합니다. 아는 형에게서 전집을 물려받아 자기 전에 한두 권씩 읽곤 하는데, 몇몇 책은 책장이 뜯어질 정도로 여러 번 읽어 주었어요.
<딸기와 토마토>도 그중 하나입니다. 딸기와 토마토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그림과 사진으로 비교해서 설명해 주는 책이에요. 이 책은 족히 수십 번은 넘게 읽어주어서, 사실 저도 잘 몰랐던 걸 많이 배웠어요. 딸기나 토마토를 먹기나 하지, 실제로 어떻게 자라는지는 잘 몰랐으니까요.
어젯밤 또 이 책을 읽어 주는데, 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딸기는 줄기가 옆으로 자라서, 땅에 붙어 자라면서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반면 토마토는 줄기가 위로 자라서 옆으로 가지를 친다는 점이 말이에요. 자라는 방식이 다른데, 저처럼 문외한이 딸기를 키운다면 왜 줄기가 위로 쑥쑥 자라지 않나 고민했을 것 같기도 해요.
요즘 글을 쓰기 싫을 만큼 의기소침한 나날이었어요.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들이 있었고, 기후나 업무에 대해서 쓰려고 해도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나날이 더워지는데 세계적으로 정책적인 움직임은 오히려 퇴보했고, 때문에 회사도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죠. 우울한 글밖에 나오지 않으니 쓰고 싶지조차 않더군요. 독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사유를 필요로 하는 책에는 손이 가지 않아, 지난 2-3주 간은 추리소설만 왕창 읽었습니다. (그 와중에 또 재밌는 거 많이 읽음) 무덥고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답답하고 힘들 때 이미 제 속의 변화는 일어나고 있을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마치 딸기가 수직 방향으로 볼 때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소리 없이 줄기를 뻗어 나가 새로운 뿌리를 내린 것처럼 말이에요.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도 그랬어요. 일상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무력할 때, 글을 쓰는 분들을 만나고 저도 매주 글을 쓰며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없이 답답해 보이던 그 시기가 사실은 저의 내면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변곡점이었어요. 그저 오락거리로 읽던 책을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게 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나의 삶을 통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게 될까를 고민하게 된 시작이었거든요.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그때 옆으로 뻗었던 여러 줄기가 조금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기분이 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저 무기력한 나날들, 다음 디딜 발자국이 별로 기대되지 않는 순간들이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사실은 내가 성장할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헤밍웨이는 ‘세상은 모든 사람을 쓰러뜨리지만 많은 이들이 쓰러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라고 했다지요.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써 내려간 주말 아침의 시간이, 딸기처럼 수평으로 넓어지는 성장의 일부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