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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09. 2020

미국 대선, 강건너 불구경이 아닌 이유   

요즘 미국 대선 결과, 잘 지켜보셨나요? 

인터넷에서 봤는데요, 한국인들이 남의 나라 대선 결과를 너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걸 본 외국인이 왜 그리 관심이 많냐고 하더래요. 그랬더니 한국 친구 왈, 


"주변에 대선을 치르는 나라가 없어..." 


(우리 주변국들 왜 다 이렇냐며)


물론 완전히 강 건너 불구경은 아닙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군사, 경제 규모 등 패권의 위치에 있는 만큼 향후 4년의 지도자는 세계 곳곳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한국도 국가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한미동맹을 비롯해서 대북관계, 대중 관계 등 미국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도 매일 밤 조마조마 결과를 지켜보며, 나무늘보들이 개표하는 듯한 그곳에 한국 아줌마 부대라도 보내 개표를 도와 드리고 싶단 생각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하루면 게임 끝

네바다 개표위원 (출처: 트위터)

저는 미국 투표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미국에 살고 있지도 않지만 개인적으로 바이든이, 아니 민주당이 이기기를 바랐습니다. 트럼프 정책에 반감이 있다기보다 (하지만 그 고상해 보이는 앤더슨 쿠퍼가 현 대통령을 "뚱뚱한 거북이(obese turtle)"라고 불렀을 때 육성으로 빵 터지긴 했습니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기후변화 정책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민주당은 기후변화 대처나 청정에너지에 대해 비교적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바이든은 이미 며칠 전에 자신이 당선되면 '77일 후 파리 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죠. 물론 미국이 파리 기후협약 하나 다시 가입한다고 당장 기후변화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애초에 기후변화를 믿지조차 않는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제정한 다수의 환경 정책을 폐지 또는 완화했고, James Hansen 등 유명 과학자들은 미래 세대의 권리를 옹호하며 아예 연방 정부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공화당의 전반적인 정책이 문제가 아니고, 트럼프라는 인물은 확실히 아니라고 보는 거죠. 



야, 네가 덩치가 제일 크면서 발을 빼면 어떡해?! 

기후변화나 환경 문제는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공유지의 비극: 목초지나 호수의 물고기처럼 공동체의 모두가 사용해야 할 자원 사용을 사적 이익을 따르는 시장의 기능에 맡겨 두면 이를 남용하여 자원이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 마을에 다 같이 접근할 수 있는 연못에 물고기가 있을 때, 남을 배려해서 자기 욕심을 줄이고 조금만 낚시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겁니다. 모두가 욕심을 부려 물고기 씨가 마르는 걸 방지하려면, 권위 있는 기관에 의한 개입이 적극적으로 필요하죠. 각국이 오염수 방출이나 대기 오염원 배출에 각기 기준을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사법적인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입니다.

규제가 없으면 물고기 씨가 말라 버립니다. (MetaNet ID)

하지만 배경이 국제무대로 옮겨가면 얘기는 좀 더 까다로워집니다. 물고기를 잡고 싶은 마을 사람들처럼 국가들은 각자의 국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인데, 그에 반해 마을 이장님(?)이나 경찰서장처럼 권위 있는 존재가 없거든요. 권력이 수직적인 상하관계로 배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국제법에서 가장 큰 특징입니다. 또, 국내법은 국회의원 같은 의사결정자들이 모여서 정하고, 그 규범을 시민들의 준수하면 되는 것에 비해 국제법은 자기네끼리 정하고 자기네가 지켜야 한다는 점도 다릅니다. 조금 어렵게 말해서 입법자와 수범자가 동일하다고 말하죠.


이 특징을 뭘 의미할까요? 국제환경법이 제정되기도, 지켜지기도 엄청 어렵다는 겁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법은 주로 나라들끼리 약속을 하는 조약에 기반하고 있는데, 환경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통상법이나 범죄인 인도조약처럼 뭔가 호혜적인 이득이 분명하면 안 지키기 쉽지 않을 텐데, 환경법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가 관세를 왕창 올리면 상대편도 열 받아서 관세 폭탄을 때릴 테니 내가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데, 환경법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단기적으로는) 그만이라는 거죠.


기후변화 방지 협약도 그렇습니다. 1997년 교토의정서도 그렇고, 2015년 파리 협약도 그렇고, 취지는 엄청 좋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도 분명하고, 다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했죠. 모여 앉아 박수를 짝짝짝 치며 "와! 정말 좋은 회의였어! 앞으로 쭉 이렇게 하면 되겠다, 허허"하며 뿌듯해했죠. 

약속을 하면 지켜야 말인데요.. (출처: the English Blog)

그런데 말이죠, 덩치 큰 친구가 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합니다. "요즘 우리가 사정이 진짜 별로 안 좋거든, 국민들이 그다지 좋아하질 않더라고. 미안한데 나 이거 당장은 못하겠고, 천천히 할게. 그래도 나름 노력할게, 진짜야!"라고요. 남겨진 친구들은 "야, 네가 제일 덩치가 크면서 발을 빼면 어떡해?"라며 비난을 하지만, 딱히 붙잡아 둘 방법이 없습니다. 조그만 친구들은 또 어떤가요? "솔직히 물고기 다 잡은 건 우리보다 큰 너네잖아? 왜 우리가 지금 와서 물고기를 적게 잡아야 하는데? 불공평해!" "우리는 너네 줄이면 그때 줄일게."라고 하겠죠.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딴청을 피는 틈을 타 몇 명이 잽싸게 문을 열고 빠져나가 버립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까지의 성과와 개선점에 대해 토론하고, 또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제일 덩치 큰 친구는 또 발을 뺐고, 다른 사람들도 웅성웅성거리고 있을 뿐 뾰족한 수는 없죠. 이게 바로 국제기후협상 진행 과정 요약판입니다. 


90년대에는 여러 나라들이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몇% 감축하겠다"라고 약속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약속의 땅) 2020년이 된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아무도 지키지 못한 약속은 도덕적으로 비난할 순 있어도 형사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고,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만을 서로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파리 협약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엄청난 드라마가 써지는 건 아닙니다. 분명 못 지킬 약속도 할 거고, 못 지켜도 아무도 뭐라 못하겠죠. 그래도 세계 기후변화 대책을 논할 때 미국은 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만 기타 국가들도 나설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의 행보를 지지하는 겁니다. 슬쩍 발을 뺐던 제일 목소리 큰 친구가 다시 돌아와서 "아이고 미안해! 내가 지난 4년간 좀 너무했지?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할게!"라고 말해 주면 그 이후 협상의 판도는 완전히 달라지게 마련이니까요. 



민주당의 기후변화 정책, 과연 어떻길래 

아무래도 다른 국내외적 이슈도 많다 보니, 이번 바이든 vs. 트럼프 토론 때 기후변화는 그다지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이든과 트럼프의 정책을 비교해 보면 분명 바이든의 정책은 친환경적이고 기후변화 대책 마련에 적극적입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

바이든 진영은 기후변화가 환경뿐 아니라 미국인의 건강, 공동체, 국가안보, 경제에 있어 존재 자체를 위협(existential threat)한다고 표현했습니다. 트럼프는요? 기후가 "뭔가 변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something's happening)" 다시 바뀔 수도 있는 거라, 기후변화 대처에 돈을 많이 쓰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못 박았죠. 


*기후변화 정책은?

바이든은 선거운동 때 "Climate Plan"이라는 걸 아예 갖고 나왔어요. 골자는 2050년까지 100% 청정에너지, 넷(net) 제로 배출량을 달성(넷 제로는 순배출량을 의미합니다. 배출량을 아예 0으로 만드는 게 아니고 배출한 만큼 흡수도 하겠단 의미죠)하겠다는 겁니다. (진짜 달성할 수 있는지는 논외로 하고요) 그에 반대 트럼프는 기후변화 대책... 이랄게 없고요, 원래 오바마 행정부 때 야심 차게 마련했던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당장 폐지했었죠. 파리협약을 탈퇴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약에서 발을 뺐죠. (출처: the Mercury News)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는 국가의 핵심 역량이다 보니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에너지 안보와 독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 자원으로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죠. 하지만 바이든은 에너지를 기후변화와의 관계 속에서 보고 있고, 따라서 청정에너지에 관심이 많아 연간 5천억 달러를 이에 투자하겠다고 했죠. 반면 트럼프는 오일과 가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배출을 규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기존 산업과 고용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죠.


*연구 개발 정책은?

바이든은 새로 연구소를 설립하여 100% 청정에너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을 장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석탄 처리 공정이나 관련 제품 제조업에 연구비를 투자해서 석탄을 한껏 이용하겠다고 말했죠. 이것만 봐도 둘이 얼마나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프래킹(fracking)이나 키스톤 XL 프로젝트 등, 지난 수년간 미국에서 첨예하게 대립해 온 여러 에너지, 환경 문제에서 두 진영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죠. 



그래도 물고기 씨를 말릴 사람이 안돼서 다행이다

물론 정책이라는 게, 한 부분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당장 세금 문제나 이민자 정책 등 눈앞에 이득이 걸려 있으면 기후변화 정책만 가지고 한쪽 편을 들긴 어렵겠죠. 하지만 오히려 제3자의 입장에서 봐서인지 미래 세대를 위한 고민을 누가 더 했는지는 명백해 보였습니다. 


요즘 중국, 한국, 일본 등 앞다투어 넷 제로 배출량을 달성하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약속의 땅이 2020년에서 2050년으로 한번 확 밀린 거죠. 과연 그때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약속도 안 하는 것보다는 다소 비현실적이더라도 함께 으쌰으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모여 앉아서 "요즘 보니까 물고기 얼마 안 남았더라. 그냥 다 잡아 버리고 다 같이 죽자"라고 하는 것보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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