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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Feb 08. 2021

증손주의 편익을 할인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 대처에서 할인율의 문제

급 고백하건대 저는 경제학을 진짜 싫어합니다. 당최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요. (경제 하시는 분들에게 경의를) 그렇지만 오늘은 경제에 대한 얘깁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어려운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합니다만,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시차가 있단 것이죠. 뭔 말인고 하니, 지금 아무렇게나 살아도 피해가 나중에 오고, 지금 열심히 노력해도 보람이 나중에 찾아온단 겁니다. 인간적으로 지금 투자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음 달, 아니면 늦어도 내년에는 이득을 누려야 할 거 아닙니까. 근데 기후변화는 그게 아닙니다. 풍력발전소를 하나 짓는다 칩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축되고, 기온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하려면 적어도 수십 년이 걸립니다. 시차가 엄청나죠. 


그래서 이런 질문이 생겨납니다. 


지금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미래에 과연 얼마나 해를 끼치게 될까?
($$$딸라로 계산하면 얼말까?)


바꿔 말하면 이거죠. 


지금 투자하는 이 돈이 미래에 얼마만큼의 편익으로 돌아올까? ($$$)


요 질문에 대한 개념이 바로 "탄소의 사회적 비용(Social Cost of Carbon, SCC)"인데요,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1톤 배출할 때 야기되는 경제적 손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요, 현재 시점에서 미래의 비용이나 편익을 계산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지금 당장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먼 미래가 어떻게 될 줄 알고 계산을 한단 말입니까. 



할인율(discount rate)이 너무 중요하다

부모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저도 지금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 여러 생각을 합니다. 교육에 투자하고 저금도 하죠. 그런데 아직 얼굴도 모르는, 아니 존재조차 모르는 손주나 증손주, 나아가 고손주를 위해 뭔가 투자하라고 하면 갑자기 절실함이 약간 덜해집니다. 물론 그 아이들도 잘 살아야 하겠지만,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아이의 다음 달, 내년, 3년 후와는 또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미래의 재산이나 편익은 현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중요성이나 가치가 적게 인식되게 마련입니다. 그걸 바로 '할인율'이라고 불러요.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내는 것도, 그 돈이 모일 때까지 수년을 기다리는 대신 당장의 구매력을 손에 넣는 대가로 치르는 비용이죠. 내일보다는 오늘의 돈이 가치가 더 높다는 겁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려고 투자하는 것도, 비용과 편익을 고려하여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할 텐데요. 비용은 엄청난데 편익이 적으면 바보짓이니까요. 그런데 어떤 할인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편익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 문젭니다. 할인율은 중력가속도나 원주율처럼 딱 정해진 숫자가 아니거든요. 


이 예시를 볼까요? [1]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에 과감하게 투자해서 50년 뒤 기후변화의 피해를 1억 달러만큼 감소시켰다고 칩시다. "50년 후 1억 달러"는 현재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질까요? 물론! 이것도 할인율에 따라 달라져요. 

할인율이 1%인 경우: 6천만 달러
할인율이 4%인 경우: 1천만 달러
할인율이 7%인 경우: 3백만 달러
할인율이 10%인 경우: 85만 달러

차이가 엄청나죠? 이때, 투자금이 1천만 달러 정도 된다고 합시다. 할인율이 적은 경우, 즉 미래의 편익의 중요성이 큰 경우는 당연히 "고고"입니다. 6천만 달러의 편익이 있는데 1천만 달러가 대수인가요. 그런데 할인율이 7%가 되면 안 될 말씀이겠죠. 경제적으로 비용 투자가 정당화되지 않으니까요. 



스턴 vs. 노드하우스

할인율이 우리에게만 어려운 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똑똑하다는 경제학자 두 분도 이걸로 엄청 유명한 논의를 펼쳤지요. (왠지 이 분들의 사진을 보면 좀 더 현실감이 생길 것 같아(?) 사진을 첨부합니다.)

경제학자 스턴(좌)과 노드하우스(우) (이미지: 위키피디아)

스턴: 규범적 접근 - 할인율 1.4% 

기후변화 경제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니콜라스 스턴 님은 월드뱅크 수석 경제학자를 지내시기도 했는데요(게다가 무려 '로드(Lord)'입니다), 그분의 접근법은 이겁니다. "미래 세대의 편익을 어찌 할인할 수 있단 말입니꽈!" 그래서 상당히 낮은 1.4%의 할인율을 주장했죠. 물론 경제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당최 알 수 없습니다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너무 낮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할인율이 낮다는 말은 미래에 닥쳐 올 위험이 훨씬 중요해지기 때문에, 초기에 대응할 때 유리한 점이 있죠. 그만큼 먼 미래도 현재와 비슷하게 중시한다는 뜻이니까요. 


노드하우스: 기술적 접근 - 할인율 5%

한편 예일대학교의 윌리엄 노드하우스 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상품에 대한 할인율과 행복에 대한 할인율은 다르다!" 즉, 미래 세대의 행복을 할인할 수는 없지만 미래의 상품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할인이 가능하단 거죠. 윤리적인 관점으로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기회비용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대안적인 투자에서 얻을 수 있는 실제 수익을 고려해야 한단 거죠. 


사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좀 더 읽어보니...

바람직한 투자라 함은 사실 신재생 에너지 투자 같은 기후변화 완화 분야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더 더워진 세상에서도 가난한 사람들도 잘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적응 정책도 필요하고, 더 흔해질 열대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의료 연구에도 돈이 필요하죠. 미래 세대에게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 주기 위해 교육에도 투자해야 할 거고요. 


같은 돈도 이렇게 다각도로 투자할 수 있으니, 여기서 수익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사리에 맞는다는 말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 편익을 할인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노드하우스는 인간과 기술의 성장 가능성을 믿으며, 사회의 적응력을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할 위기이기는 하지만, 설사 기후변화가 상당히 진행된다 해도 기온 상승이 2-3도 이내라면 그에 맞춰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농업의 경우 기후에 대단히 심각하게 좌우되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농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점점 적어질 뿐 아니라 적응 기술이 발달할 것이기에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죠.


사실 코로나를 겪어 보니,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_- 작년에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인어공주마냥 거품으로 스러지는 걸 보며, 과연 현재의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깊은 회의(현타)가 들었었죠. 하지만 얼마나 할인을 하는지는 다를지 몰라도 어떤 렌즈로든 미래를 보고 대비해야 하는 법입니다. 미래 세대의 권리를 중시하는 스턴의 규범적 접근도, 실용적인 관점을 중시하는 노드하우스의 관점도 각자의 중요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경알못"이었습니다.


[1] 윌리엄 노드하우스, <기후 카지노>, p. 278-27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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