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제로목표 달성을 위한 조건
교수: 자네, 중간고사 성적으로 보면 이번 학기에도 C 이상 받기 어렵겠군.
학생: 네..? 저 학사 경고가 코앞인데요.
교수: 이대로라면 어쩔 수가 없네. 기말고사를 엄청나게 잘 보면 모를까..
학생: 아, 그렇다면 기말고사를 만점 받겠습니다!
교수: 아니, 이제까지 이렇게 해 놓고 어떻게 기말고사에서 잘하겠다는 건가?
학생:..... 무조건, 무조건 한 번 해 보겠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지난주 나온 기사에 따르면, 이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50% 이상 증가한 수준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이산화탄소가 우리 눈에 보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산업화 이전에는 공기 중에 100개 있었던 것이 이제는 150개가 넘게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하니, 지구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 보니, 국가들은 <파리 협약>이라는 걸 만들어 "그래, 우리 다 같이 좀 기후변화를 막아 보자!"라고 약속을 했지요. 그러는 와중에 나온 목표가 요즘 많이 들리는 <넷 제로>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은 엄청나지만, 점점 줄여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왜 "넷(net)"이라는 말이 들어가느냐 하면, 배출량 자체도 최대한 줄여야겠지만 카본 싱크(숲 등)나 탄소 채집 기술을 이용해서 온실가스를 빨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밸런스를 맞춘다는 뜻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최근에 미국과 EU, 중국 등 앞다투어 넷 제로를 선언했습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거죠. 한국도 살포시 밥숟갈을 얹었고요. 이제까지는 중간고사를 망친 학생마냥 그다지 잘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진짜 진짜 잘해서 기후 위기를 막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겁니다. 하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으면 현재로서는 "그건 모르겠고 무조건, 무조건 한 번 해 보겠습니다!"라는 대답 이상이 나오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왜냐고요?
명백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넷 제로. 그냥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다음부터의 내용은 최근 Nature에 실린 아티클 "Net-zero emissions targets are vague: three ways to fix [1]"를 참고로 했습니다.)
문제는 '넷 제로'나 '탄소중립' 같은 말을 이곳저곳에서 쓰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은 경우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때는 이산화탄소만 지칭할 때도 있고, 다른 경우는 메탄 등 여타 모든 온실가스를 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국가뿐 아니고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넷 제로 선언을 하고 있는데요, 어떤 회사들은 직접 자기가 컨트롤하는 활동에 대해서만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공표했고, 다른 경우는 공급 사슬 전체를 비롯하여 제품 폐기까지 모두 고려하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와, 저 회사 넷 제로를 달성할 거래!"라고 모두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넷 제로를 선언했다는 것만으로도 아예 안 한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하지만 다소 애매한 이 목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Nature에 실린 아티클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하라고 제안합니다.
1. 넷 제로의 범위는 어떠한가
2. 넷 제로 목표가 '충분'하고 '공평'한가
3. 넷 제로까지의, 그리고 그 이후 로드맵이 마련되어 있는가
넷 제로 목표가 좀 더 구체적일 수 있으려면
_첫째, 범위.
어떤 온실가스를 포함시킬 것인가부터 시작하여, 각 온실가스에 대해 언제 넷 제로를 달성시킬 것인지 시간적 범위도 명확해야 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이산화탄소에 중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물론 이산화탄소가 가장 주요한 온실가스라서 그렇지요. 게다가 한 번 배출되면 아주 아주 오랜 시간 대기 중에 머물기도 하고요. 하지만 예를 들어 메탄을 포함시킬 경우, 메탄은 온실 효과는 훨씬 크지만 대기 중에 머무는 시간은 이산화탄소에 비하여 매우 짧거든요. 그러니 이산화탄소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고, 이것이 목표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어야 할 겁니다.
지금 비슷비슷하게 바꾸어 가며 쓰고 있는 '탄소 중립, ' '기후 중립, ' '이산화탄소 넷 제로, ' '온실가스 넷 제로' 등의 용어도 범위를 통일시키거나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넷 제로 달성 방법의 범위인데요, 넷 제로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거나 제거하고, 또는 오프셋 하는 세 가지의 활동을 섞어서 달성하게 마련입니다. 어떤 국가는 넷 제로 달성을 선언했지만 자체적으로 감축하기보다는 오프셋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해요. (오프셋이란 내가 직접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체가 감축한 크레딧을 구매하는 것을 의미해요. 배출권을 구매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지요.)
그런데 직접 감축에 비해 오프셋에는 리스크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서 재조림 사업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토지 사용의 전환은 농경 등 다른 산업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생태계나 생물 다양성, 식량 문제와 물 조달 문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거든요. 탄소 제거도 마찬가지입니다. CCS 같은 탄소 제거 기술을 생각해 보면, 비용이나 사회적 수용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넷 제로 계획에 온실가스 감축과 제거, 오프셋을 명확히 어떤 범위까지 집어넣을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_둘째, 충분한지, 공평한지.
파리 협약은 모든 국가를 아우르는 것이 목표지만, 각국이 처한 발전 상황과 감축의 기회는 다르게 마련입니다. 감축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지, 또 온난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죄다 판이하죠. 아프리카나 열대 지방의 국가들은 태양광 발전을 할 포텐셜이 높지만, 이에 투자할 돈이 부족할뿐더러 이제까지 기후변화에 기여한 정도도 낮습니다. 그런데도 당장 넷 제로를 달성해야 할까요?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도 마찬가지죠. 농업과 임업의 경우 이산화탄소 제거를 할 잠재력이 높은 산업들이지만 항공이나 금속 산업 등 도저히 감축이 어려운 산업 부문도 있습니다. 또, 축산 업계는 메탄 방출이 높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 메탄은 뺍시다! 그러면 우리는 넷 제로 달성하기가 훨씬 쉬운데.."
가난한 나라들이 나름 감축 목표를 세웠는데, 이 크레딧을 대기업이나 선진국에 오프셋으로 팔아 버리면 자기네 타겟을 맞추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각자 최선을 다해도 현재로서는 파리 협약에서 정한 2도 목표를 달성하기 불투명한 상황인데, 결국 각 주체가 처한 상황과 감축 노력을 최대한 엄격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추구해야 할 겁니다.
_셋째, 장기 로드맵
"무조건 잘해 보겠다"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목표는 구체적인 마일스톤이나 이행 계획, 그리고 장기적 비전이 있어야 더 신뢰할 수 있겠지요. 지금이야 넷 제로가 지상 최대의 목표 같지만, 사실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학사 경고를 피하더라도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취직에도 성공해야 하는 대학생처럼 말이죠. 넷 제로를 달성하고, 유지하고, 네거티브 에미션까지도 미래에 그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기후 위기는 갑자기 티핑 포인트를 넘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즉 빠르고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을 고려하고, 계획이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우리는 목표 어디쯤 있을까
지난주 카본 브리프는 영국이 넷 제로 목표의 절반을 벌써 달성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아래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이대로만 쭉쭉 가면 되겠다"는 낙관적인 마음이 절로 듭니다.
물론 섣부른 판단이라는 비판도 있기는 했지만요. 아무튼 영국은 오래전부터 기후변화 대처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계획을 세워 온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만큼 넷 제로 목표도 아예 맨땅에 헤딩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요? 앞서 얘기한 세 가지 관점으로 현재 우리의 넷 제로 목표를 평가해 보며 현실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표지 이미지: WBCSD