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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28. 2020

다리를 놓아줄까, 장벽이 될까

천연가스 사용과 기후변화 

전설의 미드 <프렌즈>에서 로스가 여자 앞에서 잘 보이기 위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이미지: Pinterest
"가스 냄새 있잖아요, 그거 일부러 집어넣는 거예요. 원래 가스는 냄새가 없는데, 새면 알 수 있게 냄새를 넣는 거랍니다." 


여자를 꼬시기에 적합한 대사는 확실히 아니지만, 아무튼 저는 이거 보고 알았습니다. 원래 가스에는 냄새가 없단 것을요. 오늘은 무색무취의 천연가스에 대해 알아봅시다.



그나마 청정해 보이는 천연가스 

화석 연료의 일종인 천연가스는 우리에게 친숙한 연료입니다. 보일러를 통해 난방에 쓰이기도 하고, 가스레인지에서 요리를 도와주기도 하고요. 전기를 생성할 때도 쓰입니다. 특히 OECD 국가에서는 최근 가스 발전이 늘어서 석탄보다도 높은 비중인 27퍼센트 가까이 차지한다고 해요.  


천연가스는 (이름에도 '천연'이 들어가서인지) 석탄이나 석유보다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흔히 천연가스가 화석 연료와 신재생 에너지의 다리를 놓는 "브리지 연료(bridge fuel)"라는 말도 합니다. 미래에는 100퍼센트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해야겠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 다른 화석 연료를 가스로 대체함으로써 제로 카본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지요.  

화석연료 의존 사회에서 청정에너지 사회로 이어주는 '다리'? (이미지: Change the Air)

물론 석탄보다는 청정한 것이 사실입니다. 석탄이 방출하는 온실가스에 비해 45% 정도만 배출할뿐더러, 질소산화물도 석탄의 1/3만 배출한다고 해요(미 환경보호국(EPA) 자료). 연료의 채굴부터 사용까지 전체를 다 보는 생애주기 분석을 해 보더라도 석탄이 액화 천연가스(LNG)보다 70%나 많은 배출량을 갖는다고 하니, 일단은 석탄보다는 깨끗하다고 볼 수 있죠. 


다른 장점도 꽤 많습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아래 얘기할 셰일 가스의 개발과 더불어 가격은 하향 추세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용, 산업용 등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고, 파이프나 탱크를 통해 비교적 용이하게 운반할 수 있거든요. 


미국에서는 특히 최근 천연가스 업계에서 가스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고 있어요. 가스가 화석 연료 중 가장 덜 유해할 뿐만 아니라,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기 어려울 때 (해가 비치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예비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단 거죠.



정말 다리를 놓아줄까?

이런 논의의 배경에는 에너지 업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은 최근의 사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셰일 가스'의 발견이죠. 원래는 가스는 석유 생산을 할 때 곁다리로(?) 딸려 오곤 했었는데, 이제 새로운 방법으로 획득하게 된 건데요. 셰일은 돌의 한 종류인데, 셰일 안에 있는 (구멍이랄까) 빈 공간에 천연가스가 차 있으며 바로 이 가스를 '프래킹(fracking)'이라는 기법으로 가스를 개발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셰일 가스 보유고가 어마어마하단 걸 깨닫고 신이 났죠. 원래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에너지 자립과 안보인데, 기존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의 에너지 생산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단 걸 알았으니까요. 천연가스 다리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보다 좋은 소식이 없죠. 

세계 셰일 가스 보유고. 미국이 신날만합니다. (이미지: EIA)

하지만 천연가스가 정말 청정에너지 미래에 다리를 놔줄까요?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등 종말 시리즈로 유명한 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이 믿음이 가스 업계가 퍼뜨린 일종의 '현대판 도시 신화'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지금처럼 북미에 가스 러시가 계속된다면 UN 협약에서 열심히 추구하는 1.5도 상승 목표를 당연히 넘게 될 수밖에 없단 거죠. 그나마 깨끗하다며 열심히 태워도 화석 연료는 화석 연료니까요


탄소배출량뿐만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그다지 현명한 투자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요, 지금이야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에 미래에는 결국 판도가 뒤집힐 거라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탄소 기반 인프라에 투자했던 모든 돈이 다 거품이 되어 버릴 것이며, 이 '탄소 버블'이 꺼지면서 경제가 엉망이 될 거라는 거죠. 


게다가 다른 환경 문제들도 따라옵니다. 특히 가스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테크닉인 프랙킹은 '수압파쇄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러 국가에서 찬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요. 물 같은 액체를 세게 쏴서 돌에 균열을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지진을 일으키거나 지하수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항상 제기되어 왔거든요. 



뭐가 가장 중요할까

제레미 아저씨 말대로 실제로 화석 연료와 신재생 에너지의 판도가 10년 안에 완전히 뒤바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래 EIA의 예측을 보아도, 태양광과 풍력의 가격이 화석 연료에 비해서 점점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인 듯해요 [1].  

2025년 전력 생산 비용 예측 (출처: EIA)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이 가장 미래를 위한 길인가 하는 고민이겠죠. 천연가스는 당장 돈이 되면서도 현실적이고,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옵션입니다.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할 돈까지 몰려 버리면 다리가 아니라 장벽이 되는 건 아닐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1] https://www.eia.gov/outlooks/aeo/pdf/electricity_generatio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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