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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r 29. 2021

이렇게나 불공평할 수가

에너지와 기후변화, 처음부터 끝까지 불공평하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도 못 가고, 참 아쉬운 요즘입니다. 외국에 가면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마주하며 항상 놀라곤 하는데요, 특히 캐나다의 밴프나 재스퍼에서 웅장한 록키 산맥을 보며 "이건 정말 신이 빚었구나"라고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어요. 반대로 요즘 유튜브에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해서 신기하고 재밌는 점을 얘기하는 채널도 많은 것 보면, 나라마다 원래 가지고 있은 자원은 참 다 다르다는 생각에 듭니다.



그중 정말 나라마다 다른 게 하나 있는데요, 에너지 자원이야말로 다름의, 아니 "불공평함"의 끝판왕입니다. 중동의 하얀 옷을 입은 왕자님들은 땅에서 나는 검은 황금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소위 강대국이라는 서방 국가들도 항상 쩔쩔매게 만들어 왔죠. 냉전 이후 미국이 패권국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도 핵무기와 거대한 국토, 인구에 더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자원 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화석 연료 자원은 그저 신의 축복이라고만은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번에 NASA에서 처음으로 지구 에너지 인풋과 아웃풋을 정량적으로 계산했다고 하는데요, 즉 지구가 원래 달성해야 할 에너지 균형이 인간의 활동 때문에 어떻게 무너져 버렸는지를 처음으로 수치적으로 증명했다고 볼 수 있어요. 사실 증명하고 자시고를 떠나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긴 하지만, 인간이 화석 연료를 지속적으로 태우는 바람에 지구의 자연스런 에너지 균형이 깨지고 기후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공조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또 다른 차원의 불공평이 등장했어요. 즉, 기후 재앙을 막으려면 땅에 묻혀 있는 화석 연료를 개발하지 말고 냅둬야 한다는 겁니다.

바닥나 가는 탄소 예산. 화석 연료의 상당 부분을 안 쓰고 땅에 묻어 둬야 해요. (IFLScience)

이미 부자인 나라들은 그렇다 쳐요. 이제까지 실컷 자원을 개발해 써 왔고, 그 때문에 지금의 기후변화를 초래한 것이니 이제부터라도 책임을 져야겠지요. 하지만 현재의 저개발국 중 많은 나라들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식민 지배를 당했거나 그 후로도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뒤쳐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나라들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죠. 이제까지도 뺏기기만 했는데, 자기네가 벌려 놓은 기후변화 운운하며 화석연료 자원 개발을 자제하라뇨.


더욱 억울한 노릇은 기후변화의 폐해조차 불공평하게 다가온단 겁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북반구 온대 기후대에 자리하고 있는 많은 선진국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해진 기후 때문에 오히려 이득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원래 좀 쌀쌀했던 곳이 날씨 변화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든지

...), 가난한 나라들은 농업 의존도가 큰 데다가 기후변화에 대처할 자원도 부족하기 때문에 가장 취약한 경우가 많다고 해요. 해안선 상승도 마찬가지죠. 기후변화 때문에 열대의 섬나라들은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지만 내륙국은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니까요.


그러니까 에너지는 자원 분포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그 폐해까지 뭐 하나 공평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지구 기온이 너무 올라가 버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망하는 건 틀림없습니다. 불공평함에 대한 담론이 틀렸단 게 아니라, 그 배경에는 지구 기온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맞추자는 공감대는 있어야 한단 거죠. 그렇지만 이게 참 어려운 문제인 것이, 영토 내의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주권 국가에게 "너네 땅 파지 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국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주권 국가이며 그들이 가진 각자 영토 내에서의 절대적 권한이니까요. 기후변화를 막네 어쩌네 하는 국제 협상도 결국은 국가들이 모여 자기네가 가진 권력으로 이행하는 거 아닙니까.


사실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 기후 협상에서도 부자 나라들이 책임이 더 있으니 여타 나라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점은 전부터 강조해 오긴 했습니다. 2009년 코펜하겐 협상에서도 2020년까지 적어도 선진국에서 1천억 달러를 개도국 쪽에 제공하자고 하기도 했고, 이는 2015년 파리 협약에서도 반복되긴 했었죠. 실제로 충분한 지원이 되지 않는다고 개도국은 불만이 많지만요.



따지고 보면 이런 지원은 사실 "신뢰"의 문제입니다. 여태까지 경제 발전을 이룬 선진국은 2000년 이후부터는 경제를 성장시키면서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약간씩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요. 그만큼 경제가 성숙했고 기술이 발전했단 거죠. 그러니 저개발국은 "쳇, 쟤네는 지금 와서 왜 우리한테 그래! 뭘 믿고 화석 연료를 개발하지 말란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돈을 주든, R&D 지원이나 기술 이전을 하든, 내가 큰 희생을 하더라도 책임을 져 주겠다는 신뢰가 필요한 거죠.


그러니 땅에 묻힌 화석 연료를 개발하지 않고 얌전히 놔두게 설득하려면 그 불공평을 해소시킬 만한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할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난한 나라들은 부자 나라들이 예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화석 연료를 개발하고 어마어마한 온실가스를 배출함으로써 그들 나름의 '공평함'을 달성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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