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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문턱, 아들 관찰기

그리고 솟아나는 의문점들

by Hoon

아들내미가 사춘기가 가까워진 듯하다.


같은 반 또래들은 이미 키도 훌쩍 크고 슬슬 청소년 티가 나기 시작하는데, 우리 아이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것만 같았다. 사실 아직도 그렇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주간 부쩍 아이가 달라진 게 느껴지는데, 몸은 그대로지만 행동 패턴이 매우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춘기의 '문턱'에 다가왔나 싶은 요즘이다.


그리고 이건 여전히 초보인 엄마의 큰아들 관찰기. 대부분은 이해를 할 수 없어 물음표로 끝나는 의문점들이다.



1. 왜 그의 방에서는 항상 빨래 바구니 냄새가 나는 것인가

맘카페에서 '사춘기 아들 머리 냄새 샴푸 고민' 같은 글을 볼 때만 해도, 남자아이들 냄새가 뭔지 잘 몰랐다. 나는 언니만 있고,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방에 들어갈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최근 아이의 방을 청소할 때마다 코를 찌르는 구리구리한 냄새에 경악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특히 며칠 전의 일이었다. 방과 후 스포츠 수업이 있어 1시간 이상 뛰고 온 아이가 힘들다며 방에서 쉬겠다고 들어갔는데, 5분쯤 후 나는 그 방문을 열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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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냄새는 틀림없이 5일 이상 묵힌 수건이 가득한 빨래 바구니에서 나는 냄새다.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바로 다음 날 창문을 활짝 열고 몇 시간이나 환기를 하며 대청소를 했다. 그러나 냄새의 '진원지' 따위는 없었다. 사방에 은은하게 배어 있었으니까. 이제 나도 당분간 진동을 할 이 냄새와 화해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결국은 이 또한 아이의 성장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2. 언제나 닫힌 방문. 그의 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방문을 열면 아이가 날 선 목소리로 "왜 또?!"하고 묻기 시작한 것이. 어린 동생을 불청객 취급한 건 오래되었지만, 엄마마저 외부인이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아이의 방은 자신만의 성역이 되기 시작했고, 그곳은 그 어떤 외부인도 허용되지 않는다.


굳게 닫힌 방문 안에 아무래도 랩탑이 함께할 때가 많다. 학교에서 랩탑을 사용하게 되며 랩탑과 혼연일체가 된 아이를 보는 것도 엄마로서 쉽지는 않다. 아직 브라우저 히스토리를 지울 줄 몰라 (아니면 아는데 귀찮아서 안 하는 것일지도) 틈틈이 확인해 보는데, 아직 딱히 유해한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그게 언제 바뀔지는 시간문제 아닐까.


자신의 공간을 갈구하는 것도, 이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다만 방을 어디까지 어지를 수 있는지는 내심 궁금하다.


3. 그는 왜 항상 화가 나 있는가

예민한 점은 있어도 순응적이고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디폴트 값이 '화남'이다. 분노라기보다는 미묘한 '짜증' 내지는 '불쾌'에 가깝다. 학교에 다녀와서 밝게 맞아주면, 웅얼웅얼 뭔가 중얼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길래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다. 아직 아이가 사춘기 문턱에 온 걸 모르고 꼬치꼬치 묻던 날, 아이는 제대로 화를 냈다. "지금 아무 얘기도 하기 싫다고!"


이제야 알았다. 들쑤시면 안 된다는 걸.


아이는 학교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온다. 커 가는 아이들 속에서 대인관계도, 늘어나는 학업도 쉽지 않을 것이다. 긴 하루 동안 실수하지 않으려 긴장도 제법 할 것이다. 가장 편한 공간에 오면 무조건 조용히 쉬고 싶을지 모른다. 더 어릴 때야 엄마가 더 중요했고, 엄마와의 시간을 통해 피로를 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계가 서서히 멀어져 간다. 그리고 그걸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4.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 그런데 왜 하지 않는 것인가

예전부터 공부를 딱히 많이 시키지는 않았지만, 학년이 올라가니 숙제가 제법 많아졌다. 예전에는 하루에 해야 하는 숙제의 종류와 양을 정해주고, 일일이 확인도 했다.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처음부터 자기가 알아서 하는 아이들은 없으니까.


그런데 웬걸, 아직 습관이 자리 잡기도 전에 아이가 쑥 커버렸다. 이제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나의 간섭을 일절 거절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기도 하고, 어차피 크면서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니 손을 뗐다. 다만, 간혹 몰래 아이의 노트를 펴 보면 아주 엉망진창이다. '알아서 하는 건 좋은데... 근데 알아서 안 하잖아.' ㅠㅠ


5. '나는 진짜 여자애들한테 관심 하나도 없어' -> 그런데 왜 맨날 이 말을 하는 것인가

요즘 아이 입에서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느니 하는 말이 부쩍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어린 편이라 그런 걸 잘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학교 내에 커플들이며 애정 관계를 꿰고 있었다. 어떤 애는 상대의 얼굴만 마음에 들면 무조건 좋아하고, 다른 애는 성격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너는 어때?"하고 물으니 "음... 내 생각엔 성격이 중요한 것 같아. 나는 얼굴만 보고 100% 예쁘다고 생각되는 애가 없거든."


100%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당연히 없지, 라며 슬쩍 "엄마는 몇 퍼센트 정도 되는 것 같은데?"하고 물으니, 대답이 가관이다.


"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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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물어봤다. (다만 다른 여자아이들은 5% 정도 예쁘다고 하는 걸 보고, 40%면 꽤나 후한 점수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자기는 정말 여자아이들에게 관심이 없고, 예쁘다고 생각되는 아이도 없고, 다른 아이들이 왜 여자친구를 사귀는지 모르겠다는 우리 아들.


... 그런데, 왜 맨날 그런 얘기를 하는 건데? ㅎㅎ



마지막. 왜 하루에도 몇 번씩 다가왔다가 도망치는 것인가

탄생 후 오랫동안 해외에서 살고, 외동이었던 기간도 길었던 아들은 나와 유달리 각별히 지냈다. 애정 표현도 아낌없이 해 주는 스윗하기 그지없는 나의 큰아들. 이 아이가 커간다는 건 내게도 그래서 더 특별하다.


사춘기의 문턱에 서 있는 그는 하루 종일 무뚝뚝하게 굴다가도 어스름이 내리면 가끔 내게 다가와서 예전처럼 살갑게 군다. 내 기분도 살피고,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한없이 떠들기도 한다. 유치한 장난을 치며 다섯 살 때처럼 낄낄 웃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손을 뻗어 아이를 아기처럼 보듬으면, 어느새 아이는 또 도망친다.


밀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가왔다 도망치는 아이를 보면 기분이 묘하다. 섭섭하다기보다 기특하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사춘기 아이를 키울 때 부모는 '집 안의 화분' 정도로 있는 게 좋다고 한다. 아무 말도, 아무 반응도 없지만 언제나 그곳에 서 있는 화분.


필요하면 내게 다가와 주기를. 그리고 문턱을 지나 본격 사춘기가 되었을 때 나의 인내심이 넉넉하기를.


가까운 미래에 화분이 될 사람의 바람이다.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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