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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an 11. 2021

누가누가 잘했나, 누가누가 잘할까

파리 협약과 국가별 기여 방안(NDC)

일호, 이경이, 삼준이, 사혁이, 오은이는 한 반 친구들입니다.

다섯 친구들은 함께 조별 과제를 하게 됐어요. 여러 준비가 필요해서 각자 어떤 일을 맡을지 의논하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일호와 이경이가 절반 이상을 맡고, 나머지 셋은 조금씩 힘을 보태기로 했지요. (이상한 설정입니다만 더 잘 맞는 사례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봐주세요.)

그런데 다음날 일호가 말합니다. "얘들아, 미안한데 엄마가 심부름시켜서 어제 못했어. 나도 너네처럼 조금만 할께." 이경이는 말합니다. "나도.. 근데 오늘은 진짜 할 수 있어. 조금만 기다려 줄래?"

삼준이는 말합니다. "나 학원 하나 더 다니게 됐어. 혹시 안 하면 안 될까?" 사혁이는 정말 자기 몫을 하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자기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안 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이 와중에 오은이는 연락이 되지 않네요.

조별 과제 마감 일자는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하죠?



조별 과제 끝판왕을 만나다

올해는 파리 기후협약이 체결된 지 5년이 되는 해입니다. 혼자만 알아서 하면 되는 개별 과제와는 달리, 기후변화는 온 지구가 참여해야 하며 그 결과 또한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별 과제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국가 차원이 아닌, UN이 주축이 되어 대응을 해 왔죠. 구체적인 행동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건 1997년의 <교토 의정서>였어요. 교토 의정서가 맨날 언급되는 이유는 뭐 딱히 결과가 좋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1) 자기밖에 생각 못 하던 전 세계 국가들의 빠짐없이 참여하였다는 것과, 2) (적어도 선진국들에게는) 법적인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했단 것만으로도 기후 협상의 초석을 닦아 줬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처음엔 왜 선진국에게만 배출량을 줄이라고 했을까요? 원래 기후변화란 화석 연료를 무기로 경제 성장을 빠르게 일구어낸 일명 '선진국'들의 행동으로 인해 가속화된 것이다 보니, 국제 협상에서도 그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통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물론 더 부유하기도 하고요. 그걸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라고 합니다. 책임은 같이 지되, 누군가는 더 많이, 누군가는 더 적게 져야 한단 소리죠.



2016년 파리 협약, 교토의정서의 맹점을 극복해 보자

구구절절 맞는 말 같긴 합니다. 다만 이게 맹점이 있었어요. 국제 협약은 국제무대에서만 통용될 뿐, 이것이 국내에 있는 공장과 기업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려면 국내법으로 편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요. 처음 사례에서 어린이들이 자기네끼리 정한 내용을 집에 가서 상황에 맞추어 실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당연히 국내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로 교토 의정서도 그랬어요. 미국 대표도 폼나게 싸인하고 집에 갔는데, 상원에서 무려 95대 0으로 비준을 반대한 거죠. 그럼 어떻게 되냐고요? 교토 의정서는 미국 안에서는 그냥 종이 쪼가리가 되었단 겁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과 개도국을 나눠서 개도국에는 법적인 의무를 지우지 않았던 것도 문제가 됐습니다. 중국은 석탄을 신나게 태워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뤘고, 금방 세계 최대의 배출국이 됐죠. 그런데도 감축 의무를 지니지 않는단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1990년 이후 국가별 배출량 추이. 파란색과 노란색이 두드러지네요... (그래프 출처: Carbon Brief)

이게 파리 협약에서 논의된 개선점들입니다. 선진국과 개도국을 무 자르듯 나누는 것도 현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중국이나 인도처럼 배출량이 많은 국가들은 (개도국이고 자시고) 무조건 참여시켜야 한단 거죠. 뿐만 아니라 국내에 편입되지 않으면 어차피 아무 소용없단 현실도 깨달았습니다. 국가가 정말로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인 정책이 시발점이 되어야 한단 거죠 [1].



각국의 자발적인 노력에 맡겨 봤더니

그래서 파리 협약의 주요 골자는 이겁니다.

일단 지구 기온 상승폭을 2도 이하로 줄이자. 이건 다 찬성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너네가 알아서 정해. 5년마다 한 번 업데이트해주고! (찡긋)


이 "알아서 정하는 계획"을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국가별 기여 방안)라고 부릅니다. 왜 5년마다 업데이트하냐고요? 우선 계획이란 애초에 의도한 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태반이고 (나만 그래?), 파리 협약 자체가 점점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ratchet mechanism" (찾아보니 '역진 방지' 시스템으로 번역하네요. 굿굿)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마도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려면 처음부터 너무 부담스러운 목표보다는 작은 노력이라도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겠지요. 또, 신재생 에너지만 해도 비용이 지난 5년간 엄청나게 낮아졌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 상황을 국가 계획에 새로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죠. 옛날엔 비싸서 비율이 적었던 신재생 에너지 발전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하다는 소리니까요.


그리고 어느덧 파리협약이 체결된 지 5년이기 때문에, 국가들은 최근 하나둘씩 새로운 NDC를 제출하기 시작했어요. 자발적인 계획을 채택하다 보니 어떤 국가는 "몇 년 후까지 특정 연도 대비 몇 % 의 배출량을 감축하겠다 (예를 들면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10% 감축이라는 식으로)"라고 약속하기도 하고, 반면에 다른 국가는 배출량 대신 "GDP 대비 배출 원단위를 몇 5% 줄이겠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뒤죽박죽) 예를 들어 중국이나 인도는 배출량을 퍼센트로 감축하는 것보다 원단위를 개선하는 것이 약속을 지키기 쉽기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죠. (원단위는 효율의 개념이거든요. 절대적인 배출량을 줄이는 약속은 어렵지만 효율만큼은 개선하겠단 거죠.)



누가누가 잘했나

얼마 전 Carbon Brief에 새로운 NDC를 분석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2]. 근데 말이죠, 계획을 새로 제출한 국가들 중 세계 배출량의 1% 이상을 배출하는, 그러니까 꽤 큰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들은 EU, 러시아, 한국을 비롯해 몇몇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나라들은 새로 제출하긴 했지만 5년 전 제출한 걸 거의 복붙반복한 수준이었다고 해요. 아니, 이러면 역진방지 시스템이 무슨 의미란 말입니까.


중국은 얼마 전 2050년까지 넷 제로 배출량을 달성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아직 NDC를 공식 제출하지 않았고요, 여전히 원 단위 개선을 목표로 삼고 있어 배출량 감축 자체는 그다지 크지 않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상당히 배출량이 큰 국가들도 아직 새로운 계획을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NDC를 일찍 일찍 제출한 국가들. 아니 너네 말고 다른 애들이 더 중요하다고... (이미지: Carbon Brief)


물론 계획만 제출한다고 목표 달성은 아닙니다. 감축 목표를 유의미하게 높이 잡은 국가들보다 아닌 국가들이 훨씬 많다고 하니까요. 또한, 저개발국의 경우 계획 자체에 선진국의 금전적 도움을 받을 것을 상정하고 있는데요, 이는 교토의정서에서부터 내려온 전통(?)입니다. 선진국이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개도국의 배출 감축을 돕는 메커니즘이 들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직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애매모호한 계획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돕는 GCF (Green Climate Fund, 녹색기후기금) 같은 기관도 재정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니 앞날이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조별 과제는 해야 하니까

NDC도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상황이고, 올해 글래스고에서 열릴 기후 협상에서도 엄청난 성과가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들 코로나 피해에, 백신 공수에 정신이 없으니까요. 하긴, 파리 협약은 당시에는 다들 대단한 성과라고 기뻐했는데도 몇 년이 되지 않아 금방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요.


그래도 UN 협약이 완전히 유명무실한 것만은 아닙니다. 누가누가 잘했는지 투명하게 밝히고, 국가 간 압박을 느끼도록 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목표를 공개하고 모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단 걸 알 때, 완전히 개판으로(?) 굴기는 쉽지 않은 법입니다. 이 조별 과제의 특징은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단 거죠. (이미 데드라인 지났을지도 모름) 어찌 되었든 천방지축 이기적인 국가들이 모여 이만큼 성과를 이룬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앞으로 나아갈지는 각국의 몫입니다. 조금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일단 조별 과제는 끝내야 하니까요.


<참고 자료>

[1] David Roberts, <The conceptual breakthrough behind the Paris climate treaty>라는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https://www.vox.com/2015/12/15/10172238/paris-climate-treaty-conceptual-breakthrough

[2] https://www.carbonbrief.org/analysis-which-countries-met-the-uns-2020-deadline-to-raise-climate-ambition?utm_campaign=Carbon%20Brief%20Weekly%20Briefing&utm_content=20210108&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news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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