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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21. 2020

그래도 바람만은 공평하게

넷플릭스 <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 리뷰

한 소년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라디오를 고쳐 주기도 하고, 동물을 잡으려 스스로 만든 덫을 놓는 똘똘한 아이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폐차장에 가서 쓰레기 더미를 뒤적여 기어코 뭔가 쓸만한 것을 찾아내곤 했다. 어느 날, 소년은 드디어 바라던 학교에 가게 된다. 그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시골 학교도 교사들의 월급은 줘야 했고, 학생들에게 학비를 받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었다. 또, 집에서 밤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케로젠 등불을 사용하기에 연료가 부족했다. 가난한 소년은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폭우로 인해 아버지는 농사를 완전히 망치고, 곡식 값은 폭등한다. 식구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었다. 아끼던 개도 굶어 죽었다. 건기에라도 농사를 지어 식량을 수확하면 좋겠는데, 바싹바싹 메마른 땅에서는 먼지만 폴폴 날릴 뿐이다.


소년은 생각한다. 우물에서 물을 퍼서 밭을 촉촉하게 적셔 줄 펌프가 필요하다. 물 펌프를 작동시킬 에너지가 필요하다. 전기가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실화 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은 2001년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국가 말라위가 배경이다. 13살 소년 윌리엄 카쾀바는 이 척박한 땅에서 관개에 사용하려고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낸다. 동명의 책도 출판되었고, 주인공이 TED 강연에도 출연하는 등 꽤 유명해진 이야기다.


이 영화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화시켜 동정심을 자극하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가 아니다. 그럼에도 저개발국이 떠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즉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빈곤, 홍수와 가뭄, 교육의 부재 등—을 하나하나 건드린다. 매일 도시에서 태연하게 플러그를 꽂아 전기를 쓰고, 수도꼭지를 열어 욕조에 물을 가득 받곤 하는 우리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절망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여름철에 더워지는 것, 에어컨 요금 폭탄을 맞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생존의 가장자리에 기후변화가 있다. 윌리엄이 사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대기의 물의 순환이 강력해져서 홍수와 가뭄이 점점 더 극단적이 된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그들은 모를지 모른다. 하지만 몸으로 느낀다. 영화 중 한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점점 더 건조해지고, 점점 더 비가 많이 온다고.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농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냐고. 그냥 도박하듯 운에 맡기는 것이라고.

비가 오는 걸 누가 어쩔 겁니까(What can anybody do about these rains)?


기후변화가 소규모 농업에 종사하는 아프리카 농민들의 삶을 훨씬 힘들게 하고 있단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6년 ActionAid International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말라위에서 가뭄과 홍수는 지난 수십 년 간 더 빈번해졌다 [1]. 강우 패턴도 바뀌어서, 예전에는 11월에 내리던 비가 12월에 내리는 바람에 옥수수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농부들은 작물의 종류를 바꾸어서 재배하거나 경작 방식을 뒤늦게 바꿔 보지만, 노하우가 없어서 오히려 별다른 성과가 없다. 해가는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데, 적응의 자산인 농토 자체가 망가지다 보니 악순환에 빠져버린다.

더 잦아지는 가뭄과 홍수 (그래프: ActionAid International 보고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름철 홍수가 올 때, 숲이 그나마 물을 막아 줘서 농사를 망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돈이 필요해 헐값에 땅을 팔아 버리고, 새로운 소유주는 나무를 베어 버린다. 벌목으로 인해 홍수의 피해는 극심해지고, 윌리엄의 아버지는 야속한 비가 망쳐 버린 수확물을 손에 그러쥐고 깊이 좌절한다. 하지만 땅을 판 이웃 사람들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아이를 학교에 한 달이라도 더 보내려고, 갓 태어난 아기에게 한 끼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 가장의 마음을 누가 모를까.


사람들은 정부가 가난한 농민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어쨌든 국민들을 위한 ‘민주주의 정부’니까. 하지만 마을에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홍수의 폐해와 정부 지원을 호소하며, 내버려 두면 투표로 의견을 표출하겠다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한) 말을 한 촌장은 바로 끌려가서 심하게 구타를 당한다. 저개발국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셈이다. 결국 곡식 값은 폭등하지만 배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약탈과 무질서가 지배한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민주주의는 수입된 카사바(작물)와 같지. 쉽게 썩어 버리니까(Democracy is just like imported cassava. It rots quickly)."



윌리엄이라는 소년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 인프라가 없이도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워크맨이 작동하지 않으면 배터리를 갈았고, 집에 배터리가 없으면 엄마가 사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배터리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건 그 조그만 원통 안에서 마법이 일어나기 때문이며, 나 같은 일반인(?)은 마법진의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다. 윌리엄은 그렇지 않았다. 비를 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조상들과는 달랐다.


윌리엄이 다니던 학교의 과학 선생님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여느 자전거처럼 밤에 빛을 내는 조그만 램프가 달려 있었다. 윌리엄은 친구와 함께 그 램프를 훔치려고 하다가, 그것이 페달과 연결되어 있으며 배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페달의 에너지를 이용해 빛을 냄을 발견한다. 에너지 전환을 알아낸 것이다. 선생님은 그것이 “다이나모(dynamo)”라고 말해 주지만, 어떻게 그걸 자기도 만들 수 있을지는 깜깜하다.


하지만 윌리엄은 바짝 마른땅에 어떻게든 물을 대야 했다. 그러려면 에너지가 필요했고, 다이나모의 비밀을 알아내야 했다. 학비를 내지 못해 퇴학당한 윌리엄은 몰래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 에너지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를 알게 된 교장 선생님은 학비도 안 냈으면서 어떻게 학교에 숨어 들어올 수 있냐고 화를 내지만, 윌리엄의 열정을 본 도서관 사서는 이렇게 말한다. “학교에 몰래 들어오는 게 아니라, 밭에서 몰래 나오는 거예요(He’s not sneaking into the school. He’s been sneaking out of the fields).


윌리엄은 친구들과 함께 작은 선풍기를 만들어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더 큰 풍력 발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재가 필요했다. 윌리엄은 가족의 가장 소중한 재산인 아버지의 자전거를 부숴서 결국 윈드 터빈을 만들어 낸다. 물 펌프를 우물에 연결해서 물길을 만들고 씨를 뿌려 건기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파릇파릇 새순이 돋은 밭을 보여 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윌리엄 카쾀바의 실제 모습. 영화에서도 이 풍력발전기를 똑같이 재현했다.

TED 강연 속의 윌리엄은 아직 투박하고 어색한 시골 청년이다. 모국어 억양이 강하게 밴 영어로 “시도했는데, 해냈습니다(I tried, and I did it).”라고 떠듬떠듬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하다. 에너지가 필요했고,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자기는 에너지를 만들어 냈고, 앞으로도 만들 거라고. 모든 땅은 다르지만, 에너지를 향한 필요와 욕구는 국경을 모른다. 신형 아이폰을 충전하기 위해서든, 암흑이 깔린 밤에 작은 전구 하나에 빛을 가져오기 위해서든. 그 목적이 무엇이든 인류에게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농경 부문에서의 재생에너지 사용”이라는 윌리엄의 성과는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선진국에서조차 잘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15퍼센트가량이 재생에너지원에서 조달되지만, 농경에서는 총에너지의 7퍼센트만이 재생에너지원에서 나온다. 농경에서 개선될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식량을 재배하고 관개하고 수확하고 저장하고 가공하고 포장하고 운송하는 데에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사용된다. (...) 그럼에도 전 세계의 농경 및 식량 부문은 화석연료와의 분리에서 다른 상업 부문에 비해 한심할 정도로 멀리 뒤처져 있다.

- 제레미 리프킨, <글로벌 그린 뉴딜>

게다가 아직 인프라 자체가 구축되지 않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에서는 애초에 ‘탈탄소’를 할 인프라가 없다. 처음부터 경제 개발을 할 때 선진국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sustainable)" 개발을 하도록 UN 등 국제기구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다. 선진국은 언뜻 보기에 눈부신 문명을 이룩해 냈지만, 석탄과 석유에 의존하여 인프라를 일군 탓에 지금의 기후 위기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윌리엄의 첫 발전기로 얻은 에너지로는 전구를 네 개 밝히고, 라디오 두 대를 켤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중요한 건 그가 플러그를 꽂거나 배터리를 끼워서 전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한 땅에만 묻혀 있는 화석 연료와 달리 그는 누구에게나 와 닿는 바람을 사용했다. 현대 문명과 가장 멀리 있는 지구촌 구석구석에도 에너지는 닿을 수 있다는 것. 태양은 어디나 내리쬐고, 바람은 어디서나 분다. 


[1] https://www.actionaid.org.uk/sites/default/files/doc_lib/malawi_climate_change_repor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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